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 될까봐 걱정되는 아저씨, 한나 아렌트와 상담하다.
"최 차장, 그거 들었어? 다음 달에 희망퇴직 발표날 수도 있다는데?"
"에이, 설마요. 회사 다니는 사람이 얼만데."
"아냐. 지금 팀장들이랑 대표 맨날 회의하잖아. 경영지원팀장이 노무사 사무실 몇 번 왔다 갔다 했다던데"
"진짜요, 망해부렀네요. 줘봤자 몇 개월 월급이나 쥐어줄 텐데.."
"야, 이거 빨리 이직할 곳이나 알아봐야겠다. 근데 우리 어디로 가냐. 친구가 타일 시공 배운다던데 거기나 같이 다녀야 하나."
흉흉한 소문이 돈다. 임금 10% 삭감이나 성과급 미지급은 차라리 낫다. 희망퇴직이 코 앞이라느니, 채권 때문에 파산신청을 할 거라는 등의 소문이 파다하다. 초기 몇 번의 성공에 도취된 대표가 이상한 사업들을 추진하면서 회사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자금은 쏟아붓는데도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시간이 지날수록 적자폭은 더 커져만 갔다.
지금 있는 건물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는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희망퇴직 소문이 퍼진 것은 이 때문이다. 대표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위기는 맞지만 희망퇴직은 없다고. 영 신뢰가 가지 않는다. 벌써 주임이나 대리들은 면접 보러 다니는 눈치다. 나도 몇 번 사람인을 열어보고 이력서를 써봤지만, 쓸 말이 없다. 40대를 받아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나아가 10년 넘게 이 회사를 다니다 보니 새로운 곳에 갈 용기도 없다. 무엇보다 불안하다. 나는 왜 미리 준비하지 않았을까, 기술이라도 하나 배워놓을 걸. 당장 대출금과 생활비가 걱정이다. 한숨이 나온다.
외근을 나왔다 들어가는 길. 점심이 애매해서 그냥 지하철 역 근처 맥도널드에 앉아 햄버거를 시킨다. 세트 메뉴는 사치다. 우걱우걱 씹으면서 구인공고를 보고 있는데, 창밖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뭐야? 하며 보니, 모자 쓴 중년 여성이 동그란 눈으로 날 쳐다본다. 한나 선배? 하. 여기서 만나다니. 똑똑하기로 천재 선배였다. 연구만 하지 않고 정권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더니,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미국 어디 대학에서 교수를 한다더니 여기는 왜?
한나 아렌트: 야, 오랜만이다. 짜식. 잘 지냈어? 여기서 다 만나냐.
나: 와 선배. 진짜 신기하네요. 여긴 어쩐 일이에요?
한나 아렌트: 훗. 여기서 학회발표도 하고, 지금 시민단체랑 공동성명을 낼 일이 있어왔어. 넌 얼굴이 왜 이렇게 죽상이야?
나: 하,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요. 잘릴까 봐 마음도 불안하고 갈 데는 없고. 먹고살아야 하는데 말이죠. 저 같은 기술 없는 40대 아저씨는 설 곳이 없어요.
한나 아렌트: 잘린다? 설 곳이 없다? 누가 너에게 그런 설 곳을 약속한 거야? 그리고 그 설 곳이 없어지면 네 존재 자체도 없어지나?
나: 선배는 여전하군요. 근데 세상이 다 그렇잖아요. 능력 없으면 도태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한나 아렌트: ‘능력’? 근데 능력의 기준은 누가 정한 거야? 네가 정한 거야? 사회가 알려준 거야?
나: 뭐 제가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게 능력 아닐까요?
한나 아렌트: 맞아. 그건 사회라는 외부의 기준(norm)이지. 그럼 그 불안은 사회라는 외부기준에 나오는 거겠네?
나: 아. 그렇죠. 사회에서 살려면 근데 그 기준에 맞춰야 하지 않을까요?
한나 아렌트: 생각보다 위험한 상태군. ㅎㅎ 인간은 자기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때 세계에 흔적을 남기는 거야.
너는 지금 세상에 침묵하고 어떻게든 기준만 따라가려고 하고 있군.
나: 하. 귀찮고 피곤해요. 40살이나 됐는데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좀 지치더라고요.
한나 아렌트: 지쳤다는 말, 아주 중요해. 우리 사회는 사람을 ‘노동하는 기계’로만 보지. 쉬는 게 아니라, 소모된 거야. 마치 부품이 닳듯이 말야.
나: 근데, 누구나 이렇게 일하고 밥벌이하면 그런 거 아녜요?
한나 아렌트: 밥벌이. 맞아. 그건 네가 지금 노동(labor)*만 하고 있기 때문이야. 노동은 매일 똑같이 반복되고, 생존을 위해서만 하지. 그러나 거기엔 ‘의미’가 없어.
나: 그럼 노동이 필요 없다는 거예요? 먹고 사려면 해야 하잖아요.
한나 아렌트: 필요 없다는 건 아니지.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어. 매일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또다시 먹기 위해 벌어야 하는 반복적인 순환이지. 살려면 꼭 해야지. 하지만 그 필연성이 너의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이렇게 노동에 매몰되어있다 보면 너의 고유한 존재(unique being)*가 드러날 틈이 없어. 사회는 그걸 강요하고 있고.
나: 근데 뭐 회사 다니면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남는 에너지가 없어요.
한나 아렌트: 넌 지금 노동과 생존의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군. 근데 인간은 단순히 생존만 하는 존재가 아닌 거 알지? 너는 그래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잖아.
나: 만들어낸다고요? 뭘요? 저한테 기술도 없는데...
한나 아렌트: 기술이 없다고? 꼭 뭘 만든다는 건 손으로 뭘 한다는 건 아니야. 네 머리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해 본 적은 있겠지. 난 그걸 '작업(work)*'이라 불러. 단순히 기술을 넘어서, 너의 아이디어를 견고한 형태로 구현하는 활동이야(※2). 네가 보고서를 만들든, 엑셀 파일을 만들든, 심지어 어떤 계획을 세우든, 그것이 계속 지속될 수 있다면 그것은 '작업*'의 범주에 들어간다.
나: 그럼 제가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도 ‘작업*'이 될 수 있다는 건가요? 맨날 시키는 일만 하는데...
한나 아렌트: 시키는 일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너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노동*'을 넘어선 '작업*'이 될 수 있지. 예를 들어, 늘 하던 보고서 양식을 네가 더 효율적으로 개선해서 다른 사람들도 활용하게 한다면, 그것은 너의 '작업*'의 결과물이 되는 거야.
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음... 그래도 그게 제 불안을 해소해 줄까요? 회사에서 잘릴까 봐 불안한데요.
한나 아렌트: 불안은 '노동'의 영역에 속해 있어. '노동*'은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거든. 하지만 네가 '작업*'을 통해 견고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면, 그것은 너의 '능력 없음'에 대한 불안을 줄여줄 수 있다. 네가 만들어낸 것이 이 세계에 뭔가 남기는 거니까 말이야. 존재 증명해 줄 수 있는 산물이 되는 거지. 10년 넘게 일했으니까 알 거 아냐?
나: 뭐, 진행한 프로젝트들은 꽤 되죠. 기획안이나 결과보고서도 있구요. 공장 생산라인에 있으면서 뭔가 제안해서 바꾼 적도 있구요.
한나 아렌트: 그래, 그건 네가 '노동*'을 한 거지만, 한 편으로는 '작업*'이라는 걸 한 거야. 계속 남고 뭔가 남긴 거잖아.
나: 이력서에 몇 개 업데이트할 게 생겼네요ㅎㅎ 물론 그런다고 누가 날 뽑아주지 않겠지만.
한나 아렌트: 훗. 아직도 너는 지금 '누가 시켜서 하는 일'에만 매몰되어 있고, '무엇을 할지'만 고민하고 있군. '노동'이나 '작업'보다 제일 중요한 게 있어. 바로 행위(action)*다. 하지만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해.
나: 제가 누구인지 드러낸다고요? 그게 뭘 의미하죠?
한나 아렌트: 네가 가진 생각, 네가 추구하는 가치, 네가 세상을 보는 방식. 이런 것들을 말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네 고유한 존재(unique being)*를 세상에 드러내는 게 '행위'지.
나: 아니, 근데 아까 말한 뭘 남긴다는 '작업*'이랑 뭐가 달라요?
한나 아렌트: 바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거다. 근데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묻히는 게 아니라, 명확하게 네 목소리를 자유롭게 표출하는 거지. 혼자 하면서 뭔가 목적이나 용도가 있는 '작업'과는 다르지.
나: 근데 저는 선배처럼 거창한 사회 운동 같은 건 못해요. 지금 회사 문제랑도 관련 없고...
한나 아렌트: 거창할 필요 없어. 회사문제? 가능하지. 회사 사람들과 같이 시작해 봐. 회사 내의 팀 회의도, 심지어 온라인 커뮤니티도 모두 '행위(action)*'를 같이 할 수 있는 곳(공적영역)*'이지..
나: 팀 회의에서 뭘요? 맨날 상사 눈치만 보는데...
한나 아렌트: 네가 가진 작은 아이디어라도 용기 있게 제시해 봐. "저는 이 문제가 이렇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비록 채택되지 않더라도, 그 '말'은 너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가 돼. 다른 사람들에게 '아,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각인시키는 거지.
나: 하 별로 안 바뀔 것 같은데. 오히려 미운털 박혀서 일찍 잘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한나 아렌트: 불안은 당연한 거야. 하지만 그 불안 때문에 행동할 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natality)*' 능력을 잃어버려서는 안 돼.
나: 그래도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40대인데.
한나 아렌트: 행위(action)*는 시간을 초월하지. 과거의 실패나 미래의 불확실성에 갇히지 마.
나: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겠어요. 당장이 급하다는 생각이 자꾸 발목을 잡네요. 뭘 '작업'으로 만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뭘 '행위'로 드러낼 수 있을까요?
한나 아렌트: (미소 지으며) 네가 가진 불안을 너 개인만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 사회는 개인주의를 강요하지. 그건 '함께 이야기해야 할 공동의 문제'라고 생각해 봐.
나: 공동의 문제요?
한나 아렌트: 그래. 네가 느끼는 '무능력'이나 '불안감'은 이 시대의 많은 40대가 같이 느끼는 거야. 불안감이 너를 마비시키게 두지 마. 중요한 건 그 불안감을 공적인 영역(public realm)*으로 끌어내는 거야.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 그게 바로 너의 존재를 증명하고, 공동의 현실을 만들어나가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고독 속에서 홀로 불안해하지 마.
나: 그럼 뭘 해야 할까요? 구체적으로?
한나 아렌트: 지금 당장, 네가 느낀 이 모든 감정과 대화를 누군가에게 나타내봐. 글로 써도 좋고, 얘기해도 좋아. 회사도 좋고, 온라인도 관계없어. 불특정 다수에게 얘기해도 좋아.
다른 40대 아저씨들에게 '이 불안은 너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져도 좋고. ''우리 함께 이 불안의 근원을 파고들고, 새로운 시작을 모색해 보자'고 제안도 해봐. 용기가 없어도 그 자체가 이미 새로운 공동의 영역을 만드는 위대한 '행위*'가 될 수 있다. 자, 시작해 봐. 네 '말'을 통해.
한나 아렌트 선배는 시간이 늦었다면서 싱긋 웃더니 가버렸다. 많이 먹고 힘내라면서 빅맥세트를 추가로 시켜줬다. 그래. 회사가 망한 것도 아니고, 당장 길거리에 나앉은 것도 아니다. 작은 힘이 솟아났다. 대체 누가 불안을 이렇게 심었는가? 닥치지도 않은 일에 혼자 고민하고 우울할 필요 전혀 없다.
생각해 보니 이제까지 수많은 '노동'만 반복했다. 그저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에서는 쉬기 바빴고. 욕먹기 싫었던 거지 일하면서 뭔가를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못해봤다. 회사나 집에서 뭔가 제대로 하나 '작업'이라 불릴만한 것들도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리고 10년 동안 있으면서 쌓아온 작업물들이 있었으니, 다시 찾고 정리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근데 왜 이걸 혼자 고민하고 있었지? 왜 같이 얘기 안 해본 거지? 회사 짬밥이 오래됐는데, 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면서 회사가 기울어질 때 문제의식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근데 누구에게 얘기하지? 노조도 없고.. 아 노사협의회? 얼마 전 노사협의회에서 직원 간담회 공지가 떴었다. 30인 이상 사업장은 노사협의회가 필수지만 다들 미운털 박힐까 봐 참여율이 저조하다. 다음 날, 큰맘 먹고 들어가 보니 몇 명만 앉아있다. 협의회 대표 김 차장님이 웬일이냐는 눈빛이다. 솔직하게 내가 느끼는 감정, 현재 상황과 해결책을 물었다. 묵묵히 듣던 김 차장이 껄껄 웃는다. 그렇지 않아도 대표에게 경영현황을 묻고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고 한다. 어깨를 두드리며 앞으로도 좋은 의견 부탁한다고 한다. 회사는 뭔가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을 거다. 그래도 이렇게 누군가와 같이 얘기하고 불안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뭔가 든든하다. 저녁에는 자주 가던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 글이라도 써볼까.
1. 현실의 '노동'을 유지하며 생존 기반 확보해 봐. 다만, 이것에 너무 매몰되지는 마.
2. 동시에 '작업'을 통해 너의 가치를 증명하고, 미래의 대비책을 만들어봐.(지속성이 있는 뭔가를 만들어)
3.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너의 '무능력'에 대한 불안을 '공적 영역'에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고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행위'를 포기하지 마. (자유와 존재 증명)
1. 노동 (Labor): 아렌트에게 노동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활동을 말한다. 먹고사는 일처럼,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그 결과물이 바로 사라지는 활동이다. 아렌트는 현대 사회가 이 노동을 너무 중요하게 여겨, 사람이 그저 '노동하는 동물'로 전락하고 진정한 자유를 잃게 된다고 비판했다.
2. 작업 (Work): 작업은 노동보다 더 가치 있는 활동으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담아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짓거나 예술 작품을 만들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 등이 작업에 해당한다. 작업은 인간이 살고 활동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고, 그 결과물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
3. 행위 (Action): 아렌트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활동으로 본 개념이다. 행위는 오직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공적인 공간에서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이루어진다.
- 새로운 시작: 행위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
- 나 자신을 드러내기: 행위를 통해 개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즉, 기능적인 역할)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라는 고유한 존재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 행위의 결과는 물리적인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 약속, 역사적인 의미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동체의 삶에 계속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 자유: 행위는 생존이나 물질적 목적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자유의 표현이다. 아렌트는 사람이 '노동하는 기계'로 전락하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바로 이 '행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아렌트의 생각은 노동과 작업이 삶에 필요하지만, 진정한 인간다움과 자유는 **'행위'**를 통해 실현된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녀는 현대 사회가 노동에만 가치를 두어 사람들이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현상을 경계하며, 개인이 고립된 불안감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말하고 행동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용기를 북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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