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그리고 마땅히 그러하게

by 성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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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고, 시간이 지나 해가 높이 올라가고 해가 낮게 내려간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완전히 사라지면 어둠과 함께 하루는 마무리. 어쩌면 당연한 것. 매일매일을 살며 반복되는 이 사실을 피부로 받아들였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사주지 않을 때면 더러운 바닥에 곧바로 누워 온몸을 이용해 떼를 쓰는 아이처럼. 그리고 우리 나태한 인간은 (적어도 나는) 익숙해지는 순간 무뎌지고 느려지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 몹시 못된 고질병에 걸리고 만다. 그것은 보들레르가 말하는 회복기 환자의 시선이 아닌 존 스튜어트가 말하는 배부른 돼지일 뿐.

오늘도 해가 떴다. 여느 때처럼 해가 뜨고 시간이 지나 해가 높이 올라가고 해가 낮게 내려가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막혔는지 시선을 왼쪽 창가로 돌렸다. 무의식 속 인간은 마음이 갑갑하면 탁 트인 풍경을 찾나 보다. 오를 수 없는 커다란 바위 앞에서 그저 위만 바라보고 있는 작은 벼룩처럼 자연 앞에서 우리는 벼룩에 불과하다. 노란 해가 창문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을 텐데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 할 것만 같았나 보다. 5발자국의 짧은 행진 끝에 펼쳐진 강렬한 태초의 생명. 그 강인한 생명력과 포용력에 눈을 게슴츠레 떴다. 세상은, 오늘도 세상은 당연하게 밀려오는 태양의 따듯함과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당연히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다만 벼룩의 점프가 평소보다 높았는지 오늘의 세상은 유달리 선명하게 보였다.


봄이 있고 여름이 있고 가을이 있고 그리고 겨울이 있듯이. 아침에 일어나 수도꼭지를 틀면 콸콸 물이 쏟아지듯이. 배가 고프면 늘 시원하게 유지되는 냉장고 문을 열어 수많은 음식을 꺼내 주린 배를 채우듯이. 편안할 정도의 따듯함이 아니라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뜨거움 속에 살다 보니 무뎌졌다. 뜨거움에 적응해 더욱 뜨거움을 찾고 요구했다. 그리고 온도가 조금만 차가워지면 언성을 높여 당연하게 뜨거움을 요구했고, 윽박질렀다. 천부인권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당연하다는 말은 무섭다. 마땅히 그러한 것은 없다. 1억 5천만 km 떨어진 태양의 빛이 8분 19초 전 과거의 빛인 것처럼, 어머니가 베풀어 주시는 무수한 사랑 속 그녀의 헌신과 고통이 스며 들어있는 것처럼.

배가 고플 때 사과 하나를 보는 것과 배가 부를 때 사과 하나를 보는 것은 다르다. 한 조각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부를 때 사과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루 종일 굶고 눈에 들어온 사과는 순식간에 입에 들어와 있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긴 비유와 묘사와 서두를 말한 것일까. 나. 그래 결국 변하는 것은 나다. 바꿀 수 있는 것도 나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편해서, 따듯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매일 해가 뜨고, 해가 지면 하루가 끝나기에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 배가 고플 때면 가스레인지 위에 있는 국을 데워 먹었다. 매번 다른 국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늘 맛있었다. 어머니가 주시는 안락함 속 큰 냄비에 육수를 우리느라 흐르는 구슬땀은, 무거운 육수 냄비를 들다가 부여잡은 허리는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마땅히 그래왔으니까.

당연한 것은 없다. 마땅한 그러한 것도 없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보지 않는 것, 익숙한 것을 회복기 환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글의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한 번도 물음표를 던져본 적 없던 자신에게 물음표를 찍어보는 과정. 설령 그 글이 맹수처럼 사나워 물음표 앞 문장을 쉬이 알려주지 않더라고 하더라도,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꿈틀'을 던져줄 수 있는 것. 그것이 글이라고 생각한다. 맹수를 길들이는 험난한 과정을 거치며 결국 그 맹수를 친구로 삼았을 때 다가오는 엄청난 변화를 느끼는 것. 그런 글을 쓰고자 노력하고 있다. 조금은 재미없더라도, 너무 진지하다고 비난받을지라도.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 마땅히 그러하지만, 마땅히 그러하지 않은 것들. 해가 지고 해가 뜨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어느 곳에서는 며칠 내내 해가 뜨고 있는 백야처럼. 어쩌면 당연한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엇을 당연하다고 일반화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나에게 던지는 물음표 속, 그 앞의 맹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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