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울고 있었던 거야. 나는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울고 싶었던 것은 아니야.
나는 내 아들과 그 계집년이 누워 있는 침대를 불살라 버리려고 호텔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새 성냥갑도 준비해 가지고 왔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를 못했다. 그저 울면서 몸을 떨고 섰을 뿐이었다. 힘이란 힘은 온 몸에서 쏙 빠진 것 같았다. 그런 나 자신이 나는 얼마나 수치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들은 그렇게도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행복했기 때문에 그렇게 아름다웠다. 난 또 그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도 몰라. 나는 그렇게 행복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내 남편과 한 번도 그렇게 누워 본 적이 없었다. 가련한 늙은 여편네인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지. 그러는 동안에 나는 점차 그들을 그렇게 누워 있는 대로 내버려 둘 마음이 되어 갔다.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사유해보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마흔일곱 번째 작품은 에이빈드 욘손의 '복수는 시작되다'입니다.
에이빈드 욘손(Eyvind Johnson, 1900.7.29 ~ 1976.8.25)은 한국에 잘 알려지진 않은 스웨덴의 소설가입니다. 초등 교육밖에 받지 못한 채 14살부터 허드렛일을 하다가 19세부터 21세까지 작가 수업을 받은 후 50세가 이르러서야 작가로서 정착, 그리고 태어난지 74년이 되던 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어느 한 노파가 있습니다. 그녀의 아들은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당했습니다. 노파는 아들을 그리워하지만, 그러면서도 아들의 여자친구를 '계집년'이라고 부르며 그녀를 증오합니다. 왠지 모르게 그녀가 순진한 아들을 홀린 것 같고, 그녀 때문에 아들을 잃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그래서 노파는 아들의 여자친구를 죽이려는 계획을 합니다.. 그러나 정말 계획만 할 뿐입니다. 넋두리만 할 뿐.. 그래서 제목이 그러합니다.
제가 선별한 장면은 그 '계집년'에 대한 노파의 넋두리입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너는 그 계집애가 너와는 천생연분의 계집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내가 더 잘 안다.
그년은 저 하나밖에는 결코 알지 못하는 그런 년이다.
저 하나만을 생각하고, 저 하나만을 사랑한다. 나만이 너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는 나를 배반했고, 한 집 사람들을 배반했고, 온 동네 사람들을 배반했고, 전쟁터에서는 다른 동료 병사들을 배반했다.
그랬음에도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너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나는 내 부름 소리가 너한테까지 미치는지는 의문이구나. 나는 늙었다. 생각도 마구 착잡하다. 너희들 둘의, 너와 그 계집년의 생각으로. 그래서 나는 녹초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너에게 보내고 있는 생각들이 그 계집년의 노랫가락들을 충분히 눌러 이길 만한 힘을 지닌 것인지도 의문이다.
그 계집애의 노랫가락은 독기를 품은 바람처럼 너에게 불어칠 테지. 그년의 노랫가락은 천하디 천하다. 거기 비하면 내 생각들은 너무나 점잖지. 천박한 것과 만나면 점잖은 것이 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난 그 계집애를 그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게 나를 피했다. 왠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그 계집애의 마음보가 고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 계집애들이란 고약한 마음보도 없는 것들이다. 어쩌면 나를 피한 것은 전혀 아닌지도 모른다. 필경 나를 이미 오래 전에 잊은 탓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년은 내 아들도 그렇게 잊은 지가 오래겠지. 그런 계집년들은 일이 그렇게 되면 반은 남자인 것들이야. 그 계집년은 분명 나를 피하거나 찾을 시간이 없었을 거다. 분명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사내와 몸을 나눴을 거야. 내 아들과 같이 잤던 호텔의 그 침대에서. 나에게는 그깟 계집년 볶이든 말든 전연 무관한 일이지. 나에게는 그것도 죽은 셈인 계집년이니까.
당시 나에게는 두 통의 통지가 와 있었다...
도중에 나는 내 아들의 편지를 읽었다. 나는 그 편지를 암기할 수가 있다. 앞으로도 난 그건 언제나 외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걸 너희들한테 들려주마, 내 가장 사랑하는 새들아, 아직 내 가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인 너희들 새들아. 그 편지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사랑하는 어머님께 용서를 빌어야겠습니다. 저는 무서운 일을 저질렀습니다. 저는 그 때문에 죽게 될 걸 알고 있습니다. 그건 제가 자업자득을 한 일입니다. 와주십시오. 어머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전투 때였습니다. 그건 제가 참가했던 첫 번째 전투였습니다. 우리 소대는 이미 삼십 명밖에 안 남아 있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전몰해 있었던 것입니다...(생략) 저는 두려웠어요. 우리는 그 고지 사이를 뚫어야 했습니다. 사상자가 무섭도록 많이 났습니다. 둘 중의 하나는 쓰러지는 것이었어요. 저는 내내 무사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두려움은 더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아가씨를 생각했지요. 그 애는 귀여운 아입니다. 저는 그 아가씰 사랑해요. 그 애도 저를 사랑하고요. 그리고 어머님께서 그 앨 반대하신다는 것도 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발 부탁이니 한 번만 그 아이와 얘길 나눠 봐주십시오. 그러시면 어머님도 저희 편이 되실 겁니다. 오 맙소사!
어떤가요? 사실은 웃긴 소설은 아닙니다만.. 재미있게 읽어서 한번 소개해보았습니다.
아들은 전쟁통에도 여전히 여자친구 생각뿐이네요ㅎㅎ.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나요?
2.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사는 것은 결국엔 안 좋은 건가요? 그것은 어떤 종류의 예술적 태도인가요?
3. 연민의 감정에는 혐오의 감정도 조금은 있는 것인가요?
4. 누군가를 증오하면서도, 막상 그 사람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 조금 주저하게 되나요?
5. 약간 싫어하고 냉소적인 마음이, 나를 가장 정직하게 만드는 순간일 수가 있을까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사람들은 솔직함보다 잔인함에서 더 큰 만족을 얻습니다.
-리차드 니덤
오늘의 음악입니다.
성모 마리아를 향한 저녁기도를 위한 성가
시기와 질투, 증오는 결코 없는 것이고.. 무목적적인 악의성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