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하는 아내가 답답한 아저씨-소크라테스와 상담

행복한 가정, 소크라테스가 묻다.

by 지식브로커

아내와 또 한 판 하다.

저녁 7시 반 집에 들어서면 아내는 이미 애 학원에서 데려오느라 지쳐 있고, 나는 회사에서 야근하느라 지친다. 아내는 오늘도 왜 이리 늦었냐면서 얘기하는데 살짝 가시가 박혀있다.


"일을 오빠만 해?"

"아니, 그럴 수밖에 없어. 내가 맡은 일이니까"


시시콜콜 회사일을 얘기하기 싫다. 부담주기도 싫고, 마치 징징거리는 것 같다. 어차피 내가 헤쳐가야 하는 거니까.


"아니. 거기 회사는 맨날 왜 그런데? 일하는 사람만 일하고. 오빠도 좀 뭐라고 세게 얘기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얘기하는 게 답답하면서 짜증이 올라온다.


"해봤지. 근데 그걸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너는 잘 모르면서 그 얘기다?"


"나는 일 안 해? 내 말은. 지금 민준이 픽업하러 엄마한테 계속 도와달라고 해야 하는데. 오빠가 맨날 바쁘고 힘들다니까 그러지. 공무원처럼 야근수당을 막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난 진짜 이해가 안 돼."


차가운 말투다. 자기가 얘기해 놓고 대화하기 싫은 지 한숨을 푹 쉬더니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만 본다. 또 시작이다. 아 지겨워. 맨날 삐치고 조금 나아졌다 반복이다. 요새는 그냥 포기했다. 나도 한숨이 연이어 나온다. 짜증 나서 말없이 식탁에서 일어서서 나간다.


"어디가?" 낮지만 차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편의점."

"담배 끊기로 한 거 기억하지? 얘 있는데서 담배 냄새 풍기고 들어오지 마."


눈치는 빠르군. 근데 전자담배는 모르겠지. 현관문을 여는데 문 앞의 택배상자가 쌓여있다.

'이 놈의 택배만 줄여도 차를 바꿨것다. 씁.' 하..숨겨둔 전자담배를 꺼내 하늘을 향해 문다.


이건 대체 누구를 위해 사는 건지. 이건 가족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기 위한 경제공동체다. 손도 안 잡은 지 오래됐고, 뽀뽀? 장모님 따님과 그러는 거 아닙니다. 같이 TV 보면서 웃었던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 집에 오면 밥하고, 정리하고, 숙제하고, 뭐 하기 서로 바쁘다. 대화 나눌 시간도 부족하다. 나도 피곤해서 말 걸기 싫고, 괜히 부딪힐까 얘기도 잘 안 한다. 같이 사는 건 맞는데, 함께 있는 기분은 안 들어. 아, 이게 진짜 부부가 맞긴 한 걸까?



소크라테스를 만나다.


전자담배 연기를 뿜어내던 당신의 시선 끝에, 편의점 파라솔 아래 앉아 있는 한 50대 아저씨가 눈에 들어온다. 눈은 아주 크고 동그랗지만 코는 뭉툭한고 배가 나와있다. 허름하지만 맨발에 가까운 낡은 샌들을 신고 있다. 얼마나 걸어 다녔으면 뒤꿈치가 허옇다. 아, 이 아저씨가 요새 동네에서 유명한 스피치 학원 원장이구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똑똑하다는 변호사, 정치인 상대로 토론배틀을 붙어서 진 적이 없다던데. 학원에서 얘들은 잘 안 가르치고 토론하고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다. 편의점 주인과도 한참을 얘기하다가 나와서 두리번 거린다.


아 피하자. 눈을 내리깔고 있는데, 저벅저벅 다가온다. 그의 목소리는 낯설지만 이상하게도 귀에 익다.


"어이. 여기 사시나? 담배 연기에 뭐가 숨어있는 것 같군.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 나랑 얘기라도 한 번 하는 거 어떤가? 난 얘기하는 걸 아주 좋아한다네."



소크라테스와의 대화: 나의 무지를 깨닫다


나: 아 괜찮은데요.


소크라테스: 하. 나는 아내한테 잔소리 좀 신나게 듣고 왔더니.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어서 말이야. 혹시 자네도 비슷한 처지 아닌가?


나: 얼굴에 쓰여 있나요? 꽤 예리하시네요. ㅎㅎ


소크라테스: 나는 사람의 얼굴에 쓰인 고뇌를 읽는 데는 조금 익숙하지. 마치 길 잃은 나그네처럼 말이야. 무엇이 자네를 이 밤공기 속으로 내몰았는가?


나: (머뭇거리다) 집이… 집 같지가 않아서요. 아내와는 매일 싸우거나, 아니면 침묵하거나. 이건 사는 게 아니라 그냥 버티는 겁니다. 이게 정말 부부인지 모르겠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자네가 생각하는 ‘진짜 부부’란 무엇인가? 그것부터 명확히 해야 하지 않겠나?


나: 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고, 함께 웃고… 뭐 그런 거 아닐까요? 지금 저희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서로 불평하고 다툴 뿐이에요.


소크라테스: 사랑, 이해, 위로라. 그 정의는 누구에게서 배웠나? 부모? 드라마? 아니면 스스로 체득했나?


나: 부부라면 당연한 거 아녜요? 어디서 그랬지... 책이랑 TV에서 본 것 같은데... 흠. 주변이랑 미디어에서 본 게 크긴 하네요. 다들 이상적인 부부를 이야기하니까요.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물어보지. 그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 자네 현실에 맞지 않을 때, 자네는 누구를 원망하나? 아내인가, 자신인가, 아니면 그 이상 자체인가?


나: 대부분 아내를 탓했죠. 먼저 불평을 꺼내기도 하고, 저는 좋게 설득시켜 보려는데 안 됐어요.


소크라테스: 흠. 그런데 자네는 아내를 얼마나 알려고 했나’? 그녀가 날 선 말을 할 때, 그 말 뒤에 숨은 의도나 감정을 묻고 들은 적이 있나?”


나: 많이… 없네요. 아내의 얘기를 듣다 보면 제 억울함이 먼저 올라와서요.


소크라테스: 자 그렇다면 억울하다고 느끼는 세 가지로만 꼽아 보게.


나: 첫째, 나는 힘들어도 참는데 아내가 불평만 한다. 둘째, 회사 일이 너무 바쁘고 과하다. 마지막은 서로 대화가 안 된다. 이거죠.


소크라테스: 좋네. 그중 ‘대화가 안 된다’를 더 얘기해 보지. 언제부터 끊겼나?


나: 아이 유치원 들어간 뒤요. 얘가 워낙 자주 병원도 가고. 서로 일정 맞추느라 지치고, 저는 야근이 늘었구요.


소크라테스: 그때 자네는 자신이 피곤하고 힘들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했지? 억울하다는 것은 어떻게 드러냈고?


나: 거의 안 했습니다. ‘가장’이니까요. 가장이 흔들리면 가정이 불안해해요. 약해 보이기 싫었어요.


소크라테스: '약함을 감추면 가족이 지켜진다'라고 생각하는군. 이 믿음이 진짜 사실인가? 이것이 진짜 남편이자 가장이 추구해야 할 덕목¹이 맞나?


나: 음.. 아니네요. 약함을 감추려 끙끙대고 표정도 안 좋으니 오히려 지금처럼 점점 멀어졌죠.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자네는 ‘가장의 침묵이 가족을 보호한다’는 건 믿고 싶은 것으로 붙잡고 있던 셈이군. 현실은 반대니까 이건 모순² 아닌가?


나: 그렇네요. 보호하려다 오히려 소원해졌으니까요... 근데 솔직히 제가 불안해하면 오히려 가족들도 불안감이 커지지 않을까요?


소크라테스: 뭐가 더 나은가? 첫 번째, 솔직하게 피곤하고 힘들다고 얘기하는 것. 두 번째. 말하지 않고 침묵한 상태로 피곤하다고 혼자 참는 것. 뭐가 더 자네와 가족에 나은가? 뭐가 더 덜 불안해 보이는가?


나: 그냥 침묵하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더 힘들어 보이긴 하네요.


소크라테스: 자 모순을 인정했다면, 이제 자네는 남편이자 아빠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몰랐다는 거군. 맞지 않나? 자네는 지금 이도저도 잘 모르는²(아포리아) 상태군. 걱정 말게.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앎³의 시작이지.


나: 아, 뭐 인정하긴 싫지만… 제 생각이 틀린 것 같네요.


소크라테스 대화.png

나의 무지를 인정하고, 앎을 향해 나아가다


소크라테스: 모순을 해결하려면 두 길뿐이네. 하나, 여전히 모른 척하고 침묵하며 예전 방식을 고수한다. 둘, 침묵과는 다른 방법을 찾는다. 자네 선택은 뭔가?


나: 음, 다른 방법이죠. 침묵을 버리고 대화하는 거? 그게 맞을까요?


소크라테스: 침묵을 버리는 걸로 충분한가? 그러면 질문을 바꿔 보지. "좋은 부부, 좋은 가정'이 무엇인지 다시 스스로 정의해 보게나. 싸움이 없는 집이면 충분한가? 아니면 더 큰 무엇인가?


나: 더 큰 뭐라고 생각해요. 서로 솔직하고, 힘들면 기댈 수 있고, 함께 웃고, 같이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소크라테스: 자 그렇게 되려면 어떤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서로 잘 참고 견디는 절제, 뭐든 공평하게 하는 정의로움, 두려움을 무릅쓰는 용기. 뭐가 가장 필요한가?


나: 참고 견디는 건 많이 했고, 서로 공평하게 해 봤자 싸움만 나고. 마지막 용기가 가장 필요한 것 같네요. 근데 뭐부터 시작해야 하죠? 조금 막막합니다.


소크라테스: 좋다. 용기가 없다면 관계가 숨 쉬지 못하지. 그런데 용기란 무엇인가? 큰소리치는 태도인가, 두려움을 자각하고도 말을 꺼내는 태도인가?


나: 두 번째죠. 큰소리치면 도돌이표니까요. 두려움을 깨닫고 먼저 말을 꺼내는 겁니다. 솔직하게 현재 상태와 감정을 얘기해야겠네요. 근데 몇 번 하려고 했는데, 자꾸 언성이 높아집니다.


소크라테스: 왜 언성이 높아졌는가? 말을 할 때 짜증을 냈는가? 아니면 감정을 줄이고 담담하게 얘기했는가?


나: 얘기하다 보니 짜증과 내 생각만 나왔네요. 그리고 뭔가 해결책을 제시하려고만 했던 것 같네요.


소크라테스: 올바르게 대화하는 방법은 뭔가? 그렇다면, 어떻게 얘기해야겠는가? 한 번 만들어보게.


나: 올바른 대화는 공감과 솔직함이 아닐까요? 감정은 빼고요? '나, 요새 좀 힘들다. 근데 이제까지 자존심 때문에 말을 못 했어. 앞으로 어떻게 버틸지 얘기해 보자.' 이렇게요?


소크라테스: 훌륭하군. 이제 아내의 말을 듣고 뭐라고 얘기해야겠는가?


나: '그래. 너도 힘들었구나. 조금 더 얘기해 볼래?' 아, 근데 좀 오그라드는데요.


소크라테스: 오그라들어도 그게 맞는 방식인가? 아니면 다른 방식이 있는가?


나: 일단 이게 맞는 방식인 것 같긴 합니다. 근데 그럼에도 아내가 '미쳤나?'는 식으로 얘기하면 어떡하죠?


소크라테스: 하하. 그건 나도 모르지. 정답은 없어. 예측 불가를 감수하는 것도 또 용기지. 시작할지 말지는 자네가 결정하는 거야. 한 가지 묻지 '언제' 시작할 건가?


나: 맞네요. 어색하고 오그라들지만. 일단 선생님과 나누면서 제가 생각한 답대로 한 번 해볼게요.



나의 사유와 달라진 행동


그는 다시 껄껄 웃으면서 어딘가로 사라졌다. 짧은 대화에 뭔가 홀린 느낌이다. "당했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스스로 답을 만들어버렸다. 이게 맞나? 물론 용기를 내야겠지만, 아쉽게도 다시 집에 들어가면서 용기는 바람 빠진 풍선이 됐다. 아내는 여전한 침묵과 퉁명스러운 얼굴. 차마 진지하게 얘기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샤워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방식이 틀릴 수도 있겠구나. 다른 방식은 어떻게 하지?


혼자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아침에 일어났다. 회사에 출근했는데, 어제 소크라테스의 말이 계속 떠오른다. 차마 얼굴 보고 말은 못 하겠다. 그래 카톡으로 보내자. 카톡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한다. 눈 딱 감고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요즘 힘들었고, 이해 못 해줘서 미안하다. 혹시 네가 힘든 건 어떤 거냐." 이런 식이 었다. 감정을 표출하는 데 너무 힘들었지만, 이게 사실 내가 내린 답이니까 맞는 거다. 카톡의 '1'글자는 좀처럼 사라질 줄은 모른다. 점심시간 이후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자기도 미안하다고, 같이 노력하자고 한다. 이모티콘을 보내고 기쁜 마음으로 퇴근한다. 퇴근길에 스파클링 청하 두 병 샀다. 이제 얼굴 보고 얘기할 용기가 생긴다.



사상노트

1. 덕목 (ἀρετή): 소크라테스에게 '덕(아레테)'은 단순히 도덕적인 행위를 넘어, 어떤 존재나 사물이 가진 최고의 탁월함 또는 훌륭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칼의 덕은 잘 베는 것이고, 말의 덕은 잘 달리는 것이다. 인간의 덕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탁월함, 즉 지혜롭고 용기 있으며 절제 있고 정의로운 상태를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덕을 제대로 '아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삶을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2. 아포리아 (ἀπορία)와 모순: 아포리아는 그리스어로 '길이 없음', '막다른 골목'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상대방이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자신이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피상적인 믿음에 불과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혼란의 상태가 바로 아포리아다. 특히, 자신이 믿는 바와 현실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모순을 직면하게 함으로써 아포리아 상태로 이끌었다. 소크라테스는 이 아포리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데, 왜냐하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앎의 시작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3. 앎 (ἐπιστήμη):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앎(에피스테메)**은 단순히 정보를 아는 것을 넘어, 어떤 개념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정의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용기'라는 단어를 막연히 아는 것이 아니라, 용기가 무엇이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 본질까지 꿰뚫는 것을 앎이라고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앎을 통해야만 비로소 올바른 '덕'을 실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이 바로 **'덕은 앎이다(지덕복합일)'**라는 그의 핵심 사상이다.


4. 산파술 (마이에우티케, μαιευτική):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지혜를 낳는 산파'에 비유했다. 그는 마치 산모가 아이를 낳듯,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영혼 속에 잠재되어 있는 진리를 스스로 깨닫도록 도왔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역할이 진리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이미 가지고 있는 진리를 스스로 발견하고 '낳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보았다. 대화에서 소크라테스가 직접 답을 주지 않고, 오직 질문만을 던져 내가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유도한 것이 바로 산파술이다.


5. 너 자신을 알라 (γνῶθι σεαυτόν): 델포이 아폴론 신전의 이 유명한 경구는 소크라테스 철학의 핵심이다. 이는 단순히 자신의 능력이나 한계를 아는 것을 넘어, 자신의 가장 깊은 감정, 욕망, 편견, 그리고 가장 추한 모습까지도 똑바로 바라볼 용기를 가지라는 뜻이다. 내가 '자존심' 때문에 침묵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두려움'을 고백하는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아는' 과정이었다. 진정한 앎은 바로 자기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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