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틀 전,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나를 위해
어떤 회사의 팀장 또는 이사 자리를 마련해 두었고,
회사 보고는 거진 완료 되었으니
나만 결정하면 된다는 것.
2.
나는 당시 동대문에
요즘 빠져있는 원단을 보러 갔었고
조그마한 차트, 백여 개의 블록 같은 샘플 속
내가 '진실로 추구하는 것'을 찾아내고자
홀로 고군분투 하고 나온 차였다.
힘들었지만 희열 있었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3.
퇴사 후, 이직 준비를 한 적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마음 편히 다음 직장을 준비하라'는 말과 함께
'뭘 하든 잘할 거니 걱정하지 않는다'는
응원의 말을 덧붙혀 준다.
허나, 두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같다.
'다른 회사로의 취업'
4.
처음 선배의 연락을 받았을 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내가 부탁드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미 진도가 많이 나간 상황 같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겐 단호박 같은 장군스러운 면도 있으나
생각보다 거절을 힘들어하는 성향도 있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릴 진 모른다만)
향후 난감한 일들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사실 제가 아직 이직 준비를 하지 않고 있어서요.'
라고 시작하는 답을 보내려다가
그런 말은 만나서 해도 충분할 터.
'좋은 제안 정말 감사드린다.'며
다음주 약속을 잡았다.
5.
생각해 보았다.
1)
선배가 나의 취업에 대해
회사 보고까지 끝냈다는 말은
나로 하여금
'꼭 와야 한다‘는 뜻 아닌
'너만 원하면 일할 수 있으니
마음 편히 먹으라'는 응원의 의미라는 것을.
나 없이 이미 너무 잘 돌아가는 회사인데,
마치 핵심 인재인 척(?) 오바할 필요 없되
선배께는
진실로 감사함을 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2)
1주일 전,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To-do list'를 생각해 보았다.
가. 취업
i. 사무직
a. 대기업
b. 스타트업
ii. 매장직
a. 브랜드
나. 사업 등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이라
일찍이 여러 옵션을 좁히고 싶진 않다.
허나,
내가 손을 놓고 있는 취업에 대해서도
나의 기준을 정해놓아야
누군가 내게 제안을 주었을 때
내가 설정한 나의 기준으로
상황을 전개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링크드인 구직공고를 쭉 봤다.
다행히 다녀보고 싶은 곳들이 더러 보였다.
6.
나는 아빠와 영혼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기쁘면 나도 기쁘고,
아빠가 슬프면 나도 슬프다.
아빠는 마흔 즈음,
나처럼 대기업을 퇴사하셨고
대치동에 컨설팅 회사를 차리셨다.
그리고 10년 정도 하셨을까,
회사를 접으신 후
베란다에서 10년 정도 책을 읽으며 쉬셨다.
출/퇴근 시,
집에 들어오고
집을 떠날 때마다 보는
아빠의 책 읽는 뒷모습은
내 마음을 늘 아프게 했었고,
언젠가 받았던 심리상담에선
'아빠와 너무 밀착되어 있으니
감정분리가 필요해 보인다'는 말도 들었다.
그동안 묻지 못했지만 나는 아빠에게 궁금했었다.
1) 왜 다시 일을 하지 않으시나요?
2) 왜 그리도 책을 보시나요?
7.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언제 읽어도 좋은 책은
'이석원' 정도이다.)
이번에 아빠 방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무라카미하루키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알록달록한 색채의 커버는
첫눈에 내 눈을 사로잡았으나,
책을 읽다 보니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이윽고 커버를 벗겨내니
실제 책은 먹처럼 시커맸다.
나는 이 책에 미친 듯 매료되어
어제 새벽까지 책을 진하게 붙잡았다.
그렇다.
이 책은 내 심장을 완전히 빨아버렸다.
8.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일반적인 회사를 다니는 행위를
'색채 없는 삶'으로 느낀다는 것을.
그러한 삶을 언제까지
색채 없다 느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나는 색채 있는 삶을 살고 싶고,
일로서 내게 색채를 입히며,
그 맛으로 살아가고 살아내고 싶다.
오늘 오전
집 앞 도서관에 가서 6권의 책을 빌려왔다.
그중 하루키의 책이 4권.
6권의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아빠에게 여쭙고 싶었던 질문의 대답을
스스로 찾게 되었다.
1) 왜 다시 일을 하지 않으신지요?
2) 왜 그리도 책을 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