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와 게임에 중독된 아저씨-쇼펜하우어와 상담

유튜브와 게임을 끊고 싶어요. 쇼펜하우어의 통찰

by 지식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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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보느라 또 늦게 잤다.


"하 씨 이것만 보고 자야지." 벌써 새벽 1시다. 안 봐야지, 안 봐야지 하다가 결국 잠이 안 와서 뒤척이다가 하나를 누르고 말았다. 진짜 안 누를 수 없는 자극적인 썸네일이다.


'40대에 제발 딱 3가지만 하세요!.'

'폭싹 속았수다 해외 미친 반응'

'AI 미쳤다. 드디어 생체로봇 출시'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숨겨진 세계관-로다주 추천'


뭘 자꾸 미쳤다 래? 그럼에도 '40대 제발 딱 3가지만 하세요'를 눌러본다. 영상도 짧으니까 괜찮겠지. 건강 챙기고, 책 읽고 글 쓰라고? 아휴. 뻔한 얘기다. 옆에 추천 영상을 보니 누가 부업으로 월 천만 원을 벌었다고 한다. 알고리즘을 타고 타고 들어가다 보니 벌써 1시간이 지났다. 2배 속도로 재생했는데...


5시간밖에 못 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사를 간다. 아침에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때문인지, 아니면 어젯밤의 후회 때문인지 배까지 싸르르 아파왔다. 변기에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열고 RPG게임을 연다. 음 업데이트 되었군. 나름 중수 정도 되는 실력으로 몬스터들을 때려잡는다. 힘없이 쓰러지는 몬스터들을 보며 쾌감을 얻는데, 메신저에서 어디 갔냐고 계속 찾는다.


퇴근길 지하철, 유튜브와 게임은 긴 퇴근시간의 유일한 벗이다. 문득 목이 아파서 고개를 드니 죄다 주식, 웹툰, 게임, 유튜브 시청 중이다. 하. 다들 똑같네… 근데 뭔가 허무하다. 뭔가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데 난 왜 이런 쓸데없는 걸 보고 있지. 왜 한 번 보면 헤어 나올 수 없지. 미치겠다.


쇼펜하우어 삼촌을 만나다


지하철에서 한참 몬스터를 때리고 있는데, 옆에 누군가 혀를 끌끌 찬다.

"답답한 녀석. 스마트폰이 네 목줄을 잡고 있구나."

미친 사람인가 싶어 자리를 뜨려는데, 갑자기 말을 붙인다.

"정민이 이 녀석. 아직도 그 모양인게냐?"


엇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자세히 보니 쇼펜하우어 외삼촌이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 수학을 독학하면서 천재 중의 천재라 불리면서 집안의 기대를 한 몸을 받은 삼촌. 철학과에 들어가 교수가 되었지만 인기가 없어서 강아지랑 혼자 사는 외로운 천재. 최근 쓴 책이 엄청 잘 팔려서 나름 유명해졌지만, 특유의 꼬장꼬장함은 여전하다.


"아유 삼촌. 잘 지내세요?"

"그럼. 잘 지내다마다. 그나저나 너는 아직도 이 쓸데없는 것에 휘둘리고 있냐?"

삼촌의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솔직하게 얘기한다.



의지를 들키다.


나: 하 매일 밤 이 지랄입니다. 뭘 그렇게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유튜브, 게임... 계속 보고 있으면 허무함만 밀려오는데, 손에서 놓지를 못하겠어요. 제가 왜 이러는 걸까요?


쇼펜하우어: 왜? 네놈은 지금 고통스러운가?


나: 네? 고통스럽냐구요? 음... 뭐, 피곤하고 허무하긴 하죠. 엄청나게 고통스럽다고까지는...


쇼펜하우어: 그럼 행복한가?


나: 행복... 하지는 않죠. 행복하다면 이러고 있겠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간 보내는 거죠.


쇼펜하우어: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네놈이 원하는 건가?


나: 원하는 거라기보다는... 그냥 하게 되는 건데요. 멈추려고 해도 잘 안 돼요.


쇼펜하우어: 흥, 그래서 네놈은 지금 고통받고 있다는 건가? 밤새도록 그놈의 ‘영상’인지 뭔지 시시껄렁한 걸 쳐다보느라 잠도 못 자고, 아침엔 빌빌 기어 다니고. 그래, 그걸 의지(意志)¹라고 하는 거야. 맹목적이고, 지독하게 너를 끌어당기는 힘. 네놈이 뭘 원하든, 뭘 안 원하든 그저 끌려가는 꼴이라니. 한심하군.


나: 아니, 그렇게 막말할 것까지는 없잖아요! 제가 좋아서 이러는 줄 아세요? 저도 자제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한다고는 하는데요. 잘 안 되는 걸 어쩌라는 겁니까? 세상에 유튜브 안 보는 사람이 어딨다고 저한테만 이러세요?


쇼펜하우어: 노력? 노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놈이 자제하려 한다는 건, 결국 의지가 너를 붙잡고 흔들고 있다는 증거 아니냐? 마치 목마른 놈이 소금물을 들이켜는 꼴이지. 갈증을 해소하려 마시지만, 결국 더 목마르게 될 뿐. 그게 바로 네놈이 밤새도록 들여다보는 '영상'과 '게임'이라는 놈들이다. 쾌락인 줄 알지만, 결국 더 큰 고통을 부를 뿐이지. 세상은 온통 의지로 가득 차 있고, 네놈이 보고 즐기는 모든 것, 즉 네 눈앞에 펼쳐진 현실(現實)²은 그 의지가 만들어낸 그림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왜 고통스러운가?


나: 아니, 고통이라니요? 제가 뭘 고통스러워한다는 겁니까? 그냥 좀 피곤하고 허무한 것뿐이라니까요? 그리고 세상에 저처럼 사는 사람이 한두 명입니까? 다들 그렇게 살아요. 이게 무슨 고통이라는 겁니까?


쇼펜하우어: 피곤하고 허무해? 그게 고통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네놈이 뭘 하든, 뭘 얻든, 결국 그 끝에는 **권태(倦怠)**³가 기다리고 있다. 목표를 이루면 또 다른 목표를 찾아 헤매고, 쾌락을 좇으면 결국 더 큰 공허함에 빠지지. 그게 바로 이 빌어먹을 삶의 본질이다. 너는 그저 의지의 꼭두각시일 뿐이야. 네놈만 그런 줄 아나? 이 지하철에 널린 모든 인간들이 다 그놈의 의지에 끌려다니는 한심한 녀석들이지!


나: "그래도 순간순간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게임에서 몬스터 잡고, 유튜브에서 재밌는 영상 보면 스트레스 풀리고 좋던데요? 그게 무슨 큰 고통이라는 겁니까?


쇼펜하우어: 순간의 행복? 훗. 그건 잠깐의 달콤함에 홀린 거다. 게임에서 최고 레벨을 찍으면 영원히 행복할 것 같으냐? 네놈이 원하던 최고 레벨을 찍는 순간, 또 다른 게임,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맬 뿐이지. 그게 바로 의지의 맹목성이다. 끊임없이 다음 것을 갈구하며, 만족을 모르는 저주받은 삶의 본질. 네놈은 그저 다음 자극을 찾아 헤매는 가련한 짐승일 뿐이야!


나: "그럼 뭘 어쩌라는 겁니까?


쇼펜하우어: 그 맹목적인 의지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번 그걸 관찰해보라는(관조(觀照)⁴)하라는 거지. 네놈이 쫓는 그 '영상'과 '게임'이 과연 진정으로 네놈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잠시 눈을 가리고 있을 뿐인지를 말이야. 이 모든 현실은 의지가 만든 허상에 불과해.


나: 아니 근데 생각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게임이랑 유튜브가 좀 허무한 거 알아요. 근데 알면서도 자꾸 보게 되는 거죠. 생각은 누구나 하는 거예요.


쇼펜하우어: 객관적으로 한번 네 의지를 쳐다보라는 거다. 네놈이 지금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왜 밤마다 그놈의 영상을 찾아 헤매는지, 네놈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라는 말이다. 마치 거울을 보듯 말이야. 네놈의 의지가 너를 어떻게 조종하는지, 그 추악한 모습을 똑바로 보란 말이다.


나: 하. 삼촌도 참. 이게 다 제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는 거군요? 뭐 삼촌도 노력충인가요.


쇼펜하우어: 약하다기보다는 맹목적이라고 해야지. 네놈의 의지는 그저 살고, 번식하고, 쾌락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거기엔 이성도, 생각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의지를 부정⁵해야 하는 것이다. 네놈의 '자유'는 바로 그 의지의 부정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의지가 얼마나 덧없고 허무한 쾌락을 좇는지 자각(自覺)⁶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나: 뭐, 인생은 고통이죠. 그건 당연히 안다니까요. 뭔가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거죠. 말로만 그럴싸하네요. 그냥 폰만 보는 게 제일 편하고 만만한데요. 뭘 할 수 있냐구요?


쇼펜하우어: 훗. 단순히 아는 걸 넘어서 처절하게 통찰해 봐라. 지하철에서 심심해? 좋다. 그건 의지가 채워지지 않아 생기는 공허함이지. 이 권태를 무의미한 자극으로 채우려 드니 더 깊은 늪에 빠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네놈의 현실 자체가 의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지.


나: 근데 솔직히 이 의지에서 빠져나오는 법이 있나요? 삼촌 말대로 따르면 의지 없이 살 수 있나요?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회사에서 돈도 못 버는 삶인데요.


쇼펜하우어: 훗. 우리는 의지에서 벗어날 수 없지. 살아가고 존재하는 이상 여기서 완전히 의지를 없앨 수 없다. 존재하면 그냥 의지가 생기는 거지. 다만 잠깐 그 의지를 줄일 수는 있다.


나: 설마 또 흔한 자기계발 얘기는 아니죠? 뭐 스마트폰 디톡스 이런 건가요? 그게 뭐에요?

쇼펜하우어 대화.png

예술, 관조, 동정심.


쇼펜하우어: 내가 무슨 자기계발 따위를 논하는 놈인 줄 아나? 네놈의 의지가 너를 조종하는 방식을 알았으니, 이제 네놈이 직접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야지. 내가 추천하는 건 이거다. 예술과 관조, 그리고 욕망의 수위를 낮추는 습관이지.


나: 예술이요? 그것도 자극이잖아요. 음악 듣고 영화 보면 더 감정 자극되고 피곤해요.


쇼펜하우어: 자네가 지금 말하는 건 ‘소비된 예술’이야. 내가 말한 건 ‘관조로서의 예술’이지. 의지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순수한, 목적 없는 감상. 난 음악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 그 순간만큼은 의지가 잠시 멈추고, 소리만 맴돌게 된다. '좋다'라는 생각도 없이 보거나 듣는 나까지 사라지는 거야.


나: 요즘엔 예술도 전시회 인스타 올리려고 가요. 그림 보는 척하고, 사진 찍고, 또 비교하고. 그럼 그것도 헛짓이네요?


쇼펜하우어: 하하, 정확하군. 네가 찍고 공유하는 순간, 너는 ‘보는 자’가 아니라 ‘보여주는 자’가 되는 거지. 관조는 보여주는 자가 되는 게 아니다. 네놈이 보는 모든 현실은 의지의 그림자임을 잊지 마라.


나: 근데.. 현실적으로 안 되잖아요. 고요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부자들이나 가능하지. 우리는 매일 치이고 맞고, 지하철에서 멍 때릴 여유도 없는데요.


쇼펜하우어: 왜 못한다고 생각하지? 네가 그 영상을 ‘좋아!’라고 느낄 때마다 의지는 다시 불붙는다. 화면을 끄고 베토벤 14번 현악 사중주를 들어봐. 듣는 자도, 들리는 소리도 구분이 흐려지는 그 순간, 의지는 숨을 멈춘다. 그리고 지하철 안에서라도 눈 감고 10초 가만히 있을 수 있잖나. 자네가 안 하는 거지, 못 하는 게 아니야.


나: 음악은 한 번 들어볼게요.. 아니 눈 감으면 더 불안해지고 생각만 많아지는 것 같은데.


쇼펜하우어: 불안은 의지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지. "나를 채워달라"고. 자네가 침묵 속에서 그걸 듣는다는 건, 이제야 제정신이 된 거라네. 거기서 처음으로 자유가 생기는 거지. “원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보이는거다.


나: 근데 그렇게 살면 너무 무기력하고, 재미도 없고, 감정도 없는 좀비 아닌가요?


쇼펜하우어: 재미는 의지가 주는 사탕이지. 감정도 대부분 의지의 부산물이고. 자네는 ‘자극 없는 감각’을 느껴본 적이 없을 테지. 감각이 있는데 반응하지 않는 상태. 살아 있지만 들뜨지 않고, 흐르지만 휘말리지 않는 상태 말이야.


나: 자극 없는 감각이 관조라는 말인가요?


쇼펜하우어: 바로 그게 관조지.


나: 근데요, 가만히 있고 싶다는 그 마음도 결국 욕망 아닌가요? 그냥 또 다른 방향의 의지일 뿐 아닌가요?


쇼펜하우어: 예리하군. 맞아. 그래서 나는 ‘욕망 없는 상태’는 도달이 어렵지. 부처님이나 가능한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방향이지. 끊임없이 외부로 향하는 맹목적 의지 대신 이걸 의식적으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해. 곧 의지의 자기부정이라네.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이걸 끊어야 해.


나: 흠. 뭔가를 끊임없이 바라고, 사고 싶고, 되고 싶다 이런 것 자체를 없앨 수는 없고... 현실적으로 조금씩 내 의지를 보고 끊는 연습을 해야겠네요.


쇼펜하우어: 그래. 의지가 스스로를 파괴하는 지점이 있어. “더 이상 원하지 않겠다”라고 결심하는 상태. 그건 단순한 회피가 아니고, 삶 자체를 이해하고 내려놓는 거지.


나: 그런데요, 그렇게 모든 욕망을 줄이고 가만히만 있으면, 세상은 발전이 없을 텐데요?


쇼펜하우어: 허허, 그대는 아직 발전을 믿는군. 세상의 ‘발전’은 고통의 확장일 뿐이야. 더 빠른 속도, 더 많은 연결, 더 강한 경쟁. 그건 인간을 해방시킨 게 아니라, 더 미치게 만들었지. 네가 보는 세계는 표상(現象), 즉 의지가 주관에 비쳐진 모양일 뿐이야.


나: 근데 저도 성장하고 싶어요. 솔직히 많이 배우고, 뭔가 더 잘하고 싶고,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고.


쇼펜하우어: 그 말속에 이미 고통이 있네. ‘지금의 나’는 부족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지. 바로 그 부족감이 자네를 끝없이 몰아붙여. 그리고 그 끝엔 늘 허무가 있지.


나: …그럼 그냥 이대로 괜찮다고 말하는 게 성장인가요?


쇼펜하우어: 후후… 진짜는 자기를 ‘덜 욕망하는 법’을 배우는 거지. 더 능력 있는 인간이 아니라, 더 평온한 인간이 되는 거다.


삼촌은 개 밥을 줘야 한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요새는 잘 안 보였는데, 구걸하는 사람이 지나갔다.


쇼펜하우어: 아 맞다. 한 가지 잊었군. 의지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이지. 의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동정심(同情心)⁷도 중요하지. 동정심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고 공감하는 거다. 거기서 자신의 맹목적인 욕망이 줄고, 의지의 굴레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주말에 누워서 스마트폰 속 가상공간에 빠져 있지 말고 봉사라도 가봐라. 타인의 고통을 네 고통처럼 느끼는 순간, 의지가 밖으로 빠져나가 차게 식을 거다.


미처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삼촌은 나가버렸다. 역시 까칠해.



나의 사유


에어팟에서는 계속 자기계발 유튜브의 "성장하세요. 빨리 배우세요"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래에서는 어벤져스에서 인피니트 스톤을 가지려는 타노스와 어벤져스가 싸우는 영상이 나를 유혹했다. 삼촌 얘기를 듣고 보니 모두 의지의 발현, 욕망의 덩어리들로 보인다.


타노스는 죽었는데 왜 어벤져스 시리즈는 계속 나올까. 저것들도 모두 의지의 발현이로군. 계속 갖고, 보고, 즐기려는 것. 현대사회에서 성장하려는 것조차도 의지의 발현이라니. 내가 이 모든 것을 이루면 행복할까? 성장, 성장하는데 이 성장이 끝이 있을까? 과정도 좋지만 끝이 없는 길을 전력질주하는 건 아닐까? 유튜브 보는 건 그러다 지쳐 주저앉아서 그냥 콜라나 실컷 마시면서 누워있는 건 아닐까? 이 모든 현실이 사실은 의지가 만든 환상에 불과하다는 삼촌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창밖으로 한강이 보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멍하니 밖을 본다. 문득 고개 숙여 폰만 쳐다보는 사람들이 허무해 보인다. 한강이 지나자 에어팟을 빼 버렸다. 조금 허무한 깨달음이 든다. 사람인 이상 의지와 욕망은 필수다. 이것이 곧 고통의 원천임을 자각하고, 그 맹목적인 의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지를 부정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끝없는 욕망과 순간의 즐거움의 쳇바퀴를 멈추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관조와 동정심에서 시작될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자. 일단 게임을 눌러서 지워버렸다. 내가 레벨이 아무리 높아져봤자 뭐 하나. 끝에는 허무함과 다른 게임을 찾겠지. 아이템과 쏟아부은 시간이 너무 아쉬웠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순간의 즐거움? 짜증과 갈망만 남는다. 게임을 그만하게 하면 화내는 아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음악이라. 유튜브를 열어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그냥 창밖을 보며 음악을 듣는 느낌. 허무함을 깨달았지만, 좀 여유가 생긴 기분이다. 일상은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았지만,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



사상 노트


1. 의지(意志): 쇼펜하우어 철학의 핵심 개념으로, 모든 존재와 현상을 움직이는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근원적인 힘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살아가려는 의지가 아니라, 끝없이 만족을 추구하고 결핍을 느끼는 충동 자체다. 인간의 욕망, 고통, 불행의 원천이 바로 이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쇼펜하우어는 보았다. 그는 이 의지가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삶은 고통이다. 그리고 고통은 의지의 현현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2. 현실(現實) (원문: 표상, 表象):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 즉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을 '현실'이라고 불렀다. 이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결국 우리의 주관적인 인식 안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의미다. 마치 거울에 비친 그림자나 환상처럼,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세상은 의지라는 세계의 본질이 우리 각자의 인식 능력에 의해 '드러난' 방식이라는 것이다. 유튜브 영상이나 게임 속 세상도 결국 우리의 의지가 만들어낸 현실(환상)이며, 우리는 그 속에서 의지에 휘둘려 고통받는 존재가 된다.


3. 권태(倦怠): 욕망이 일시적으로 충족되었을 때 찾아오는 지루하고 공허한 상태를 의미한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이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간다고 보았다. 욕망이 충족되면 고통은 사라지지만, 그 자리를 권태가 채우고, 인간은 다시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욕망을 찾아 헤매게 된다는 것이다. 게임을 하다가 질리면 다른 게임을 찾고, 유튜브를 보다가 지루해지면 또 다른 자극적인 영상을 찾는 행위가 바로 이 권태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4. 관조(觀照): 쇼펜하우어가 제시하는 고통으로부터의 일시적인 해방 방법 중 하나다. 이는 맹목적인 의지의 활동을 멈추고, 대상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행위를 의미한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자연을 응시할 때, 개인의 욕망과 목적을 벗어나 대상 자체에 몰입함으로써, 의지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평온함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인식이 의지의 지배에서 벗어나 사물들을 의욕 없이, 이해에만 몰두할 때, 고통은 사라진다." 예술은 특히 의지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한 현실(표상)을 보여주므로, 관조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5. 의지의 부정: 의지가 삶의 근원적인 고통임을 깨닫고, 그 맹목적인 의지에 저항하고 초월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욕망 자체를 완전히 없애는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의지의 맹목적인 움직임에 휩쓸리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관조하고 인식하려는 노력이다. 금욕적인 생활, 예술 감상, 그리고 동정심을 통해 의지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실천적 방법이다.


6. 자각(自覺):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의지'의 존재와 그 본질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모든 욕망과 고통이 결국 이 맹목적인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자각은 의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이며,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중요한 통찰이다.


7. 동정심(同情心): 쇼펜하우어 윤리학의 핵심 개념으로,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고 공감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기적인 '의지'에 사로잡힌 인간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맹목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고통을 이해하고 타자와 연대하는 길이다. 동정심은 개인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세상의 모든 존재가 겪는 고통의 본질을 깨닫게 함으로써 의지의 부정에 기여한다.


[출간 안내] 더 날카롭게 다듬은 대화와 철학자의 해석을 보고 싶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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