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의 자기장에 대하여
지난 2016년 7월, 나사에서 공개한 목성의 사진이다. ‘목성’하면 황토색 계열 줄무늬에 커다란 소용돌이 ‘대적점’ 정도만 생각하기 쉬운데, 이 사진에는 목성 북극 근처의 푸른 띠가 더 눈에 띈다. 굉장히 아름다운 저것의 정체는 바로 ‘오로라’다.
아니, 오로라라고? 북극에 가야 볼 수 있다는 그 오로라?
목성에서 보이는 저 아름다운 푸른 띠는, 지구의 아이슬란드, 핀란드, 캐나다, 혹은 남극 등 극 가까이 가야 볼 수 있다는 하늘의 장관, 오로라와 같은 현상이다. 아마 우리가 목성의 북극에 간다면 (비록 목성은 기체 덩어리라 착륙이 불가능하지만,) 지구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운 오로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1)
1) 뻥이다. 사실 안 보인다. 목성의 오로라는 자외선 영역이기 때문이다.
1. 오로라 얘기를 하려면 먼저 지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는 우리가 아는 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유일한 천체다.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은 굉장히 까다롭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조건이 상대적으로 덜 까다롭다고 알려진 단세포 생물들이나 단순한 구조의 생명들도 전 우주적으로 볼 때는 매우 한정적인 환경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 생명들이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안전하게 서 있을만한 단단한 땅이 필요하고, 액체로 된 물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물이 존재할 만한 적당한 온도, 압력 등의 환경이 필요하고, 또 세포를 유지시키기 위해 산소나 태양빛으로부터 에너지도 받아야 한다. 이 밖에도 개체별로 필요한 조건들이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게 많다. 그런 까다로운 조건을 뚫고 생명체를 품게 된 행운의(?) 행성이 바로 지구다.
2. 운 좋게 이런 환경에 살게 되었어도 생명체를 위협하는 여러 가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주선(Cosmic ray)’인데, 우주선이란 말 그대로 우주에서 날아오는 방사선(radiation)이다. 방사선(일반적으로는 방사능이라고도 불리는 것.2))이 생명에게 위험하다는 것은 다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을 것이다. 방사선은 대개 아주 고에너지여서 세포에 피폭되면 유전자를 변형시키거나 세포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소량이거나 상대적으로 저 에너지 방사선이라면 생명체의 자체 회복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우주에서 날아오는 우주선은 그런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대부분이 어마 무시하게 에너지를 뿜고 있는 우리의 모항성, 태양에서 날아오고 있는데, 양도 많고 힘도 세서 생명에 아주 치명적이다.
2) '방사능'은 실제로 방사선과는 다른 용어이므로 이 상황에서 사용하면 틀린 단어다. ‘방사능’이란 방사성 물질이 방사선을 방출할 수 있는 능력, 혹은 방출하는 양을 의미한다.
3. 하지만 지구는 우주선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 방어막을 가지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바로 지구의 ‘자기장’ 말이다.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막대자석이다. 중학교 시절, 우리는 지구 내부가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지금 당신의 발이 닿고 있는 부분이 겉껍데기인 '지각', 그 안쪽이 젤리 같은 상태의 '맨틀', 더 안쪽은 무거운 금속으로 이루어진 '핵'인데, 이 핵도 겉의 '외핵'과 안쪽의 '내핵'으로 나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바로 '외핵'인데, 외핵은 액체 상태의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액체 금속이 지구 내부에서 계속해서 회전하며 지구 전체를 둘러싸는 강한 자기장을 만든다.3)
3) 액체로 된 금속의 흐름은 일종의 '전류(전기의 흐름)'를 만든다. 전류가 만드는 전기장은 자기장을 유도하므로, 지구는 커다란 자석이 될 수 있다. 더 자세히 서술하면 천문학이 아니라 지구과학이 되어버리므로, 직접 알아봐 주길 바란다. 앙페르 법칙, 페러데이 법칙, 다이나모 이론 등을 찾아보면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하여간 지구 주변은 강한 자기장이 감싸고 있다.4)
우리의 태양은 격렬하게 불타면서 엄청난 에너지와 함께, '엄청나게 에너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입자'도 사방으로 방출하는 중이다. 그 일부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초속 수백 km)로 지구에 돌진해오는 것을 '태양풍'이라고 하는데5) 강한 지구 자기장은 이 입자들을 약간씩 채집해서 물질로 된 보호막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든든한 두 겹의 보호막을 우리는 반앨런대(van allen radiation belt)라고 하는데, 이 반앨런대가 치명적인 우주선으로부터 지구의 생명체들을 보호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4) 그 모양은 막대자석의 그것과 비슷하다.
5) 우주선(cosmic ray) 중에 특별히 태양에서 오는 것들을 태양풍(solar wind)라고 부른다고 보면 된다.
5. 앞에서 말한 이 모든 방어막을 '자기권'이라고 부르는데, 실은 여기에 작은 틈이 있다. 책상에 철가루를 뿌리고, 그 위에 막대자석을 놓은 모습을 상상해보자. 바로 이런 모습이다.
철가루가 특이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자기장이 형성되는 형태로 철가루들이 정렬되기 때문인데, 막대자석의 자기장은 보통 N극에서 나와서 S극으로 들어가는 형태를 취한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자기장은 대기처럼 지구 주변을 빽빽하게 둘러싸지 않는다. 북극에서 나와서 남극으로 들어가는, 특별한 형태를 띤다. 그래서 지구 자기장과 반앨런대는 양극에서 오목하게 들어가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 오목한 부분이, 방어막의 작은 틈이다.
6. 우주에서 날아 들어오는 우주선들 중에, 이 작은 틈에 들어가게 되는 입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는 '대기'라는 2차 방어막도 준비해 뒀다. 지구의 자기장과 중력에 이끌린 우주선들이 지구 대기와 부딪히면서 빛을 내게 된다. 지구 대기는 99프로 이상이 질소와 산소이므로, 질소와 산소가 탈 때 나는 색인 초록색과 푸른색으로 빛난다. 바로 이 빛이 오로라다.
이런 현상이 목성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목성은 알다시피 태양계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행성이다. 큰 덩치에 걸맞게, 자기권의 스케일도 남다르다. 목성의 자기장은 지구의 것보다 최소 10배 이상이 강한데, 그래서인지 지구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형태를 띤다. 예를 들면, 목성의 자기권은 무려 토성 궤도 너머까지 뻗어있는 거대한 크기고, 이는 태양의 자기권보다 1000배 이상 큰 것이다. 또 목성의 위성 중 하나인 가니메데는 자체적인 자기장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위성'이기도 하며, 목성의 자기권 안에서 소소하게 자기장을 뽐내는 중이다. 화산 활동이 활발하기로 유명한 목성의 위성 '이오'는 목성에게 고에너지 방사능 입자들을 제공하는 주 공급처라서 목성 주위엔 방사능 입자가 넘쳐나고, 이 입자들이 목성 주위에 (지구의 반앨런대처럼) 도넛 모양을 형성하거나 도입부에서 소개한 아름다운 오로라도 만들고 있다.
게다가 최근, 이 엄청난 기세의 목성 자기장이 지구 자기장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지구에서 관측되는 우주선 중에는 태양풍을 뚫고 목성에서 도착한 입자들도 포함되어 있을 정도라고 한다. 별도 아닌 목성의 자기장이 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니, 역시 태양계의 큰형님답다.
그런데 잠깐, 자기장은 내부의 금속 때문에 생기는 거라며? 목성은 대부분 수소나 헬륨 같은 비금속 기체로 이루어진 가스형 행성인데?
라는 의문점이 들었다면, 정확히 짚었다. 우리가 지구에서 알아낸 바로, 행성 주위 자기장은 내부의 액체 금속이 만들어낸다. 내부에서 액체로 된 금속이 회전하거나, 하다못해 별들처럼 방사선을 직접 만들어내는 상황이 아니라면 자기장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달도 크기는 충분히 크지만 천체 전체를 관통하는 자기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체 행성인 목성은 대체 어떻게 자기장을 가지게 된 것일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목성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목성이 아주 크고, 무겁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목성의 성분은 거의 대부분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워낙 크고 무겁다 보니, 내부의 압력이 상당하다. 아무리 가벼운 수소라도, 이 정도의 압력을 받으면 곱게 뭉쳐지고 다져지게 된다. 잘 뭉쳐진 수소는 원자 간 간격이 워낙 가까워 마치 금속 같은 상태가 되는데, 이 상태를 '금속성 수소'라 부른다. 그래도 명색이 '수소'인지라, 아주 딱딱한 고체가 되진 않고, 액체 금속과 비슷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이 금속 수소층이 목성의 자기장을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금도 지구의 든든한 보호막, 자기권과 반앨런대를 연구하기 위한 탐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탐사선이 2012년 쏘아 올린 무인탐사선 Van Allen Probes인데, 덕분에 지구 자기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는 중이다. 하지만 거리가 먼 태양계 다른 행성들의 자기권에 대한 연구는 쉽지가 않아,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많지 않다. 특히 목성의 경우 워낙 자기장이 강하다 보니 다른 행성들에 비해 잘 알려진 것일 뿐 아직도 많은 부분들이 미지의 세계로 남겨져 있다. 심지어 천왕성과 해왕성의 경우 보이저 2호가 '여기에도 자기장이 있긴 있다!'라고 겨우 확인 시켜준 수준이다. 목성을 직접 만나러 간 Juno를 비롯해, 수많은 탐사선들이 무사히 멋진 정보들을 가지고 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주길 바라고 또 바란다.
참고 자료
Jupiter’s Magnetosphere: Plasma Sources and Transport, Scott J. Bolton, Space Sci Rev (2015) 192:209–236
Emission of cosmic rays from Jupiter: magnetospheres as possible
sources of cosmic rays, G. Pizzellaa, Eur. Phys. J. C (2018) 78:848
Emission of cosmic rays from Jupiter. Magnetospheres as Sources of Cosmic Rays, Pizzella, G.
Planetary Magnetospheres: Van Allen Belts of Solar System Planets, Stamatios M. Krimigis, Van Allen Day Symposium,Van Allen Hall,University of Iowa, 9 October,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