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이 허락한 세상

이해보다 먼저 내게 주어진 것

by 문희애

입학한 학교에 적응을 한참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학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하는 장소였다. 나는 매일 학교에 갈 때, 가방보다 먼저 나를 점검했다. 엄마가 없는 티가 나지 않도록, 아빠가 서툴다는 인상을 남기지 않도록, 괜히 더 씩씩한 척을 해야 했다. 숙제보다 더 어려운 건, 결핍을 숨기는 일이었다. 친구들 앞에서는 늘 포장된 모습으로 움직였다. 엄마 이야기가 나오면 적당히 웃었고, 집 이야기가 나오면 말을 돌렸다. 누군가 “희애, 너네 엄마는?” 하고 묻지 않아도, 그 질문이 올 것을 미리 대비하며 하루를 보냈다. 나는 아이였지만, 이미 눈치를 배우고 있었다. 학교에서의 나는, 자연스럽게 잘 버티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하루마다 모든 힘을 쏟아내고 있는 중에, 또 하나 힘써 해내야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아빠는 외벌이였고, 아마도 나를 돌봐줄 곳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학교에 적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흔히 말하는 지역아동센터에 다니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그곳을 '도움'이나 '보육'을 해주는 곳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선택권이 없는 일은 대개 그런 의심을 자아낸다. 그냥 또 한 번, 어딘가에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아닌 어딘가. 잠시 맡겨진 물건처럼, 정해진 시간 동안 머물다 가야 하는 곳 같았다.


처음 센터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공간은 생각보다 시끄러웠다. 아이들의 목소리, 의자가 끄는 소리, 선생님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움츠렸다. 여기도 잘 해내야 하는 곳일까, 또 어떤 역할이 주어지는 걸까.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학교 생활로 쌓인 긴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은 달랐다. 센터에서는 엄마의 유무보다, 지금의 나의 상태가 먼저였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편식 없이 밥은 잘 먹었는지, 오늘 기분은 어떤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증명하지 않아도 됐다. 애써 잘 보이기보다, 그냥 있어도 되는 느낌이 들었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됐고, 기쁠 땐 맘껏 기뻐하고, 말하기 싫으면 조용히 있어도 됐다.


선생님들은 나를 무엇을 해내야 하는 아이가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한 아이로 대했다. 그 순서가 나를 숨 쉬게 했다.


학교가 나에게 세상을 연습시키는 곳이라면, 센터는 나를 잠시 내려놓게 해주는 곳이었다. 학교에서는 나를 먼저 보여줘야 했고, 센터에서는 나를 먼저 바라봐주었다. 그 차이는 설명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다정하게 사람을 대하는 일이 일상인 그곳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감각을 배웠다. 그 보호는 과하지도, 드러나지도 않았다. 그저 늘 거기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채워지지 않던 것들이 다른 방식으로 스며들었다. 엄마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지만, 그 빈자리를 매번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생겼다.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숙제를 봐주고, 이유 없이 웃어주는 순간들은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 하루의 일부였다.


친구들과의 사이도 달랐다. 학교에서는 말을 고르기 바빴다면, 센터에서는 말이 먼저 나왔다. 울다가 웃고, 싸우다가 다시 붙어 놀았다. 엄마가 없다는 이유로 주눅 들 필요도 없었고, 잘 보여야 할 대상도 없었다. 아이들은 각자 다른 사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조금 덜 단단해져도 괜찮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역아동센터는 나에게 또 다른 집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냥 지나가는 장소도 아니었다. 아이에게 돌봄이 주어지는 일이 얼마나 당연한 것인지, 몸으로 배우는 곳이었다. 그런 배움은 늘 아주 평범한 시간 속에서 이루어졌다.


센터에서 저녁을 먹기 전에는 늘 숙제하는 시간이 있었고, 아이들은 각자 자리에 앉아 공책을 펼쳤다. 연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는 문제를 풀다 멈춰 섰으며, 누군가는 조용히 하품을 했다. 선생님은 책상 사이를 천천히 오가며, 필요할 때만 허리를 굽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말을 건넸다. 그 시간은 시끄럽지도, 완전히 조용하지도 않았다. 모두가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 공간은 충분히 안정돼 있었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고, 늦어도 괜찮았으며, 틀려도 문제 되지 않았다.


집에서도 종종 고요한 순간은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의 고요함은 늘 숨 막혔다. 말이 없다는 건 서로를 조심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그 조심스러움은 집 안에 오래 남아 있었다. 문이 닫히고 소리가 사라지면, 생각만 커졌다. 그 고요함 속에서는 나 혼자만 또렷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센터의 고요함은 달랐다. 말이 없다는 것은 이미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뜻이었고, 관계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이어지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나를 꾸릴 필요가 없었다. 고요함은 버텨야 할 시간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도 되는 순간에 가까웠다. 그날의 숙제는 특별히 잘 풀리지도, 유난히 어려운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 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처음으로,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조용한 공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 시기의 나는 그것이 보호라는 이름을 가진 감각이라는 걸 몰랐다. 다만, 저녁을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잠시 아무것도 해내지 않아도 되는 아이였다.


특별히 더해진 것은 아니었다. 아이이기에, 한 사람이기에 당연히 필요한 것들이었다. 나는 그 당연함이 언제나 허락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고, 그래서 그 평범한 시간들이 유난히 가슴에 오래 남았다. 평범함이 허락하는 것은 꽤나 다정한 세계였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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