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hotel ISS!
글 : 박숙희
Welcome to hotel ISS!
멀지 않았다. 3억 원가량을 지불하고, 우주인과 비슷할 만큼의 훈련도 무사히 마친 뒤 눈을 뜨면 푸른색으로 빛나는 지구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날이. 국제 우주 정거장(International Space Station: ISS) 안으로 들어서면 <Welcome to hotel ISS!> 글자가 무중력 공간을 떠다니고, 어쩌면 어릴 적 그토록 동경해왔던 우주비행사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이 2024년까지만 ISS를 운영하기로 한다는 예산안이 발표된 이후 이전부터 우주여행을 준비해온 민간 기업들이 ISS를 차세대 우주 호텔로 재조명하고 있다. ISS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연마다 4조가 넘는 예산이 필요한데,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민영화를 통해서 운영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시각이다. 미국 정부 역시 ISS의 이러한 절차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호텔 ISS의 수익금을 현재 추진 중인 달 탐사 프로젝트의 예산으로 배정한다는 입장이다.
우주‘여행’, 우리는 우주로 여행을 하러 간다. 여행하면 역시 푹 쉬는 여유로움이 있어야 한다. 여름 휴양지에서 다이어트식품 마냥 딱딱하고 포만감도 없는 곡물 바를 아침으로 꺼내 먹고 오후의 느긋한 차 한 잔을 긴 고무호스로 힘겹게 빨아 마시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우주를 휴양지로 고른 우리는 첫날 아침에 어떤 조식을 맞게 될까. ISS의 민간인 개방이 성큼 다가온 지금, 우주에서의 식사는 어디까지 왔을까.
아주 초창기의 우주비행사들은 각종 튜브와 압축된 바 형태의 우주식량을 들고 갔다. 최초로 유리 가가린이 맛봤던 초콜릿 역시 짜 먹는 튜브 형태였다 이후 나사는 우주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쓸 수 있는 연구를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당시 Mission Foods 회사가 내놓은 가루 음료 Tang을 우주로 보냈다. 1950년대에 출시되었지만 판매량이 지지부진했던 Tang은 ‘오렌지 맛음료’라는 이름으로 비닐팩에 담겨 우주로 올라갔다. 우주비행사들은 비닐팩 안에 물을 주사한 뒤흔들어 마셨고, 그 뒤로 우주에서 마신 음료수로 유명세를 타 크게 성공했다. 덕분에 NASA가 발명했다는 오해가 있지만, 나사의 식품과학자로 함께했던 타키야 시몬스 박사는 “시중에 나온 제품이 충분히 맛이 좋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Tang을 사고, 비닐팩에 재포장해서, 우주에 보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예시로 든 Tang처럼 우주에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가루에 물을 넣어 마시는 일이다. 그러나 지난 2014년 라바짜와 아르고텍의 공동 개발로 ‘ISS 프레소‘라는 이름의 우주용 커피 머신 기계가 설치되면서 미리 캡슐에 커피를 담아 지구의 커피 머신처럼 내려마실 수 있게 되었다. 발사할 때 중력가속도에 의한 압력을 버틴 후, 우주 공간의 극미 중력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커피 머신은 우주용으로 개발된 특수 캡슐에 커피를 담아 가 ISS에서 첫 번째 바리스타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다 미국 신생 기업 Space Roasters가 커피를 만드는 방법을 새롭게 제시했다. 바로 지구 대기의 마찰열을 이용해 커피콩을 직접 로스팅 하는 것. 커피콩을 특수 캡슐에 넣어 고도 200km에서 분리시키면, 대기권 재진입 때 발생하는 열이 무중력 상태로 떠 있는 커피콩에 골고루 작용하여 눌어붙거나 타지 않고 로스팅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커피는 한 잔에 50만 원쯤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래의 투숙객들은 우주 호텔에 묵기 위해 3억을 쓰는데 50만 원이 대수일까. 성공만 한다면 ‘바리스타 우주’가 로스팅 한 커피를 맛보는 독특한 상품이 될 수 있다.
콜라계의 양대 산맥인 코카콜라와 펩시는 냉전시대의 우주개발 경쟁 마냥 누가 먼저 우주에 먼저 가는가의 문제로 신경전을 벌인 적 있다. 나사는 결국 1985년 챌린저호를 발사할 때 코카콜라와 펩시를 동시에 실어 보냈다. 두 회사 모두 나름의 기술로 우주 전용 용기를 개발했지만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탄산음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온도와 중력을 빼놓고 있었던 것.
불행하게도 챌린저호에는 적절한 냉각 기기가 없었기 때문에 우주에 닿았을 때에는 이미 두 콜라 모두 미적지근한 상태였다. 또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는 탄산을 마신다고 해도 알아서 이산화탄소만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산화탄소가 붙잡고 있는 음료수도 같이 따라 나와 젖은 트림(wet burp)을 유발했다.
본전도 찾지 못하고 실패한 탄산음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과연 어느 회사가 제일 먼저 깃발을 꽂게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콜라나 칵테일을 빨대로 마셔야만 한다면?음료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비닐팩 옆에 좁은 빨대 하나가 달랑 나온다면 투숙객 중 누군가가 클레임을 걸 것이 분명하다. 우주비행사 도널드 페팃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 시간 ‘우주용 무중력 컵’에 대해 연구했다.
원리는 간단하다. 밑이 넓어 물이 담기지 못하는 일반 컵에 비해 밑이 좁게 모아지는 무중력 컵은 물이 좁은 곳으로 모아지면서 컵의 플라스틱 표면과의 인력으로 물 전체를 붙들어 잡을 수 있다. 다만 음료를 따를 때에 벽면을 타고 천천히 흘려 넣어야 한다.
그동안 커피와 주스, 차를 고무호스로 빨아마셔야 했던 우주비행사들은 드디어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사진의 이탈리아 우주비행사 사만타 크리스토포레티 다음으로 시원하게 보이는 지구를 바라보며 티타임을 즐길 수 있는 건 우리가 되지 않을까.
이것은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입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잎이다
That's one small bite for a man, one giant leaf for mankind.
아무리 식품보존 기술이 좋다고 해도 신선한 야채가 그립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구에서 점점 가정용 채소 재배기가 상용화 중인 것처럼, 나사는 2015년 처음 ISS 내에서 식물을 키우는 실험으로 수확한 상추를 우주비행사들이 직접 섭취했다. 또 2016년에는 백일홍의 일종인 지니아 꽃을 피우는 프로젝트에 성공했다. 연달은 재배 성공에 지금은 단순히 샐러드 채소를 넘어 콩과 딸기 같은 본격적인 과실을 맺도록 연구가 진행 중이다. LED의 빛을 이용하여 무중력상태에서도 충분히 식물이 자랄 수 있음을, 더 나아가 앞으로 우리의 식사에도 당일 아침 수확한 샐러드가 식탁에 올라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였다.
한 잔의 차와 신선한 샐러드. 진공으로 잘 포장되어 데우기만 하면 되는 소시지와 베이컨. 이 느긋한 브런치에 여전히 무언가 허전한 것 같다면 바로 빵이다.
포실포실하고 부드러운 빵을 우주까지 실어 나르고 또 우주에서 제대로 먹는 것은 지구에서와 달리 어려운 일이다. 가장 먼저 부피가 크다는 점에서 우주식량으로 적합하지 않고, 두 번째로는 먹을 때 부스러기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주개발 초기에 샌드위치를 들고 탑승한 우주비행사가 샌드위치를 먹는 과정에서 부스러기가 떠다닌 사고 아닌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때문에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우주비행사들은 얇게 펴서 구워진 또띠아에 자신의 기호에 맞추어 이것저것을 넣어 부리또를 만들어 먹곤 했다.
그러나 2020년이 지나면 우주에서도 폭신폭신한 빵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주용 빵을 전문적으로 연구개발하고 있는 독일의 ‘베이크인 스페이스 Bake in space’는 다가올 2020년 8월에 부스러기가 없는 빵을 우주 오븐을 이용하여 굽는 첫 번째 실험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요즘의 우주 음식은 이렇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그림은 어디까지나 한창 개발 중인 음식들의 근황이다. 미국 400가지 러시아 300가지를 포함해 한국과 일본의 우주식량까지 합치면 아주 다양한 조합의 식단을 짤 수 있다. 한국은 지난 2008년 우주인 프로젝트에서 우주 고추장과 수정과를 비롯해 우주 라면, 김치까지 선보였다.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었던 이소연 박사는 밥에 고추장을 비벼 먹을 때 다른 나라 우주비행사로부터 ‘잼을 밥과 함께 먹는다’는 말을 듣고 웃으며 고추장을 나누어주자 매운맛에 놀랐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포장된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아 주춤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주까지 갔다면 무엇을 먹어도 다 맛있게 생각하고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던 것만큼 근사한 식사는 아닐지라도 호텔 ISS 식당의 창가 좌석에서 보는 검은 천막에 흩뿌려진 별들과 푸른 지구의 풍경 하나는 아주 근사할 것이 분명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