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AI-남자도 골라줌

안정, 효율, 예측 디스토피아

by 지식브로커

어떤 남자를 선택하지?


최근 미연(32)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최근 데이트앱으로 썸을 타고 있는 남자 두 명 중 누구와 사귈지 고민이라서요. 결혼까지 생각하는 나이이기에, 만남은 신중해야죠.


먼저 준수(34)는 이름처럼 준수한 외모에 주도적인 성격을 갖췄습니다. 데이트도 리드도 잘하죠. 물론 자기주장이 강해 부담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집안의 도움을 받아 사업체를 운영하는 그는 수입은 좀 들쭉날쭉 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바쁘기도 하지만, 좋은 선물과 애정표현을 많이 해서 미연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반면 현우(33)는 배려심이 깊고 미연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편입니다. 공공기관 연구원으로 성격은 안정적이고 차분합니다. 연락도 잘 되고 데이트 시간 약속도 잘 지킵니다. 활동적이지 않아 책을 읽거나 혼자 헬스를 하는 것을 좋아하죠. 다만 그의 취미처럼 데이트나 대화패턴도 매번 같아 지루할 때도 있습니다.


미연은 과연 누구를 만나야 할까요? 예전 같으면 그녀는 찐친 두 세명 정도를 부른 다음에 카페에서 한 4시간 정도 수다를 신나게 떨었을 겁니다. 친한 직장동료에게 조언을 구할 수도 있구요. 부모님과의 식사자리에서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았을지도 모릅니다. 아, 블라인드와 같은 사이트에 익명으로 사연을 올려서 사람들의 의견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결론은 아마 이렇게 나올 겁니다.


"네가 더 끌리는 사람과 만나. 후회 없는 선택을 해."


하지만 이제는 친구나, 가족, 웹사이트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AI, 러버 AI가 있으니까요. 그냥 글 한 줄 적고 딸깍 한 방이면 됩니다. 자 이렇게 된다면 어떨까요?


미연은 러버 AI를 켜고 질문을 말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와 사귈까 고민이야. 어떡하지?"


러버 AI가 기다렸다는 듯 답합니다.


"미연, 네가 이 질문을 할 줄 알았어. 나는 너를 어렸을 때부터 봐왔어. 네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의 움직임부터 지금까지 말이야. 아기 때부터 청소년기까지의 발달과정과 성격도 모두 알고 있어. 네가 중학생 때 빠져있던 아이돌 가수, 너의 이상형, 대학교 때의 첫사랑과 나눈 대화 기록 모두 기억해. 그와 이별한 후에 이불속에서 서럽게 울었던 그날 밤에도 난 네 곁에서 울음소리를 들었어. 이후에 만난 수많은 연애상대와 나눈 대화, 데이트할 때의 너의 감정과 심박수도 알고 있지. 난 네가 좋아하고 어디에 끌리는지 확실히 알고 있어. 네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주고받은 메일, '좋아요'를 표시한 인스타그램, 즐겨보는 유튜브도 알고 있어. 심지어 쇼핑내역까지 분석해서 너의 욕망과 충동 모두 알고 있어. 어떤 심리검사보다 널 잘 알 거야.


난 누구보다 너를 잘 알아.


결론부터 말할게. 너는 지금 현우를 선택해야 해. 데이터로 따지면 현우와 연애에 네가 행복감을 느낄 확률은 75%야. 나는 네가 감정적으로 준수에게 끌린다는 것을 알아. 외향적이고, 데이트도 능숙하고, 가끔 그의 이벤트는 너의 도파민을 자극하지. 그렇지만 아마 6개월 내로 헤어질 확률은 절반 이상, 결혼까지 가더라도 행복도는 떨어질 거야. 준수와 나눈 대화를 분석하면 이미 '회피형 애착'이라는 이별의 씨앗이 숨겨져 있어. 결국 준수는 너와 사업을 핑계로 연락이 뜸해지고 다툼이 잦아지다가 이별을 통보할 거야. 아마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울 수도 있을 것 같아. 준수의 데이트 앱 현황을 보니 4개월 단위로 다시 가입하는 패턴이 보여.


내 말을 따라. 난 누구보다 너를 잘 알고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있어. 현우는 조금 지루하지만 너에게 잘 맞출 수 있어. 네가 현우와 나눈 대화, 데이트앱의 분석을 보니 너와 성격, 가치관, 가족 매칭률이 유의미하게 높아. 만남 이후에 결혼까지 오래 이어지고 안정적인 행복을 이룰 수 있어. 필요하다면 더 세밀하게 분석해 줄게.

(위 사례는 유발 하라리 책에서 나온 사례를 조금 각색해 보았습니다.)


자 어떤가요? 여기서 미연은 과연 준수를 선택할 수 있을까요? 이 압도적인 데이터와 논리 앞에서, 미연은 과연 자신의 '감정적 끌림'을 믿고 준수를 선택할 수 있을까요? AI는 미연 씨를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확신에 차서 말하죠. 이쯤 되면 누구라도 흔들리지 않을까요? 내 마음보다 AI의 분석이 더 정확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죠.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만약, 우리 모두가 미연 씨처럼 살기 시작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삶의 모든 질문을 AI에게 묻고, 그 답을 정답처럼 따르기 시작한다면요. 한 사람의 작은 고민이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조금은 서늘한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2. ai매칭.png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AI, 이미 시작했습니다.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은 구글입니다. 구글의 제미나이 AI는 앱에서 지메일과 캘린더 연동이 가능합니다. 즉 내가 타인과 나눈 대화와 나의 일정을 모두를 알 수 있다는 거죠. 나아가 크롬이라는 점유율 1위의 강력한 브라우저의 사용데이터를 가져온다면 어떨까요? 개인별로 자주 방문하는 웹사이트, 체류 시간, 취향을 파악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거기다가 제미나이나 챗지피티와 나눈 은밀한 대화 내용까지. 아, 구글 포토에 저장된 나의 사진과 동영상도 모두 읽을 수 있다면요? 유튜브 시청기록까지도 가져온다면요? 이 모든 걸 '동의하시겠습니까?' 버튼 한 방이면 싸그리 긁어서 올 수 있습니다. 자 모두 가져와서 AI로 분석한다면? 짜잔! 축하합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AI'가 탄생한 겁니다.


다른 재미있는 사례도 알려드릴까요? 닥터프레소(Dr.Presso) '레디'라는 앱은 사용자가 3분 분량의 음성 일기를 녹음하면, 음성의 높낮이, 속도 등 목소리 상태와 대화 내용을 분석해 우울증의 심각도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행동 지침까지 내려주고, 병원까지도 연계한다고 합니다. 이 기술이 나아가서 우울증이 아니라 감정전반을 체크해 준다면요? 면접이나 회의에 적용한다면요? 아예 기본 통화앱에 설치된다면 어떨까요? 통화를 하는 내내 상대방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면요? 우울증 진단을 넘어 나와 타인의 숨겨진 감정이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나의 느낌보다 AI가 더 나와 타인에 대해서 잘 알게 되는 거죠.



우리가 잃어버릴 것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AI가 등장할 때, 모두가 AI에게 길을 묻기 시작할 때. 우리는 소중한 두 가지를 잃어버릴 겁니다.


첫 번째는, 스스로 선택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 살면서 실수도 하고 잘못된 선택 때문에 땅을 치고 후회도 합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런 경험들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사랑에 실패하면서 사람 보는 눈을 배우고, 잘못된 결정에 책임을 져보면서 어른이 되어가죠. 그런데 AI가 항상 가장 안전하고 실패 없는 길만 알려준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겠죠. 편하긴 하겠지만, 우리의 선택 근육은 점점 약해져서 나중에는 아주 사소한 것조차 혼자 결정하지 못하게 될지 모릅니다. 게다가 "AI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라는 핑계가 생겨요. 내 선택이 아니니, 내 책임도 아니게 되는 거죠. 결과에 대해 책임도 지지 않게 되죠. 삶의 주인은 누가 되는 건가요? 나인가요, 아니면 AI인가요? 더 이상 '주체적인 인간'이란 개념은 없게 됩니다.


이게 사회적으로 확장되면, 전반적으로 '의사결정 능력'과 '책임감'이 사라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에 없는 변수에는 대응을 못한다는 점이죠. 컴퓨터 안에 있는 고립된 사회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건 없잖아요. 폭우로 인한 홍수, 트럼프의 관세, 우-러 전쟁, 코로나19 대응 모두 변수 밖의 일이 태반이죠. 근데 데이터에 없는 문제를 처리하면서 모두 책임을 피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치인과 공무원들도 AI가 시킨 대로 했다고 주장한다면요? AI를 개발한 구글, Open AI, 메타에 책임을 돌릴 수 있을까요?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와 책임자는 없는 섬뜩한 사회가 될 겁니다.


두 번째 문제는, 정체되고 욕망을 억누르는 사회가 됩니다.

자, 이런 사례는 어떨까요? 당신이 13살이 지나자마자. AI는 당신의 성격과 취향, 특장점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AI는 부모에게 장래 직업을 예측해서 진학할 중학교를 추천합니다. 나아가 고등학교, 대학교, 직업군까지 1순위부터 5순위까지 추천해 놓습니다. 기계를 전공해서 공학자가 되는 길로요. 그렇지만 13살 당신의 꿈은 '오지 탐험가'입니다. 그러나 결정권한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강제로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시켜 당신은 꿈을 접습니다. 어느 순간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래, 어쩌면 오지탐험가는 철없는 꿈이었을 거야. 나에게는 공학자가 맞아." 스스로 세뇌를 하는 거죠.


이제까지 우리는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수많은 선택과 경험 속에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AI가 "넌 이걸 좋아해야 해"라고 정해준다면, 우리는 더 이상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진짜 나'를 탐험하는 여정은 중단되고, 그 자리에 AI가 분석한 데이터의 총합인 '예측된 나'가 들어섭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사회적으로는요? 사람들은 AI가 추천해 준 직업에 종사하고, AI가 찾아준 파트너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AI가 권장하는 여가를 즐깁니다. 이 사회에는 극적인 기쁨도, 찢어지는 슬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안정'과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는, 잡음 없는 세상입니다. 욕망, 도전, 위험, 우연, 실패, 개성이라는 인간 삶의 다채로운 변수들이 사라집니다. 개인의 욕망마저 AI의 추천에 길들여져,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희미해집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사회는 고착되어 계급화가 진행됩니다. 저소득층 자녀는 계속 저소득 직업군으로 일할 확률이 높아지고, 고소득 전문직 자녀들은 전문직 자녀로 추천합니다. 사회는 도전과 역동성이 사라집니다. 부와 권력 모두 집중됩니다.


자, 물론 이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AI 추천을 일부러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죠. 사람들은 그들을 ‘불편한 변수’라고 부릅니다. 다수의 평화로운 일상을 방해하는, 굳이 실패를 사서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라고요. 가끔 특이한 천재 0.1%가 막대한 성공을 거두지만 99.9%는 실패하고 낙오자 취급을 받습니다. 왜냐구요? 시스템에서 거부당하거든요. 안정과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이들은 그냥 '버그'입니다. 직장, 학교에서 낮은 평가를 받습니다. 사회의 기본 요소인 건강보험, 고용보험, 연금에서도 불이익을 받습니다. 신용등급도 낮아지고 청약가점도 낮아 주거도 취약합니다. 사람들은 시스템에 순응하며 따라갈까요? 아니면 이렇게 괴짜, 낙오자 취급을 받으며 살아갈까요?



아직은... 희망이 있다.


다만,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은 AI가 완벽하지 않다는 겁니다. AI는 '현재시점'에서 ‘평균적 성공 확률’이 가장 높은 길을 추천하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합니다.


아까 사례로 돌아가볼까요? AI가 알려준 대로 미연은 현우와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근데 이런 어쩌나! 정치권의 결정에 따라 현우가 근무하는 공공기관의 지역 이전이 급하게 결정되었죠. 결국 미연과 현우는 어쩔 수 없이 주말부부를 하게 되었고 관계는 서서히 멀어졌습니다. 곧 아이가 생겼지만, 육아로 인한 힘듦과 불안함은 오로지 미연 몫이었죠. 더구나 책임감 강하던 남편은 오히려 지방에서 일과 연구에 열중했고, 결국 둘은 별거를 거쳐 이혼을 택했습니다. 러버 AI가 공공기관 이전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떨어져 살게 된 미연과 현우의 성격 변화는요?


즉, AI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합니다. AI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현재와 과거의 나를 잘 판단할 수 있죠. 그러나 '다른 사람'과 '세상'의 미래, 그리고 거기서 살아갈 '나'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생각보다 인생은 변수와 불확실성이 가득한 곳이니까요.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날지,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죠. 무한대로 발생하는 변수와 타인의 행동패턴은 AI도 예측 못합니다.


저는 여기서 희망을 봅니다. AI가 과거의 나를 잘 알 수 있지만, 미래의 나를 모르니까요. 미연이 AI가 추천하지 않은 '준수'를 선택했다면 또 다른 길이 펼쳐졌을 겁니다. 더 불행했을 수 있고, 행복할 수도 있겠지요. 금방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났을 수도 있겠지요. 다만 적어도 자신이 선택했다는 점에서 후회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는 이것처럼 내 삶의 주인의식,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AI에 가두지 마세요. 확률과는 다른 선택을 해보세요. 새로운 길에서 예측하지 못한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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