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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아기오리

이런 나라도 부여잡아야지

 

뀍뀍~ 뀍뀍

어느 가을밤, 자그마한 호숫가에서 오리 새끼들이 깨어났다. 가장 늦게 태어난 오리는 비뚤어진 부리 때문에 주변에서 따돌림을 받는다. 어미를 찾는 울음소리도 형제 오리들과는 다르다. 말을 하려고 하면 주변 오리들이 비웃기 일쑤다. 날이 갈수록 특이한 외모와 울음소리는 눈에 띄었다. 형제 오리까지 이 못생긴 아기 오리를 콕콕 쪼아대며 괴롭혔다. 심지어 어미 오리도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네가 먼저 떠나 줬으면 좋겠어


‘내가 너무 못생겨서 저러는 거야’

아기 오리는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다.


 하루 종일 머물 곳을 찾아 헤맸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한 아기 오리. 늦은 밤 작고 허름한 가축우리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발견한다. 헐거워 삐걱거리는 문틈 사이로 고개를 밀어 넣는다. 그곳엔 터줏대감인 고양이와 암탉이 있다.

"거기서 쭈뼛거리지 말고 이리로 들어와"

고양이가 새침한 듯 아기 오리를 반겨주었다.

아기 오리는 의외에 환대에 의아했지만 다른 방도도 없었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고양이와 암탉은 이 이상한 아기 오리를 금세 알아차렸다.

근데 너 생김새가 특이하구나

고양이가 물었다.

“너 나무를 탈 수 있니? 몸을 동그랗게 마는 건?”

"아니"
아기오리는 의기소침하게 대답했다.

닭이 물었다.

“그럼 알을 낳을 순 있겠지?”

"아니"


이상하게 생긴 주제에 재주는 하나도 없구나, 쓸모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고양이는 발톱을 세우며 오리를 할퀴려 했다. 다시 아기 오리는 이곳을 떠나야 했다.


 가을밤은 점점 추워졌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오리는 먹이를 찾아 호수 속을 헤집어 보았다. 그러나 한참을 찾아도 보이는 건 낟알 몇 개가 전부였다. 그때 풀 섶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개구리였다. 오리는 숨을 죽였다. 다행히 아직 개구리는 오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개구리는 점점 오리가 있는 물가로 가까워졌다. 이제는 아기 오리가 재빠른 부리질을 한다면 개구릴 잡을 수도 있는 거리에까지 이르렀다.


 그때 오리는 보았다. 개구리의 뒷다리 하나가 성치 못한 것이었다. 폴짝 뛰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헤엄치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아기 오리는 무엇에 홀린 듯 배고픈 것도 잊고 지켜보았다. 어느새 개구리는 이상한 몸짓으로 유유히 건너편에 도달했다. 아기 오리는 무언가 가슴이 울컥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추운 가을과 겨울을 호숫가 어귀에서 가까스로 견뎌낸 아기 오리. 호숫가에 머무는 동안 여러 동물들을 살펴보았다. 뒷다리가 다친 개구리, 부리를 다친 박새, 꼬리 색이 하얀 멧새 그리고 가로무늬 꼬릴 가진 다람쥐까지.

‘다람쥐의 꼬리 줄무늬가 저런 모양도 있었구나’

꼬리 무늬가 가로로 그어진 다람쥐를 아기 오리는 난생처음 보았다. 오리는 놀란 눈으로 바라봤지만 모두들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버텨내는 듯했다.


뒷다리가 다친 개구리는 조금 느리게,

부리가 다친 박새는 낟알을 두 번씩 쪼았으며,

꼬리 색이 하얀 멧새는 포식자의 눈에 덜 띄기 위해 해질 녘에야 활동을 했다.

그리고 가로무늬 꼬리의 다람쥐는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고 있었다.


 아기 오리는 소외받은 다른 동물의 맘을 알 수 있었다. 상처 입은 영혼의 이야기를 제 이야기처럼 들어줄 수 있었다. 듣는다는 것. 흘려버리지 않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나약한 동물들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오는 동안 아기 오리에게도 몇몇 친구들이 생겼다. 비록 같은 오리는 아닐지라도.


그중엔 호숫가에서 유명한 두꺼비도 있었다. 지치지 않는 창의력으로 날마다 새로운 노래를 부르는 두꺼비. 매일 바뀌는 노랫소릴 듣기 위해 멀리서도 찾아올 지경이었다. 두꺼비는 노래를 마치면 가장 먼저 오리가 머물고 있는 호숫가 어귀 갈대가 우거진 곳으로 왔다.


오늘도 내 노랜 엉망이었어


"호숫가 동물들은 내가 늘 새로운 노랠 만든다며 치켜세우지. 사실 그건 어제 부른 노래와 똑같아”

두꺼비는 속상한 듯 말했다.


“난 노랠 만드는 법도 잘 몰라, 사실 어제 부른 노래도 기억이 나질 않는 걸”

그 말이 겸연쩍었는지 두꺼비는 크게 웃었다.


“내가 새로운 노랠 만들지 못하는 걸 다른 동물들이 알게 된다면 얼마나 창피할까?”

오리는 두꺼비를 가만히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난 노랠 불러. 그리고 그건 즐거운 일이야

“역시 너랑 이야길 나누면 맘이 편하다니깐, 고마워 친구”


 아기 오리를 찾는 동물들은 점차 늘어났다. 오리에게 고민거리를 털어놓으면 해결된다고 소문이라도 난 모양이다. 휘어진 오리의 부리를 쳐다보며 이야길 하다 보면 무언가를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는 듯했다.

한때 오리를 업신여겼던 낡은 가축우리의 그 고양이도 찾아왔다. 아기 오리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새 몰라 볼 정도로 수척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암탉처럼 알도 낳지 못하고, 털은 자꾸 빠져서 주인마님께 미움받던 지경이었어"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간데없었다.

"나를 예뻐해 주던 주인 할아버지도 오래전 하늘나라로 떠났버렸어”

고양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어떤 생각을 하는 듯했다.

아기 오리는 고양이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점차 그 집에서 업신여김 받는 존재가 되었어”  

“그때쯤 네가 온 거야”

아기 오리는 그때의 불안했던 시절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나보다 못난 동물을 보니 내가 나아지는 느낌이 들었어"

"하지만 네가 떠나자 나는 다시 하찮은 존재가 되었어"

고양이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너를 놀리는 건 재밌었어.
그런데 난로 옆에서 잠드는 밤이면 네게 미안해졌었어.

“어쩌다 보니 이렇게 혼잣말만 하게 되네”

고양이는 쑥스러운 듯 말했다. 할아버지가 떠난 이후 누군가와 이렇게 오래 대화를 한 건 처음이었다.

"널 못생겼다고 놀려서 미안해"


오리는 이 말에 깜짝 놀라며 말했다.

"나는 아직도 비뚤어진 부리를 가지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꺽꺽거리는데?"

아무리 고양이가 업신여김 받는다 해도 자기는 여전히 부리가 휜 미운 오리였기 때문이다.


넌 여전히 부리가 휘어있지만 누구보다도 위로가 되는 친구야. 내겐 가장 멋져 보여


아기 오리는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꼈다. 미운 자기 모습도 괜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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