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결혼 후 첫 명절이 생각나곤 한다.
웃픈 기억의 얼룩.
나의 시어머니. 대쪽 같은 한 가지 가치관이 있으시지만 마냥 좋은 분이다.
시댁에 가도 와서 누워라, 쉬어라, 하지 마라, 그만 해라, 쉬었다 해라 하시는 분이셨다.
결혼 후 첫 명절은 설날이었다.
어린 새댁이 명절에 뭘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기에 친정 엄마에게 장을 같이 봐 달라고 했다.
마침 당시 이동 최단 거리는 우리집 친정 시댁 순이었다. 그래서 엄마와 장을 보고 시댁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시간이 좀 늦어졌고 친정에 엄마 짐을 올려드리고 서둘러 시댁에 갔다.
당연히 반갑게 맞으실 줄 알았던 어머님이 왜 이렇게 늦었냐고 약간의 채근을 하시는가 싶더니,
남편이 처가에 갔다 왔다고 말을 하는 순간, 어머님은 급기야 언성을 높이셨다.
'결혼 후 첫 명절인데 친정부터 가는 법이 어디 있냐'며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이게 어머님이 살아오신 인생과 신념을 뜻하는 말이라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거짓말도 아니니까, 그냥 장 봐 오느라 늦었다고 하면 좋은데...
변명의 기회도 없이 어머님이 나가셨기에
우리는 일단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어머님을 쫓아가며
잘못했다고 했고 남편이 어머님께 당도하고야 노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친정에 간 게 아니라 장모님이 장을 같이 봐주신 거라고..
당신도 그토록 화가 나실 줄 몰라 놀라셨던 모양인지 스스로에게 당황하신 표가 역력했다.
그런 어머님을 위해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덜그럭 덜그럭 명절 지낼 준비를 했다.
막상 가보니, 음식 준비를 어머님이 거의 다 마쳐 놓으셨고 나에게 뭐 일을 시키실 것도 없었는데,
그저 아들 얼굴이 빨리 보고 싶으셨나 보다.
어차피 자취를 하던 아들인데, 어디 뭐 멀리 보낸 것도 아닌데..
내게 맡긴 것이(?) 못 미더우셨던 걸까?
전화라도 먼저 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단지 어머님께 도움이 되고 싶었던 마음에 무지와 성급함이 더해졌던
첫 명절의 해프닝은 이젠 짙은 추억이 되어버렸다.
이번에도 설날이었다.
큰 아이가 두 살, 뱃속에 이제 곧 나올 둘째가 있을 때의 일이다.
명절 음식 준비를 끝내고 퉁퉁 부은 발을 올려놓고 이제 쉬어볼까 하고 시계를 봤을 때는 밤 12시가 막 넘어가는 때였다.
아버님의 일을 도와드리고 늦게 들어온 남편이 주방을 힐끗 보더니
"엄마, 이번엔 전 안 해? 냄새가 안 나네"라고 한 마디를 던지고 씻으러 들어갔다.
어머님과는, 전은 내일 하기로 말을 끝내 놓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들의 그 한 마디에 어머님은 정말 용수철처럼 엉덩이를 튕겨 일어나셨다.
아가는 그냥 쉬어라 라고 하셨지만,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간단히 먹을 것만 몇 개 하자고 했으나 하다 보니 많이 하게 되었고
다 되었으니 나와서 먹으라고 남편을 부르셨는데, 들어가 보니 남편은 잠이 들어 있었다.
애꿎은 각종 전 들은 꼬수운 향을 내며 그대로 덮였다.
다음 날 물어보니, 피곤해서 먹을 생각도 없었고
먹고 싶은 생각에 물어본 게 아니라 그저 궁금해서 한 말이었다는데..
어머님께는 그 말이 '엄마, 지금 먹고 싶어'로 들리셨던 모양이다.
결혼이 처음이라 낯선 것 투성이었던 새댁과 새신랑은 그저 실수를 통해 하나씩 배워나갈 뿐입니다.
이제야 그 마음 헤아려 더 잘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머님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천국에 가 계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