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들이었는데, 침대에 누우면 몸이 찰흙덩이 같았던. 팔, 다리, 허리, 어깨 할 것 없이 무지근해 이리 저리 엎치락뒤치락한 찰흙덩이. 아침이면 다시 찰흙덩이에 팔 다리가 생겨나 걸었고 밥을 먹었고 일을 했다. 목요일 오전, 한가하게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홀가분한 혼자가 되어 듣는 도서관 시 수업에서였다. 나는 당장 이 답답한 긴 머리를 잘라버려야 한다. 마음이 급해졌다.
성격대로 산다지만 내 맘대로 종결할 수 없는 일은 안고 가야 할 때가 있다. 쉽게 마음대로 해버리고 결과도 바로 볼 수 있는 커트를 해야겠다. 이 수업이 끝나는 대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미용실로 직행했다. 더 짧아지면 기르기 힘들 거라던 남편의 만류가 잠깐 떠올랐다. 그 생각은 엘리베이터의 3층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을 타고 이내 사라졌다.
"머리를 묶을 수 있게만 가장 짧게 잘라주세요."
몇 년을 기른 머리카락이 신나게 잘려 나갔다. 글도 휘갈겨 써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더 격이 높은 글을 쓰고 싶다고 한 지가 어제인데 변덕이 죽 끓듯 한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건 너무 흔해 빠진 말인가 생각하다 가도 이마저도 귀찮아진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금방 잘해지는 건 없다.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좋아하는 건 찰나지만 연애를 이어가는 건 머리를 써야한다. 또 이에 걸맞는 한 가지 예를 더 생각하다가 그만둬 버렸다. 독자가 알 수 있게 앞 뒤 상황을 보여주면서 진부하지도 않아야 한다. 읽는 사람이 글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잘 이끌고 싶은데, 그런 일이 갑갑할 때가 있다. 그냥 바로 하고 싶은 말을 해버리고 싶다.
짧아진 머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볕이 따스하면서도 거슬렸다. 결국 눈을 찔렀다. 뜰천을 따라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오리 하나가 주둥이를 푸드덕거리며 물을 마시고, 다른 하나는 날개를 털어내며 몸을 다듬고 있었다. 공중에선 새들이 저마다 다른 소리로 자신의 위치를 드러냈다. 그리고 보게 되었다.
물 속에 잠긴 누군가의 킥보드.
녹슬지 않은 선명한 색의 깨끗한 킥보드는 반듯하게 물의 한 가운데 누웠고, 그 사이 사이를 뜰천의 맑은 물이 투명한 굴절을 만들어내며 지나갔다. 네 바퀴를 구르며 장난기 어린 아기를 실어 나르던 킥보드는 모처럼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운동복을 입고 바삐 성큼성큼 걸어가는 사람, 시장 바구니를 무겁게 들고 가는 사람도 흘끗 물에 빠진 킥보드를 쳐다보았다. 그것의 휴가는 전시되어 있었는데, 즐기는 모습이 역력했다. 집에 오자마자 욕조 가득 물을 받고 들어갔다. 목 끝까지 푹 잠겼다. 휴가였다. 마음속으로 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