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알아야 했던 것.

ㅡ나의 유년기

by 흐르는 물

동네 사람들은 어린 나를 두고 걱정이 많았다.

매단 걱정 끝에 염려되어 나온 말이

‘나중에 시집은 갈 수 있을까?’


속마음은

‘사람 구실 못 하고 식구들에게

평생 얹혀 살면 어쩌나’ 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해답이

‘하자 많은 사람에게 가라’였다.


어른들이 인심 쓰듯이, 진심 위하듯이

어린 내게 돌아가며 쥐어 준 말이었다.


세뇌 된 나의 뇌는

연애가 가능한 연령이 되자 거짓말처럼

하자? 있는 사람들만 꼭꼭 집어냈다.


그나마 뇌의 수작질에 넘어가선 안 된다는

깊은 층에서 올라오는 경고에

요즘 세상에는 이만한 것은 허물도 아니라는 정도에서 선택한 사람이 바로 남편이었다.


나는 아기 때 낙상 사고로 허리에 염증이 생기면서

크는 내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온갖 통증과 함께 살았다.


그럼에도 두 다리와 두 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직립으로 서서 하는 모든 움직임들은 가능했다.

일상생활과 바깥 활동이 가능한 나의 '하자'는

경제 활동을 날마다 이어서 지속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쉬이 찾아오는 체력저하와 허리통증으로 누워서 쉬어야 다음 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하자’ 있는 나에게 어른들은 심어주지 않았어도, 나는 나에게 꼭 맞는 짝으로

‘하자’가 적은 사람을 찾을 게 아니라

정말 '괜찮은 사람',

나를 '배려할 수 있는 사람'찾아야 했었다.


나는 '짐짝' 대하듯 내 '하자'를 바라보던

어른들의 눈길을 외면하고,

날 선 혀로 멋대로 난도질하던 말들에 귀 막고

어떻게서든 어린 나로부터 도망쳐

내가 경제활동을 못 해도

함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했던 거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알아차리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탐구하지 않고

그저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너무 무지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