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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파도키아에서 2

이불 밖은 변수가 존재하는 법이다. 특히 낯선 곳이라면

 명함이라도 한장 받아가려고 해도 분위기가 영 아니다. 자신이 실컷 잘 설명해줬는데 날 못믿냐라는 분위기가 나올 듯한 강한 예감이 든다.


 L15.

거기에 가면 상황이 해결되겠지. 찾아가니 사람은 있는데 항공사 특유의 빨간 가이드라인으로 창구가 닫혀있다. 급박한 마음에 들어가도 되냐 묻고 바로 가이드라인을 열고 들어갔다. 젊은 직원이 한참 상황 설명을 듣더니 여긴 국내선 티켓 발행 창구라고 본부로 가란다. 더 이상 이야기해도 상황이 달라지진 않을 것 같아 알려준 본부로 향했다. 본부로 가니 여전히 창구에서 자기네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손님인 내가 와도 아무도 눈을 맞춰주진 않는다. 직감적으로 여기서 인상 좋은 직원과 만나야 한다. 세명 중 한면을 찍고 상황을 설명했다. 결과는 꽝. 항공권이 서로 연결된 것이 아닌 별도의 항공권이라 책임질 수 없단다. 내가 책임은 연착된 터키 국제항공기에 있지 않느냐 따져도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한다. 앞서의 상황을 설명하며 여기서 티켓을 무료로 바꿔준다했다 전했더니 누구냐고 묻는다. 그리고  당신이 산 티켓은 프로모션이라 강조한다. 뭐 프로모션으로 샀던 일등석이던 간에 예정된 시각에서 늦춰진 항공사에 (더군다나 같은 항공사) 책임이 있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같은 대답. 포기하고 다음 항공권은 언제냐고 했더니 다음날이란다.

터키인들은 차를 즐겨마신다. 하루에도 수차례 찻집에서 차를 마실 정도로 여유를 즐긴다. 강한 특유의 맛을 나는데 한잔에 1~2리라, 우리돈 400~800원 정도로 저렴하다.

 그 직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다시 국제선 입국장으로 들어가야했지만,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서는 들어갈 수도 없지만 어차피 오늘 일정은 모두 날아갔다. 있을 곳도 없고 오란 곳도 없다. 캐리어를 끌고 한참을 돌아(방향치의 특성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진가를 나타낸다) 몇 번의 실수 끝에 국제선 입국장 앞. 들어가는 길은 막혀있다. 카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어 다른 사람 들어갈때 상황을 설명하고 들어가려니 무슨 테러리스트 보듯 훠이 손으로 내젓는다. 제길슨! 다행이 그 다음 사람이 무슨 사연이 있나보다 해서 내부 사람에게 상황을 말해주고 공항 가드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그보다 상급자처럼 보이는 인상 좋은 사람이 여권을 보관한 채 들여보내준다. 무거운 캐리어를 여기 좀 둬도 되냐 물었더니 웃으며 폭발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두고가면 안된다고 들고 가란다. 그래, 이정도 해준 것도 감지덕지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그 직원을 찾았다. 근데 이 터키인 다 비슷하게 생겼다. 같은 자리를 찾았는데 약간 달리 생긴 듯 하다. 그 직원만 회색 조끼를 입었던 걸로 기억했는데 이 직원도 회색 조끼다. 아마 유니폼인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다(다른 직원은 안 입고 있으니). 상황설명을 하니 다시 L15로 가라고 한다. 이건 뭐 뫼비우스의 띤가? 가도 아무 것도 해주질 않더라고 하니 이젠 자세를 낮춰 여긴 수하물 다루는 곳이라고 한다. 젠장 그랫으면 첨부터 그러던가!!!


 이제 모든 일정을 다시 재검토 해야한다.

카파도키아 - 독일 - 이스탄불의 일정에서

이스탄불 - 독일 - 카파도키아로 변경을 고려해본다. 둘 다 체류기간은 4박 5일. 이리저리 고려해보다 결국은 다시 카파도키아로 향하기로 정했다.


모든 일정이 어긋난 채 한 밤에 도착한 이스탄불 버스정류장. 어떻게든 카파도키아로 가야한다.

야간행 버스가 있다. 750킬로를 12시간을 달려 최종 목적지인 괴레메로 도착하는. 버스는 오토가르에 위치해있다. 메트로를 타고 터키에서 가장 큰 이스탄불의 오토가르(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이스탄불의 야경은 멋져야 하건만 내 맘이 그래서인지 메트로 밖으로 보이는 이스탄불의 야경은 무미건조하기만 했다. 12시간 비행기는 정말 고역이었는데 또 버스를 같은 시간동안 탈 수 있을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지금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흔들리질 않습니다. 내가 요즘 한참 관심을 가지는 화두다. 불교적 깨달음의 말씀이다. 나의 멘토인 법륜스님의 말씀이다. 사실 이번 여행의 큰 목적 중 하나는 조용히 나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여행은 변수로 이루어져 있단 것을 잊었던가? 오랫만의 배낭여행이라서 깜빡 잊었던가? 이불 밖은 다 위험하다는데 배낭여행이야 오죽하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괴레메행 버스는 방금 떠났습니다. 오늘 버스는 없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전세계적 한파가 몰아친 가운데 눈덥힌 앙카라 버스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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