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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시작_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야 하는 글

고통 속의 글이 누군가의 고통을 잊게 한다면

by 지감성장

아프고, 아프고, 아프다.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하면 누군가는 비웃을 지도 모른다. 그 정도 가지고 라며...


구내염, 식도염, 폐렴. 어쩌다 염증이 퍼져 입도 잘 벌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침을 삼키는 것도 힘들고, 숨 쉬기도 어렵다. 피검사 결과 염증 수치도 높고 해서 병원에서는 입원할 것을 권하지만 입원할 처지가 못된다. 이 정도는 약으로 다스리며 일해야 한다. 어쩌면 덜 고통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씹을 수 없으면 마시며라도 먹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으면 병원에 누워 있을 수 없다.


지인은 폐렴을 우습게 보지 말라며, 지난주에 폐렴으로 장인어른을 허망하게 보내드렸다고 한다. 문득문득 슬퍼서 눈물이 난다며 잘 치료받을 것을 권했다. 덜컥 겁이 나서 큰 병원으로 가서 재검사를 했다. 결과는 같았지만 약을 세심하게 더 잘 챙겨 먹기로 하고 통원치료를 하겠다고 하고 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프다. 몸이 아프다 보니 이제는 마음까지 아프려 한다.


눈치 보며 신경은 쓰지만 딸은 내 눈앞에서 쫀득 부드러운 뭉태기를 쪽쪽 씹어대고, 와싹 빠작 과자를 씹어 먹고 있다. 그런 딸을 보면서 잘 먹어서 좋고, 너라도 맛있게 먹으니 내가 안 먹어도 배부르다 할 수 있는 엄마가 아니라 얄밉게 느끼는 엄마라 자괴감이 든다.


또 통증 때문에 잠들기가 어려운데 어쩌다 겨우 잠이 들었나 싶을 때 '크러렁 컹'하고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잠깐의 잠을 깨운다. 그 순간 '많이 피곤한가 보다'하지 못하고 '나는 죽을 것 같은데 저렇게 코를 골며 잘도 자네'하며 서운한 마음이 드는 내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가족 모두가 나의 고통을 나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지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모든 것을 삐딱하고 뾰로통하게 대하고 있으니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몸도 마음도 괴로운 중에 문득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을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의 존엄성이 승리했다며 고통의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긴 이 책이 떠올라 펼쳐 읽었다. 몸에서 나는 털 한 오라기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그들의 고통을 지금 내 고통과 비교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도 나는 마음대로 먹을 수도, 누울 수도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으니 이 정도 고통은 감사한 것이다. 그들의 끔찍한 삶에 놀라며 지금 나를 괴롭히는 통증이 잠시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읽어도 충격적이었다. 심리∙철학적 깊은 통찰과 사유로 읽어나갈 법한 책을 스쳐 지나가는 단순한 통증 사이에서 위로를 받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순간에는 그렇게 아프다고 느끼던 통증이 완화되었다. 글에 집중을 하고 어느 순간 몰입의 단계에 들어서면서 통증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져서인지, 주의를 전환시켜 통증에 집중되지 않아서 인지, 몰입의 순간 도파민이나 엔도르핀 같은 신경전달 물질이 분비된 덕인지 아니면 이 모든 조건이 부합된 탓인지 모르겠지만 통증이 있는 시공간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해괴망측한 말인가 싶을 수 있지만 사실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순간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글뿐만 아니다. 음악도 향도...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할 것이다. '어디에 어떻게 몰입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통증을 잠시 잊게 하는 것이다.


또한 고통과 통증의 순간에 기록한 글은 다시 누군가의 고통을 위로할 수 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고, 진정성 있는 글을 통한 이해 그리고 그나마 나은 삶의 의미에 대한 재구성의 위로라고 하면 고개가 끄덕여 질까.


염증으로 겪는 통증보다 잘 못 쓰는 글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고통과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상태에 느끼는 고통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아무 글이나 마구마구 쓰고 발행해야 하는 걸까 싶다.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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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