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1

by 흐르는 물


엄마에게는 일편단심 외곬수 사랑이 있었다.

평생 마음을 의지한 작은 딸, 그리고 그 딸이 낳은 딸이었다.


엄마에게 작은 딸의 딸은 첫 손녀이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한길 사랑이었다.

마음의 총량도 적었고 표현의 용량도 적었던 엄마는, 손녀의 발걸음을 쫓는 것에서 애정이 모두 표현됐다.


가방을 들어주고, 옷을 받아 걸고, 먹고 싶다는 걸 해 주는 걸 좋아하셨다.

싸서 입에 넣어주고, 떠서 먹여주기를 중학생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엄마의 언어적 애정 표현은 걱정과 염려, 속상함으로 드러났다.

제 엄마에게 야단맞은 손녀가 마음 아픈데

편들어 주지 못해 눈시울을 붉히는 때도 있었다.


서울로 이사 와서,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몇 년 동안 단전호흡을 함께 다녔다.

그때마다 엄마는 오가는 길을 작은 딸과 손녀 이야기로 채웠다.


엄마에게 작은 딸은 마음의 기둥이었다.

첫 자식은 아팠고, 남편은 돌풍 같은 사람이었다.

마음 둘 곳 없이 외롭고 헛헛했던 엄마는, 둘째인 작은 딸을 낳고 그 마음을 의지해 살아왔다고 했다.


잘되기를 바랐던 그런 딸이 결혼해서,

사위가 외국에 있는 바람에 따로 살게 되었을 때

엄마의 속상함은 손녀가 점점 커 갈수록 더 커져 갔다.

사위가 영구 귀국했을 때는 직업을 바로 갖지

못한 채 딸의 퇴근만 기다리는 모습이 못마땅해 보이셨다.


늦은 귀가와 일에 지쳐 들어온 딸이 안쓰러워

나를 만날 때마다

“어제는 저녁도 안 먹고 쓰러져 자더라.”

“쉬지도 못하고 애 챙기랴, 김서방 챙기랴…”

엄마의 무거운 표정은 더 무거워졌다.


엄마는 원하던 대로 집에서 돌아가셨다.

병원에 계실 때, 병원을 집이라고 착각하신 섬망 증세가 잠깐 있었을 뿐

죽음을 직감하고 퇴원을 원하셨다.

집에 오셔서 임종 순간까지 정신이 또렷하셨다.


나는 엄마를 붙잡고 싶어서 애원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수하를 두고 어떻게 가려고.”

“시집가는 것까진 보고 가야지.”

졸랐지만, 엄마는 그렇게 귀하고 애틋한 손녀를 먼저 놓았다.

“이제 지 손으로 밥 찾아먹을 정도로는 컸으니까.”


엄마가 마지막까지 놓지 못했던 사람은 작은 딸이었다.

간병하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엄마는 작은 딸의 계명하기 전 이름을 부르며

“강이는 언제 와?” 하고 몇 번이고 물으셨다.

그리고는

“강이야… 강이야…”

흥얼흥얼 노래하듯 딸을 불렀다.


돌아가시기 직전, 엄마는 가볍고 편안해지셨다.

여전히 웃음은 없었지만, 이례적으로 표정이 밝고 맑았다.

그 무렵부터 혼잣말처럼 낮은 음절로, 누구를 향한 건지도 모를 말을 중얼거리셨다.

“사랑해. 고마워…”

사이사이에는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세 달 남짓 병상에 누워 계셨던 엄마는

손녀가 수학여행을 마치고 막 들어온 그 시간에 맞춰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렇게 한 점 미련 없이 훌훌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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