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8. - 2021. 5. 20.
마트에서 산 스틱 카푸치노가 카페에서 파는 것처럼 거품이 진하다.
이 집의 주인이 모두 직접 고른 것 같은 앙증맞은 커피잔에 따르니 카페커피 못지않다.
어젠 슬리에마 마트와 골목의 과일가게에서 가성비 좋은 와인, 사과, 토마토, 당근, 자몽, 아보카도를 10유로어치 사 왔다.
생각하지 못했던 여권 전면 복사와 스캔비가 8유로 정도 나와서 오늘은 먹는 데 덜 써야지 했는데 더 썼다. 그것도 슬리에마까지 가서.
운동 삼아 다녀온 셈 친다.
어제 엄마와 얼굴 보고 통화할 수 있어서 그나마 맘이 놓였는데 산수의 톡 내용은 여전히 밝아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또 죄책감.
어쩔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자.
성인이 된 자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마음으로라도 지지하기.
자기 짐은 자기가 질 수밖에 없다.
뭔가를 하고 싶거나 해야 하는데 돈이 없으면 안 되니까 일단 그 부분을 내가 조금이라도 책임져 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게 내 재정상태를 잘 만들어 놓을 생각은 한다.
이렇게 외국에서 혼자 생활해 보니 더 절실히 돈의 유용함을 깨닫는 것 같다.
외로움은 어차피 가족과 함께 살아도 느끼던 거였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만 없애면 함께든 혼자든 고독은 충분히 즐길만한 것이다.
와우~ 나랑 완벽하게 맞는 커피를 찾았다.
어제 늘 다니던 길 반대쪽으로 걸어가다 발견한 곳이다.
재즈풍의 음악과 투박한 나무탁자와 의자들, 창가의 선반에 놓인 책들, 천장에 매달려 돌아가는 빨간 프로펠러와 특이한 모양의 전등들.
딱 내 취향의 동네 북카페 같은 곳이다.
남에게 알려주기 싫은, 나만 알고 매일 가고 싶은 아지트 같은 곳.
더 끝내주는 건 지금까지 마신 몰타의 어떤 커피보다 맛이 진하고 부드럽다는 거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카푸치노의 진한 향과 맛의 여운이 입안에 계속 남아있다.
이건 아주 오래전 호주에서 IELTS 시험 후 나에 대한 보상으로 카페에서 처음 마셨던 3.4달러 카푸치노 맛이다.(그때는 1달러짜리 맥도널드 커피도 아까워했다.)
그 맛을 그리워하며 한국에서 매일 커피를 마셨지만 못 느꼈었는데 다시 찾았다.
요즘 몰타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만 찾아다니는 나에게 이 작은 공간에서 바람을 느낄 수 있게 돌아가는 프로펠러가 날 시원하고 느긋하게 만들어 준다.
어제 그 카페에 또 왔다.
이곳의 진한 카푸치노를 마시려고 오전 수업 내내 레몬녹차만 마셔댄 것이 장하다.
에그타르트처럼 생기고 안에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간 파스티찌(몰타국민간식빵)도 맛있다.
직원도 친절하다. 어제 마신 카푸치노에 regular milk와 no sugar를 기억하고 만들어다 준다.
사람들이 많아서 카페 안쪽의 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먼지가 많다. 이 예쁜 곳을 혼자 운영하나?
내가 탁자와 의자를 닦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언젠가 나도 이런 작고 cozy 한 북카페를 가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잠깐 한다.
욕망은 성취를 이루게도 하지만 또 다른 고난을 겪게 하는 걸 알면서도..
한적한 골목길에 있으면서 공간이 작고 의자나 탁자가 좀 불편하지만 직접 로스팅 한 커피 맛이 훌륭하고 분위기가 아늑하니 사람들이 늘 찾는 것 같다.
카페 한가운데에 커다란 로스팅 기계가 주인마냥 놓여있다.
내가 이런 가게를 직접 운영하면 또 어마어마하게 신경 쓸 일들이 많아서 징징거릴 테지만 자꾸 욕심이 난다.
뭘 모르니까 그런가. 무식하면 용감하니까.
커피를 너무 빨리 마신다. 맥주처럼.
천천히 마시면 금방 식는다. 따뜻할 때 마시는 커피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