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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 심보

2021. 5. 14. - 2021. 5. 15.

by 바람




아침에 일어났는데 산수가 보낸 카톡 내용이

‘엄마 나 힘들어’였다.

깜짝 놀라서 얼른 무슨 일 있냐고 톡을 했더니 이런저런 고민 때문에 그런다고 한다.

우리가 늘 하는 걱정과 불안. 자신에 대한 한탄 같은 거다.

나도 지금까지 그러니까 완전 이해한다.

계획과 원하는 일은 많은데 노력을 다하지 못할 때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타인에게로 넘어가기도 하고 상황과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그저 파도타기 하듯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내 안의 욕망을 내려놓든지,

그걸 이루기 위해서 더 애쓰든지.

도둑놈 심보는 안된다.

멀리 있든 가까이에 있든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들어줄 뿐이다.


새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새 소파가 왔다.

주인 말로는 오래전에 주문했는데 이제야 왔다고 한다.

천으로 된 것도 맘에 들고 리클라이너라 트랜스포머처럼 소파에서 베드로 변하는 것도 재미있다.

86년생인 주인남자는 약간 깐깐하면서 섬세한 면이 있는데 집에 있는 물건들을 보면 자기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 같다.

'You have a nice taste.' 했더니 별로 말이 없던 그가 신이 나서 처음엔 이러지 않았는데 자기가 살면서 이것저것 사서 꾸몄다고 자랑한다.

전기 기술자라는 부친과 함께 와서 소파 들여놓고 창문 뜯은 김에 나랑 같이 닦고 방마다 있는 화분에 흙과 물 채워주고 세탁기와 오븐 사용법도 알려줬다.

오븐은 너~무 지저분해서 안 쓸 거지만 그래도 열심히 들어줬다.

오후 내내 신경 쓰고 사람들 간 후 집안 전체를 닦느라 진이 다 빠졌다. 몸보신이 필요하다.

조금 걸으면 생연어를 살 수 있는 fish market이 있어 지친 발걸음으로 기어이 다녀왔다.

껍질을 그대로 놓고 잘라줘서 만지기 싫었지만 생존이다. 먹고 싶은 거라도 먹어야지.

헌데 깜박하고 와사비를 안 사 왔다. 헐.

느끼해서 많이 못 먹고 와인만 반 병 다 마셨다.

푹 자겠네.





수업 끝나고 발레타의 랭귀지스쿨에 학생카드를 받으러 갔다. 그동안 온라인 수업만 해서 처음 가는 거다.

잠깐 헤매다가 구글맵의 도움으로 찾아간 학교는 고풍스럽고 낮게 늘어서 있는 건물들 중에 있었다.

지금은 여전히 학생방문이나 수업을 막고 있어서 현관 앞에서 담당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사인하고 학생카드를 받았다.

비자 관련 서류도 바로 내달라는 독촉을 받고 계단으로 내려오다가 한국 학생 담당자와 만나 비자 신청 서류 샘플을 받았다.

다행이다. 혼자 작성하면서 이건 뭘 쓰라는 거야 라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샘플 받고 알 수 있었다.

몰타의 수도인 발레타에 온 김에 구경삼아 좀 걸었다.

지난번 모든 가게가 문 닫은 상태에서 왔을 때는 한적했었는데 식당과 카페에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지금은 사진으로 보던 유럽의 노천카페 풍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나도 저기 한 곳에 앉아서 여유를 좀 부리고 싶다가 지금은 비자신청과 학교수업변경과 휴직연장고민 때문에 마음이 떠돌아다니고 있어 그냥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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