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험으로 만들 것인가?!
베트남에 가게 되는 날을 기다리며 신나 하던 아이가 출발을 하루 앞두고 물었다.
"그런데 우리 베트남에 왜 가는 거야?!"
순간 잠시 얼었다.
여행을 가는데 왜 가느냐니.. 이런 질문은 상상해 본 적 없었다. 다시 말하면, 정확하게 설명해 준 적이 없는 거였다.
나에겐 당연한 여행, 내 안에 자리 잡은 장기 여행의 의미가 아이와 공유되거나 싱크를 맞춘 적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비행에 필요한 첫 번째,
우리가 왜 가는지 공유하기.
여행이라고 다 같은 여행이 아니더라. 쉬기 위해 가는 사람이 있고, 촘촘한 일정으로 문화를 탐방하기 위해 가는 사람이 있다. 그뿐인가 어쩌면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왜 한 달간의 여행을 떠나는지, 그곳에서 유치원은 왜 다니는 건지, 우리의 대부분의 일정은 어떻게 될 예정인지,
내 마음속에 있는 큰 그림을 설명했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공간을 내어주었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것, 아이가 상상하는 이 여행의 그림은 어떠한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가 있는 아빠가 아주 덥다고 해 준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의 유모차와 손 선풍기를 꼭 챙겨야겠다고 말한다.
쫄래쫄래 따라다니기만 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이끌어 주는 것도 결국 양육자의 몫이다 싶다.
두 번째,
짧게 쪼갠 목적지.
비행시간 5시간만 생각해선 안된다. 3시간 전 공항 도착, 이것저것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5시간을 날아 도착해서도 또다시 대기, 대기,
이미그레이션과 짐을 찾는 일, 일행을 만나거나 택시를 잡는 일, 호텔까지 도착하려면 꼬박 12시간은 잡아야 하는 일정이 맞다.
이 시간 동안 "기다려, 기다리라고 했지, 아직 아니야, 좀 더 가야 해, 그만 좀 해" 하는 식에 이야기를 얼마나 하게 될까.
즐겁게 시작한 여행이 잔뜩 불편해지기 딱 쉽다.
목적지는 짧게 쪼개고 그때그때 목표 달성을 기뻐하자.
"오케이! 공항에 무사 도착 성공! 이제 수속할 차례야~~ 줄이 긴데 잘할 수 있을까?! 드디어 우리 차례야! 됐어 성공!!"
"다음은 뭔지 알아?! 트레인을 타고 게이트까지 가야 돼! 이번 미션은 104번을 찾는 거야!"
물론, 그래도 지치기도 하고 그래도 지루해하기도 하며, 그래도 언제 도착하냐고 많이 묻는다.
그러나 적어도 서로 험악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짧게 쪼갠 목적지를 클리어해 가며 끝판 대마왕 도착지까지 가는 것이다!
세 번째,
작고 새로운 것들.
비행기에 타서 이륙 후에야 꺼내 주는 것이 있다. 바로 새롭고 작은, 그리고 저렴한 장난감이다.
새로움은 관심을 만들어 주고 작아야 조물조물 반경이 크지 않게 놀 수 있다. 그리고 저렴해야 한다. 곧 잃어버리거나 쉽게 망가트려도 화내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내가 잘 사용하는 아이템은 이런 것이다. 우드락 만들기.
우드락을 이용해 간단하게 조립할 수 있는 장난감이다.
또각 거리며 잠시 집중하기 좋고, 완성되면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며 놀이를 한다. 그러고는 쉽게 부순다.
지난 한 달 살기에 14시간의 워싱턴행 비행을 버틸 때에도 이 녀석이 큰 역할을 해 주었다. 그때는 좀 더 쉬운 버전을 구입했고, 이번에는 조금은 난이도가 있다.
로봇을 조립하고 몇 가지 상황극으로 놀며 부서지거나 망가져도 큰 고민 없이 안녕을 고한다.
네 번째,
원래 좋아하는 장난감.
아무리 새로운 것이라 해도 한 가지 장난감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원래 장난감이 한 시간 가면 잘 가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다음으로 꺼내 드는 것은 집에서 챙겨간 원래 좋아하는 장난감들이다.
비행 준비 단계에서 아이에게 직접 고르도록 해서 엄마 가방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것들을 몇 개 챙긴다.
그렇게 또 한 시간 버틴다.
마지막,
직접 해 볼 기회.
여행은 경험이 된다고 하지만, 아이에게 경험의 기회를 충분히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장난치면 안 되니까, 빨리빨리 해야 하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비지니스 트립이 아님을 상기해야 한다.
여권과 티켓을 직접 관리해 볼 짧은 기회를 허락하자.
물론 자칫 잃어버리면 큰일 난다. 그 긴장감과 중요함을 아이에게도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아이 손에 여권이 가 있는 동안 주의를 기울여 쳐다봐야 하는 것은 물론 양육자의 몫이다. 아주 중요한 것이고 잃어버리면 아무도 못 가게 될 수 있다는 설명이 몇 번 반복되면 아이가 스스로 중요한 물건을 양육자에게 맡기기를 선택한다.
"내가 들고 가고 싶어~"라고 하는 아이에게 "안돼! 이건 잃어버리면 안 되는 거야!"라고 무조건 막아버리는 것보다 훨씬 좋다.
조금 더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스스로 부모에게 맡겨야겠다고 선택하게 되는 것은 아이 안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너무 중요한 거라, 내가 맡아줄까?! 도움이 필요하면 꼭 말해줘~ 여전히 잘 가지고 있지?!"라고 체크하면 된다.
긴 줄을 잘 기다렸거나,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잘 지켰을 때,
보통 다음 할 일이 또 있기 때문에 휘리릭 넘어가기 쉽다. 그런데 이 순간에 짧은 칭찬으로 이 일들을 성공의 경험으로 만들어 주면 좋다.
"너무 멋지다! 우리가 해냈어! 빨간 줄 넘지 않은 거 진짜 훌륭해! 다음은 뭔지 알아?! 짐 찾기야! 가볼까?!
6번 벨트에서 나온데! 찾아보자!"
여행의 시작이 오래 참음이 아니라, 석세스가 되는 순간이다.
우리가 시켜주고 싶은 '경험'이 어떤 경험이 될 것인가가 결정되는 일이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을 때,
함께 기뻐하며 침대 위를 잠시 함께 뒹굴어 주는 것이 마무리이다.
끝판 대마왕을 깼을 땐 폭죽이 터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