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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수진 Sep 02. 2023

우리 고양이 같은

  큰일 났다. 이른 아침, 부모님 집에 사는 길고양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엄마가 야옹아 불러도 생존반응이 없다. 방금 전까지도 없던 고양이의 사체. 사고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가엽다. 아빠가 고양이를 도로에서 떼어내자  쳐진 몸통이 아래로 툭 떨어지며 덜렁 거렸다. 아깝다. 삽으로 마당의 흙을 파내고 구덩이가 나왔다. 그런데 고양이가 눈을 떴다. 코에는 코피가 맺혀있고 배변을 지렸다. 보온을 해야 한다. 고양이를 난실에다가 옮겨 넣었다. 나와 아빠는 얼른 차에 올라타 약국과 동물병원을 찾아다니면서 고양이 항생제를 어렵게 구했다. 안타깝게도 소염진통제는 구할 수 없었다. 통증이 심할 텐데... 고양이가 먹을 수 있게 생선을 쪄내 주스처럼 갈았다. 항생제를 먹이기 전에 밥을 먼저 먹였다. 정신이 든 고양이가 서랍장 뒤에 숨어들었다. 끄집어내려는 아빠 손을 급하게 핡켰다. 살고자.

  시간이 흘러 고양이는 담도 뛰어넘고 배변도 잘하게 되었다. 주말에 부모님 집에 가보니 고양이가 현관 계단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전에는 쏜살같이 달아나던 녀석이 꼼짝도 않고 누웠다. 코앞에서 내 강아지가 짖어대는데도 눈만 꿈뻑인다. 엄마는 교통사고 후에 고양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같다고 했다. 고양이가 자리에서 느적느적 일어나더니 무성하게 줄기를 뻗은 로즈메리에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고양이가 머리를 살짝 치켜든 모양새, 작고 둥근 코 끝에 로즈메리가 살짝 닿아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를 응시하는 눈동자의 옥색이 아름다웠다. 살아있으니 로즈메리 냄새도 맡고 좋지, 하늘도 보고, 담장도 넘고  좋지. 그렇게 속으로 말을 걸었다. 살아있으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구나 새삼 깨달았다. 내 삶이 내 몫이듯이 다시 살아난 너의 삶도 너만의 몫이지. 살려낸 삶도 살아가기는 온전히 너의 몫이지. 그래서 내가 너를 살려주었으니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같은 마음은 먹어지지 않는다.





우리 고양이 같은 / 우수진


교통사고가 났던
누군가 농약을 뿌려 길고양이를 죽였던
열 마리 중 두서넛 살아남은
다리를 다쳐 절뚝거렸던
항생제와 소염제를 챙겨 먹였고

다시 담을 훌쩍 넘었지


어제 영역다툼이 있었고
다시 다리를 절뚝거려
항생제를 챙겨 먹었더니
이제 괜찮단다

눈동자가 예쁜 길고양이
교통사고 이후 도망가지 않는
우리 고양이 같은






<고쳐쓰기>


시인의 피드백:

객관적 상관물이 고양이로 하고,
시적화자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적화자를 '그녀' 나 '그'가 시를 끌고 간다면,
시가 입체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우리 삶에서 항생제나 소염제 역할을 하는 게 뭘까요?

'그녀'는 무엇과 영역다툼을 했을까?라는 상상력도 괜찮네요~



나:

그냥 길고양이에 대해서 노래하고 싶을 때는

시적언어로 만들기가 어려울까요?

객관적 상관물을 다른 걸 가져와서 시적화자가 길고양이인 걸로 쓴다면


시인:

그래도 좋겠네요.
시적화자가 길고양이,
객관적 상관물을 또 다른 사물로~





 / 우수진


키위 이야기는 아닌데,

키위를 반으로 자른다

그 안에 든 초록색 심연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까만 계단

아름다워

잘린 면을 정확히 맞춰

다시 붙여둔다


숨이 붙어있었다

밤새 죽느냐 사느냐 끙끙 앓아

온실 속에 넣어두었다

알약을 삼키고

빨간약을 바르고

난초들 사이에서

따뜻하고 작은 상자에서

식물조명 아래에서

다 큰 어른이

야옹하고 울었다



시인의 피드백:

위위의 시  <우리 고양이 같은>도 작품으로 살리고,
<숨>도 새롭네요.
숨이 시적형상이 잘 된 거 같습니다.

'다 큰 어른'은 고양이를 보고 있는 화자인가요?


나:

고양이가 다 크면 원래 야옹하지 않는데요

근데 야옹 하는 건 사람과의 교류

사회적인 야옹이래요

교통사고에서 회복한 고양이가

야옹했어요



시인:

아 그렇군요.

양면적으로 읽혔거든요.
고양이가 나아서 야옹했나?
아니면 거두어준 사람이, 고양이가 회복되어서 감사해서 울컥했나? 하고요.


나:

선생님 어때요
많이 고쳐야겠죠?


시인:

두 편 모두
컴 바탕화면에 깔아 두고
조금씩 조금씩 확장해 나가 보세요~

키위의 속성,
식물조명의 영역
등등을 확장해 나가다 보면
작품에 입체감이 생길 겁니다.

개인적으로
'식물조명'이라는 단어가 좋네요~


한 번도 읽은 적 없는 단어였어요.
식물조명의 영역에서 많은 걸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식물조명의 좋은 점도 있지만,
분명 안 좋은 점도 있겠죠.
자라기 싫은데 식물조명 때문에 밤에도 자라야 하는 고충 같은 거...

고양이와 식물조명이 좋은 관계설정이 될 듯요.

온실, 알약, 빨간약은 흔히 볼 수 있는 詩語~




나:

음 흔한 시어 세 개를 바꾸고 싶네요ㅎㅎ

감사합니다



시인:


바꿔보세요.
가능하면
거리가 좀 있는 생뚱맞은 단어로요.
그러고 나면
시가 확 달라진답니다.

바꾼 단어를 중심으로
새롭게 풀어내기도 쉽고요~






<고쳐쓰기>

지푸라기를 잡고 뼈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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