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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sick

2021. 5. 24. - 2021. 5. 25.

by 바람




지난 토요일에 Three cities에 다녀왔다.

Valletta-3 CITIES 페리 선착장에 내려 돌아다니다 골목에 있는 Tourist Information Office에 들어가 갈 만한 곳을 물어보니 지도를 주며 뮤지엄들을 알려준다.

나는 골목들과 카페, 공원이 더 좋아 박물관은 문 앞에만 다녀왔었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정확히 Three Cities의 지명을 확인할 수 없어 직원에게 물어보니 지도를 보며 설명해 준다. 내가 헤매던 지명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Vittoriosa(Birgu),

Senglea(Isla),

Cospicua(Bormla)

알려진 지명과 몰타인들이 쓰는 지명 이름이 달라서 인터넷 블로그 글들을 읽었을 때 혼동되었던 것이다.

하루종일 걷고 보고 느끼고 집으로 돌아와서 비빔국수와 맥주로 거창하게 저녁을 먹고 일찍 잠이 들었다.

다음날인 일요일엔 집순이가 되어 한국드라마만 봤다.

산수산하가 함께 추천해 준 ‘쌈, 마이웨이’라는 청춘로코다.

주인공들이 어리바리하지만 강단 있을 때도 있고, 능력이 있는데도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장면들을 볼 때마다 오십이 되어가는 나도 설레었다가 울컥했다가 한다.


더 편히 보고 싶은 마음에 일찌감치 침대로 들어가 계속 보다가 툭 한순간에 핸드폰이 침대와 벽 사이로 빠져 버렸다. 허걱.

이불을 잘 말아서 끼워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몸을 뒤척이면서 틈에 있던 이불이 삐져나왔나 보다.

처음엔 침대를 움직일 수 있는 줄 알고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웬걸, 붙박이 침대다.

서랍도 빠지지 않는 붙박이 서랍이다. 헐.

손은 들어가지 않고 이런저런 걸로 빼내려 낑낑거리다 포기.

저녁 7시부터 오늘 아침까지 핸드폰 없어서 못하는 걸 생각하고 빼낼 방법을 생각해 내며 뒤척이다 아침에 몰타이민국으로 가야 해서 서둘러 나섰다.

하지만 노트북 인터넷으로 찾아본 길은 실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되었고 결국 SPA 슈퍼마켓 직원에게 택시 좀 불러달라고 부탁해서 겨우 갔다.(핸드폰의 Bolt택시 앱으로 불러야 택시를 탈 수 있다)

여권 제출과 비자신청료 70유로 결제를 마치고 발레타에 가서 학원담당자와 커피 한잔하고 철물점을 찾아갔다.

계속 생각한 결과 아주 굵은 철사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까무잡잡한 주인아저씨가 10유로는 줘야 된다고 하더니 농담이라며 그냥 가져가라고 한다.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머릿속으로 철사 모양을 어떻게 하면 꺼낼 수 있을지 그려봤다.

국자처럼 옆으로 구부려서 떠 보자.

서너 번의 시도 끝에 성공!!!

오~~~ 감사합니다!!!






수업 후 초콜릿을 사들고 어제 철사를 얻었던 발레타의 철물점에 갔다.

아빠와 아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가 내가 핸드폰을 보여주며 성공했다, 덕분에 핸드폰 찾았다, 정말 고맙다 하니 잘했다며 엄지 척 한다.

초콜릿을 주고 기분 좋게 웃으며 서로 Have a nice day 했다.

오기 전에 집 앞 마트에서는 10유로짜리로 2유로 물을 사니까 잔돈 없냐며 인상 쓰는 점원 때문에 잠깐 짜증 났었는데 이 철물점의 유쾌한 부자 덕분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어디든 친절한 사람도 있고 자기 이익에 반하면 서슴지 않고 불친절한 사람도 있다.

거기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게 내 몫이다.


집으로 들어가려다 한 시간이라도 진한 커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싶어 coffee circus로 왔다.

늘 있던 발랄하고 친절한 아가씨가 아닌 젊은 청년이 커피를 볶고 있다.

일하는 사람인데 헤드셋까지 쓰고 있다.

그런데도 자연스럽다.

외국생활의 좋은 점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트의 불친절한 점원도, 이곳의 자유로운 아르바이트생도, 거리의 많은 개똥도, 좁은 길과 도로도, 아프리카인 줄 착각하게 하는 너무 뜨거운 태양도, 아무 데서나 담배 피우는 남녀들도, 뚱뚱하지만 거리낌 없이 레깅스와 크롭탑을 입고 다니는 여성들도, 너무 꼼꼼해서 숨 막히는 집주인도.

내 나라가 아니니까, 내 가족이 아니니까 그냥 좀 더 가볍게 대할 수 있는 것 같다.

싫으면 그저 눈살 한번 찌푸리면 되고 좋은 건 감탄해 주면 된다. 이곳에서 평생 살 것도 아니고.


주말에 면을 너무 많이 먹었다. 온몸이 부어있는 기분이다.

한국의 푸른 산길을 걷고 싶다.

어제오늘 마치 homesick에 걸린 것처럼 기분이 다운되어 있다.

이 멀리까지 따라온 한국의 이런저런 일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그래도 길가의 카페 테이블 그늘 아래에서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마시는 진하고 부드러운 카푸치노와 카페 안에서 볶고 있는 구수한 커피콩 향은 나를 잠시 평온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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