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16. - 2021. 5. 17.
일요일 아침이다.
나만의 공간에서 내 밥을 하고 있다.
셰어 할 때는 뭘 만들기도 불편해서 일요일 아침에도 일찍 나와 버리곤 했다.
그 덕에 귀차니즘이 발동하다가도 원래 계획했던 여행지에 가게 되고 멋진 풍경과 신선한 바람을 만끽할 수 있기는 했다.
혼자만의 집에서 처음 맞이하는 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냄비에 쌀을 안쳐놓고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몰타에 온 지 6주째인데 밥을 두 번째 한다. 와사비라는 이름의 스시집에서 두 번 캘리포니아롤을 사 먹은 것까지 합하면 밥알을 씹은 게 지금까지 세 번이다.
오늘 한 밥에 참치와 고추장, 참기름, 계란 프라이 넣고 아주 맵게 비벼 먹어야겠다.
밥보다는 빵과 과일이 더 당기긴 했다.
맥주와 와인은 거의 주식처럼 마신다.
아침 점심은 간단히 먹고 저녁을 여왕처럼(술과 맛있는 안주 한 가지 정도지만) 먹으니 뱃살과 허리살이 출렁거리는 단계에 이르렀다.
나가려면 일찍 나가야 하는데 태양의 뜨거움에 한바탕 데인 나는 이제 구름 낀 날을 기다린다.
처음 왔을 때 무슨 지중해 날씨가 이러냐며 흐린 날을 타박했던 게 무색하다.
오늘은 Three cities에 가려고 했는데 지금 밥 먹고 나가면 가장 뜨거운 한낮이니 좀 더 느긋하게 주말 오전을 즐기다가 이른 오후에 나가야겠다.
세 도시. 정확한 이름들을 알려고 검색했더니 셍글레아, 보르믈라, 비르구다이다.
몰타이름으로는 뭐지 하고 검색하다 보니 다른 블로거들이 올린 글들이 있어 읽어봤다.
젊은 부부가 세계여행하며 쓴 글이 재미있다.
이 사람들은 전생에 웬수가 아니라 정말 친한 친구였나 보다. 아님 맺어지지 못했던 연인? 갑자기 그들의 글보다 그 둘이 궁금해진다.
꿈을 꾸다 기대하던 순간에(뭔가를? 누군가를?) 깨버렸다.
침대가 슈퍼싱글도 아니고 어린아이들이 쓸만한 싱글이라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자는 것 같다.
조금 높기도 해서 첫날에 잘 때는 떨어질까 봐 바닥에 원래 이곳에 있던 이불을 깔아 놓기도 했다.
퀴퀴한 냄새가 나서 다른 방의 붙박이장에 넣어두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냥 이불은 깔지 않고 조심하며 자긴 하는데 여전히 좁은 침대가 불편하다.
그동안 방바닥이든 넓은 침대든 편히 잘 살았던 게 또 다른 작은 불편을 더 크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 큰 공간에서 나 혼자 산 적이 없다는 걸 산수와 통화하다 깨달았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일할 때 누우면 머리와 발이 벽에 닿던 고시원에서도 살았었다.
지금은 용 된 거다.
언니 오빠들은 엄마 집 에어컨 교체하는 상의를 하느라 육남매톡이 바쁘다.
모두 치열하게 각자도생으로 살아온 우리들의 우애는 그리 좋지 않지만 그래도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은 하나일 거다.
아빠도 고생시킨 엄마를 하늘에서 도와주고 계시는 것 같다.
이런 편한 마음이다가도 이따 또 얼굴 보며 통화하면 걱정하실 게 뻔하니 난 또 짜증 내겠지. 아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