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관성의 법칙)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
위 법칙이 바로 물리학에 존재하는 '관성의 법칙'이다. 쉽게 말하면, '원래의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한다'라고 설명할 수 있다.
왜 갑자기 복잡하고 머리 아픈 물리 이야기를 하냐고?
이 법칙이 바로 당신이 월에 천만 원을 벌지 못하는 이유이자, 아무리 마음먹어도 쉽게 인생이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잘 되는 놈은 계속 잘 되고, 안 되는 놈은 계속 안 되는 이유 그 자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지긋지긋한 관성을 벗어던지고, 이제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반드시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길 바란다. 딱 3분의 투자가 앞으로 30년을 좌우할 수 있다.
지금까지와 다른 인생을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의 나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장 폴 사르트르
인간은 모두 생각이란 것을 한다. 그 생각의 방식이 자리 잡는 데에는 보편적으로 가정교육 및 가정환경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렇게 영향을 받은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말해왔고 행동해 왔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순간순간에 특정한 말과 행동을 '선택'함에 따라서 각자 다른 결과를 얻었을 것이고 그 일련의 과정이 우리의 뇌에 '패턴화'가 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 때 숙제를 안 해서 살면서 처음으로 선생님께 핑계를 댔더니, 선생님께서 "이번 한 번만 봐줄 테니까 다음부터는 안돼"라며 넘어가 주셨다. 이 경험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아 핑계를 대면 넘어갈 수 있구나'라는 사고방식을 얻게 된다. 이런 것도 일종의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핑계를 대고 뚜들겨 맞았다면 다른 패턴을 얻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패턴화 된 여러 다양한 생각, 말, 행동들을 지속적으로 해왔을 것이고 이는 결국 고착화되어 뇌 한구석에 단단히 자리 잡는다. 즉 '습관화'되었다는 뜻이다.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매 순간순간의 선택이 패턴을 만들었고, 패턴은 습관이 되었다.
이 모든 과정으로 인한 결과물의 총합이 바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평생 책 한 권 안 읽어본 김 아무개가 있다고 하자. 어느 날 김 아무개는 자기 계발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삘이 꽂혀서 이번 주부터 매주 한 권씩 책을 읽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날엔 설레는 마음으로 서점에 가 맘에 드는 책을 구매한다. 집에 돌아와 기분 좋은 마음으로 50쪽 정도 열심히 책을 읽는다
둘째 날까진 아직 의욕이 불타오른다. 거부반응을 꾸역꾸역 참아가며 책을 30쪽이나 열심히 읽는다.
셋째 날이 되자 점점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책을 읽자니 온몸이 근질거리고 고통스러워진다. 10쪽 정도 읽다가 '내일의 내가 읽겠지 뭐'하는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일주일이 되자 책 한 권은커녕 한 챕터도 제대로 읽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래 내가 그렇지 뭐'
이게 과연 김 아무개만의 사정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약간의 과장을 빼면 아마 99%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정말 단순하다. 새로운 행위가 지금까지의 나에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지금까지의 나와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배척하려고 한다. 억지로 노력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기존의 상태, 즉 관성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야심 차게 세웠던 계획과 목표를 제대로 이루지 못한 이유는 '내가 남들보다 못나서', '내가 남들보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그저 99.999%의 인간들에게 전부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고 이뤄내는 사람은 정말 0.0001%도 안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호되게 자책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다 똑같으니 괜찮다'라는 위로만 받은 채 계속 주저앉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관성을 이겨내고 새로운 습관을,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낼지 고민할 것인가?
지금부터 관성을 이겨내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3가지 방법을 알아보겠다. 지금과는 다른 나를 마주하고 싶다면 끝까지 보길 바란다.
인간은 원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 약속에 다른 누군가가 관여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나 스스로 계획이나 목표를 세웠다면 이를 다른 사람에게 공유(혹은 공표) 하라. 가족, 친구, 직장동료, 지인 아무나 상관없다. 대신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공유한 사람이 알게 됐을 때 수치심이 들고 자존심이 상한다면 더욱 좋다.
수치심으로 부족하다면 내기를 걸어라. 예를 들어 정해진 날짜까지 무언가를 완료하기로 약속했다면 지키지 못했을 시 상대방에게 돈이나 물질적 보상을 하라.
사람이 정말 간사한 것이, 타인이 관여되면 쪽팔려서라도 혹은 돈이 아까워서라도 하게 된다. 하지만 잠깐 간사하면 어떤가? 그렇게라도 관성을 깰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동원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혼자서 목표를 이루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하다. 페이스메이커란 일반적으로 중장거리 달리기나 마라톤에서 속도와 발을 맞춰주는 파트너를 뜻한다.
파트너와 함께 한다면 힘들어도 더 쉽게 이겨낼 수 있다. 내가 힘들 땐 파트너가 도와주고, 또 파트너가 주저앉을 땐 내가 힘을 북돋아주며 다시 나아갈 원동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더 나아가 경쟁심을 유발하고 없던 힘도 나게 해 준다.
정말 이루고 싶은 발전적인 목표가 있다면 파트너와 함께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정말 때려죽여도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싫은 날 말이다. 그럴 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관성에 저항하는 최소한의 몸부림이다.
그런 날엔 정말 최소한의 목표를 정하라. 예를 들어 블로그를 일주일에 3개씩 쓰기로 정해져 있었다면, 그날은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글 3줄만 쓰기로 마음먹어보자.
만약 어떻게든 안간힘을 써서 글 3줄을 써내는 데에 성공했다면, 관성에 저항한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는 것이다. 달달한 간식 혹은 약간의 쇼핑도 좋다.
이렇게 최소한의 목표를 막상 이루고 나면, 생각보다 되게 별거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글을 더 쓸 수 있는 추진력을 얻을 수도 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하는 건, 멈추지만 않으면 뭐든 된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고통스러울지라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어떻게든 이 악물고 제자리걸음이라도 걸어보라.
아무것도 못하겠는 날이 있으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날도 분명 올 테니까.
지금까지 '당신이 월천만원을 벌지 못하는 단 한 가지 이유 (feat. 관성의 법칙)'에 대한 1억치트키만의 생각을 적어보았다.
앞서 말한 3가지 방법으로 관성을 벗어나 발전적인 새로운 관성을 만들어보라. 그럴 수만 있다면 나약했던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게 오히려 더 힘들어질 것이며, 계속해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새로운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