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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행성

그 모호한 운명의 갈림길 

목성 JUPITER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간다. 때로는 사랑을 만나고, 또 원수를 만나며 우리의 삶은 조금씩 흘러간다. 그들을 언제 어떻게 만나며, 함께 무엇을 하는지 이 모든 것은 각자의 인생이 랜덤하게 교차하며 벌어지는 예측 불가능한 우주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 의지를 통해 각자의 우주를 가꾸어 간다. 그런데 만일 이 모든 운명이 애초에 정해진 것이라면? 어떤 인생을 살다가 언제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정해진다면 어떨까? 사실 허무하게도, 우리 태양계는 애초에 정해진 운명을 따라 차분히 늙어가고 있다.


불씨의 조건

우리 태양을 비롯한 모든 별은,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운명이 거의 정해진다. 행성도, 태양도 태어나기 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뿌옇게 퍼진 거대한 가스 구름만이 고요히 부유하고 있었다. 너무나 차분하고 고요했다. 하지만 그 정적은 서서히 깨지기 시작한다. 가스 구름 속 작은 가스 알갱이들이 아주 느리게 달라붙기 시작한다. 꼴에 입자라고 아주 찌질한 중력으로 서로 뭉친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마치 월드컵 시즌마다 시청 앞 광장을 메우는 관중들이 점점 빽빽하게 늘어나는 것처럼, 모이면 모일 수록 더 빠르게 입자들이 뭉쳐진다. 더 큰 덩어리가 되면서 이제 그들의 중력도 무시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게 거대한 가스 구름은 깊은 중심 한 곳을 향해 쪼그라든다. 구름은 사라지고, 그 중심에서 불씨 하나가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태양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런데 이 태초의 불씨를 피우기 위해선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충분한 ‘열(Heat)’. 아무리 좋은 땔감이 있어도 충분히 뜨겁지 않으면 소용없다. 만약 중심으로 한데 모인 가스 구름 반죽이 충분히 달궈지지 않았다면, 태양은 지금처럼 불타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반죽은 뜨거웠고, 태양은 지난 50억년 간 맛있게 익어왔다. 이렇게 별을 화끈하게 유지시켜주는 비밀은 그 깊은 내면에 숨어있다.


별의 불씨가 피어오르기 직전, 태초의 가스 구름은 계속해서 중심 한 점을 향해 모여 들어온다. 어마어마한 양의 입자들이 한데 모이면서 이들은 갑갑했을 것이다. 이른 아침 만원 지하철에 갇혀있는 당신을 떠올려보자. 선선한 가을에도 지하철만 타면 차창에 이슬이 맺힐 정도로 열차 안은 화끈해진다. 이처럼 가스 입자들은 꽉꽉 뭉치면 뭉칠 수록 더 뜨겁게 익어간다. 가스 반죽이 더 많이 뭉칠 수록 중심은 더 ‘짜부’되면 더 뜨거워 진다.


하지만 아직 이 가스 반죽 덩어리는 별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아직 달궈지기만 했을 뿐, 스스로 빛을 내며 타오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별은 중심에 화학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중심의 가스 원소를 땔감으로 태우는 공장이 돌아가며, 에너지를 발전한다. 화학 공장은 1년 365일 쉬지 않고 연중무휴 가동하며, 뜨겁게 별을 불타오르게 한다. 그런데 이 공장이 개업하기 위해서는 아주 뜨거운 온도가 필요하다. 어지간히 덥지 않으면, 공장은 절대 돌지 않는다. 공장이 뜨겁기 위해선, 애초에 가스 구름이 많이 짜부되었어야 한다. 즉, 처음부터 가스 반죽이 조금밖에 뭉치지 못했다면, 공장을 돌리기 위해 필요한 열을 만들어낼 수 없고, 결국 별은 빛나지 않는다.


이룰 수 없는 꿈

다행히 우리 태양은 이 어려운 과정을 잘 참아주었다. 애초에 충분히 풍족한 가스 구름이 뭉쳤기 때문에, 태양은 멋진 불덩어리가 되었다. 그런데 분명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들이 있다.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처음부터 정해진 비루한 인생을 살아가는 ‘별이 되지 못한 별 지망생’들이 있다. 태양계 행성 중 가장 큰 형님을 자처한 목성 또한 그 불쌍한 영혼 중 하나이다.


사실 목성과 태양 모두 동그랗게 모여있는 가스 덩어리다. 둘 중 하나는 화려하게 빛을 내고 있다는 점만 빼면 근본적으로 둘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목성에게는 태초에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목성을 별로 만들기에는 목성의 재료가 너무 부족했다. 더 많은 가스가 더 빽빽하게 모였어야 하지만, 애초에 가스 구름의 양이 적었다. 그 태생적 한계를 안고 태어난 목성은 아무리 노력해봤자 절대 타오를 수 없었다. 목성이 태어나는 순간, 목성의 운명은 정해졌다.


사진 출처 : NASA/Voyager I


결국 초기의 가스 구름이 얼만큼 무겁게 모였는지에 따라 그 이후의 인생이 결정된다. 별로써 인생을 불사를지, 행성으로써 차갑고 차분하게 영생을 맞이할지. 두 가지 인생은 모두 각자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충분히 무거운 가스 구름을 모아 열정적으로 돌아가는 화학 공장을 오픈한다면, 연료를 모두 소모할 때까지 자신의 존재를 우주에 내비치며 화려한 삶을 살 수 있다. 다만 그 연료가 모두 떨어지면 별은 더이상 빛나지 않고, 전성기는 곧 끝나게 된다. 반면 처음부터 가스 구름의 양이 부족했고, 불씨를 피우지 못했다면 그저 목성과 같은 커다란 가스 구슬로 살아가게 된다. 비록 화려하게 빛나지 못하지만,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가스 덩어리들은 어떤 삶을 살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 태어난 대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단순히 초기 가스 구름의 규모라는 다소 애매한 조건에 의해 별이 될지 행성이 될 지가 결정된다는 것이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주는 별빛으로만 가득할 수 없고, 결국 누군가는 별이 되는 꿈을 포기해야 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목성 정도의 규모와 위용이라면, 굳이 뜨겁게 불사르지 않더라도 괜찮은 인생이 아닐까 싶다.


원문 링크



우주라이크 [WouldYouLike]는 대한민국 우주 외교관으로써 2011년부터 천문학 대중화를 위해 천문학을 전공하고 연구하는 학생들이 직접 모여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페이스북과 독립 잡지 배포를 통한 컨텐츠 생산을 계속해오고 있으며, NASA의 '오늘의 천체 사진 (APOD, Astronomy Picture of the Day)' 의 공식 한국어 번역을 맡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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