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누군가는 아이의 편에 서야 한다.
놀 수 있는 시간을 최대치로 끌어 쓴 아이가 뒤늦은 목욕을 시작했다.
따듯한 물이 몸에 닿으니 졸음이 몰려오는지 계속 하품을 쏟아냈다.
"우리 빨리빨리 씻고 자자~~"
엄마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합의된 움직임이었다.
아이도 엄마도 아빠도 모두 그러기로 하고 시작한 목욕이자 잘 준비였다.
그런데 목욕을 마치고 아빠와 물기를 닦던 아이가 새로 선물 받은 장난감을 가리킨다.
"엄마 근데 나 저거 장난감 놀이 한 번만 하고 ~"
엇! 스스로 정리를 끝낸 장난감이었고 분명 합의하에 시작한 잘 준비였다.
하품을 그렇게나 많이 해 놓고 놀이를 한번 더 하겠다고 하는 건 반칙 같은 일이었다!
"응????? 아니야~ 지금 너무 늦어서 우리 얼른 자기로 했지~ 내일 하자~"
갑자기 아이가 입을 삐쭉거리기 시작하더니 눈이 빨개진다. 울음 장전이다.
엄마는 단호한 목소리를 꺼냈다.
"안돼~!! 오늘은 너무 늦어서 정리 다 한 거지?! 내일 하자!”
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엄마는 울어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분주하게 칫솔질해 나갔다.
양치를 마치고 욕실 밖으로 나가니 잠옷을 다 챙겨 입고 로션을 이쁘게 발라 반들반들 해 진 아이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거 장난감 딱 한 번만 놀이하고 잘게요 엄마~~~ (하트 하트 눈빛 발사)”
엄마를 스르륵 녹이는 미소와 맨트, 결코 거절할 수 없는 필살 무기가 발사되었다.
“아악~~~ 이렇게 이쁘게 말하는 거야~~?!!”
아이를 꼭 안으며 너무 이쁘게 말해줘서 거절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번을 놀고야 말았다.
사실 시간으로 따지면 [울고 - 안된다고 씨름하고 - 달래고] 하는 시간이나 별 반 다르지 않았다.
오분쯤 더 늦어졌을까?
오분 늦게 자는 대신 웃으며 자는 시간이 되었으니 충분했다.
여기서 훌륭했던 건 아빠의 역할이다.
단호하게 거절을 한 엄마는 화장실로 들어가 버리고 이제 남은 건 아빠와 우는 아이, 둘 뿐이었다.
아빠는 아이의 비밀 지원군이 되었다. 속삭이는 목소리로 아이를 달래고 작전을 세웠다.
"우리 잘 준비 싹 다 하고 이쁜 말로 엄마에게 한 번 더 말해볼까? 대신 꼭 약속을 지켜야 돼~ 딱 한 번만 같이 놀고 자자 알겠지?!"
아빠와의 비밀 작전에 신이 난 아이는 그대로 행동했고,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사실 이미 이때부터는 장난감에 관심은 끝났다. 허락을 얻어내고 장난감은 몇 번 만지작 거리고는 스스로 내려놓았으니까.
이미 아이의 관심은 아빠와의 비밀작전을 성공시키는 데에 있었다.
성공했고 - 놀았고 -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고 - 칭찬받았다.
사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엄마와 아빠가 한 편이 되는 일이 주로 일어난다.
한 사람이 단호한 결정을 내리면 다른 한 사람은 행동대장처럼 움직인다.
그 어느 때 보다 손발이 잘 맞는 한 팀이 되어버린다. 아이는 빼고 말이다.
엄마가 "안돼~ 이제 캔디 그만 먹어~"라고 말하면
아빠가 "거봐 너무 많이 먹는 거 같더라 이리 줘~" 하고 손에서 캔디를 뺏는다.
아빠가 "이제 그만, 장난감 정리하기로 아까부터 말했지?!"라고 단호하게 말하면
엄마가 "자! 이제 줘, 얼른 정리 하자~" 하며 장난감을 치워버린다.
물론 이렇게 하면 상황이 쉽게 종료될 수 있다. 엄마 아빠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는 다르다.
서운한 마음에 결국은 울음을 터트려 버리거나 불만스러운 마음은 그대로 있는 상태로 엄마 아빠의 말에 따르게 된다. 따를 수밖에 없다. 아직 힘이 없으니까. 힘에 의한 굴복은 생각보다 금방 뒤집힌다. 아이는 힘이 생기는 족족 그 힘만큼 더 고집을 피워보고, 더 우겨보려 들 것이다.
육아가 점점 더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대치상황이 늘어나게 돼 버린다.
육아퍼실리테이터라면
부모 둘 중 한 명은 아이의 편에 서야 한다.
행동대장이 아니라 비밀지원군이 되자.
부부 중 한 사람의 말에 행동대장이 되어 편을 먹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편에 서서 비밀지원군이 되는 것이다.
엄마가 "안돼~ 이제 캔디 그만 먹어~"라고 말하면
아빠는 조용히 아이에게 다가가 말한다.
"하~ 이제 그만 먹어야 된데~ 어떻게 하지? 그럼 우리 이거 잘 숨겨뒀다가 저녁 먹고 딱 하나만 더 먹을까? 어디다 두면 좋을까?"
아빠가 "이제 그만, 장난감 정리하기로 아까부터 말했지?!"라고 단호하게 말하면
엄마는 "맞네 너무 늦어서 그러네~ 장난감 통 까지 빨리 가기 할까?"라고 아이를 지원한다.
물론 단번에 안 될 수도 있다. "아니 싫어 지금 더 놀고 싶어~~~"
"그럼 장난감 정리 얼른 하고 침대에 숨기 놀이하자~ 정리 싹 해놓고 우리가 숨으면 아빠가 깜짝 놀랄 거야~"
행동대장은 이런 과정을 거친다.
A라는 행동을 요구 -> 행동을 강제 이행 -> A 가 이루어짐
이 안에는 단호한 지시, 강제적 행동, 화남, 서운함, 울음, 시끄러움, 더 단호해짐, 혼남, 불편한 마음 이런 것들이 주로 들어있다.
비밀 지원군이 되는 것은 이렇다.
A라는 행동을 요구 ->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의논 -> 함께 결정한 방법으로 행동 -> A 가 이루어짐
이 안에는 단호한 지시, 함께 생각, 팀워크, 지지를 느낌, 아쉬움, 좋은 방법을 함께 결정, 함께 행동, 즐거움, 재미, 기특한 마음, 칭찬 이런 것들이 주를 이룬다.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만 과정이 완전하게 다르다.
그 과정 속에 들어있는 언어의 표현, 느끼는 감정, 형성되는 정서 모든 것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 과정이 아이에게 쌓이면 어떻게 될까?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서 이런 일들은 수시로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마다 부모가 어떤 자세로 아이와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는 정말 중요하다.
부모 클래스에서 만난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우리 아버지는 정말 엄하셨었어요.
반찬 투정을 하기라도 하면 '그럴 거면 밥 먹지 마!' 하시며 호통을 치셨죠.
고기가 질겨서 질기다고 했을 뿐인데 잔뜩 화를 내셨다니까요.
그런데 진짜 싫었던 건 화내는 아버지가 아니라 그 옆에 엄마였어요.
'아빠가 너 먹지 말라신다~' 하시면서 숟가락을 획 가져가시는 거 있죠.
생각해보면 화내는 아빠는 별로 안 미웠는데 숟가락을 뺏어가는 엄마는 진짜 얄미웠어요.
행동대장이 되지 말고 비밀지원군이 되어야 한다.
미움받는 대상이 아니라 고마움을 느끼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상황을 쉽고 부드럽게 만들어 가는 것,
육아퍼실리테이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