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낯설게 보기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49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누가복음 23: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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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1. 보통 죽음은 '당하는 것'이다. 숨이 끊어지고 의지가 소멸되는 수동적인 종말. 하지만 예수의 죽음은 다르다.
2. 예수는 숨을 거두기 직전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 이는 기력이 다해 사그라지는 죽음이 아니라, 자기 영혼을 능동적으로 이전하는 행위다.
3.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고백은 신앙의 정점을 보여준다. 인생의 가장 통제 불가능한 순간(죽음)에, 가장 신뢰하는 존재에게 자신을 내던지는 것. 이것은 패배가 아니라 최종적인 자기 결정권의 행사다. 죽음조차 예수에게는 사역의 완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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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1. 사형 집행관이었던 백부장은 수많은 죽음을 봐온 전문가였을 것이다. 그가 예수를 '의인'이라 부른 것은 종교적 감화 때문이 아니다.
2. 백부장은 예수의 '설교'가 아니라 예수의 '죽는 방식'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3. 때로 세상은 우리의 유창한 말보다, 우리가 고난과 죽음(위기)을 어떻게 대면하느냐를 보고 신의 존재를 느낀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는 고백은, 가장 세속적인 칼끝이 가장 거룩한 방패 앞에 무릎을 꿇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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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1. 앞서 "서서 구경하던(35절)" 무리들이 이제는 "가슴을 치며" 돌아간다.
2. 이들의 가슴 치기는 '회개'일까, 아니면 '불길한 예감'일까?
3. 이들은 구경꾼에서 목격자로 강제 전환되었다. 재미있는 볼거리인 줄 알고 왔는데, 막상 마주한 진실이 너무 무거워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진실은 구경하는 자의 마음에도 자국을 남긴다. 그들이 가슴을 치며 돌아간 것은, 이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무지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암시하는 본능적인 몸짓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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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1.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여자들은 멀리 서서 이 일을 본다.
2. '멀리 서 있다'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자의 고통스러운 인내다.
3. 신앙은 때로 화려한 무대 중심이 아니라 '멀리 서서'라도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순간에도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 그 '무력한 응시'가 사실은 가장 강한 사랑의 증거이다.
*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남기고 싶어 할까? 예수님의 마지막은 거창한 유언이나 복수가 아니라, '부탁'이었습니다.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이 말은 내 삶의 모든 핸들을 내려놓겠다는 항복 선언이다. 우리는 평소에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겠다"며 오버하고 서두르지만, 결국 죽음이라는 절대적 한계 앞에서는 누구나 백부장처럼 목격자가 되거나, 여자들처럼 무력한 관찰자가 될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이 끝난 지점에서 타인에게 무엇이 남느냐이다.
군인은 '의'를 보았고, 무리는 '불안'을 느꼈으며, 여인들은 '슬픔'을 간직했다.
혹시 지금 너무 애쓰고 있는가? 잠시 멈추고 예수님의 마지막 호흡을 보자. 그분은 가장 처참한 실패의 자리(십자가)에서 가장 평온한 신뢰를 보여주셨다. 우리 삶의 소란이 잦아드는 지점은, 내가 무언가를 성취할 때가 아니라 "주님의 손에 나를 맡깁니다"라고 고백하는 바로 그 '오늘'의 한복판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