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관광버스 탄 썰 푼다 -1-

달리는 노래방, 그야말로 난리 부르스

by 나도아는데

*이 이야기는 실존하는 인물, 장소, 관광업체와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있더라도 우연의 일치이며, 그 내용은 완벽한 허구입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울었어 외로워서 한참을 울었어 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아직도 온 몸이 쑤신다. 이번이 두 번째 탑승이었는데 정말 매번 중장년층의 체력이 얼마나 대단한가에 놀라고 만다.


내가 어제 탄 버스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한가락들 하는, 평균연령 60대의 임원들이 거의 꽉 차게 탄 40인승 버스였다. 성비는 매우 극단적으로, 나 포함 단 2명만이 여성이고 나머지는 남성이었다. 소주가 세 박스 실렸고 맥주도 한 박스 실렸다. 동네 김밥집에서 사온 김밥 50줄은 커다란 라면상자에, 닭발편육은 영덕대게 판매점에서나 볼 법한 사이즈의 사각형 스티로폼 상자에 담겼다.

버스 전면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있고 좌석 중간중간 창가에 작은 모니터가 있다. 그 모니터에서는 고속도로에서 판매되는 일명 ‘관광 DVD'라고 하는 것이 재생되고 있는데, 그 영상은 빠른 디스코 비트로 편곡된 트로트를 배경음악으로 짧은 하의와 딱 붙는 상의를 입은 여성이 춤추는 모습을 굉장히 노골적인 앵글로 담아낸-묘하게 쌈마이 감성인- 영상이다.

관광버스에는 없는 것이 없다. 커피믹스와 녹차 티백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종이컵 디스펜서가 있으며, 심지어 온수가 나오는 정수기도 있다. 여기가 탕비실인지 버스인지 좀 헷갈린다. 그리고 좌석 중간중간에는 휴지를 걸어둘 수 있도록 휴지걸이가 준비되어 있다. 예전에는 노끈을 묶어 거치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휴지 거치 방식에도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여 벨크로가 달린 예쁜 끈에 두루마리 휴지를 꿰어 벨크로를 붙이거나, 아예 철제로 된 휴지걸이를 천장에 박아두기도 한다. 이 휴지는 추후 댄스타임 때 길게 풀어내 머리에 둘러 흥을 돋우거나 노래방 기계에서 100점이 나온 사람에게서 걷은 돈을 꽂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관광버스 운전석의 특이한 점은 운전기사의 오른쪽에는 꽤 커다란 노래방 리모콘과 전면의 커다란 모니터가 그대로 미러링되고 있는 작은 모니터, 왼쪽에는 작은 숫자 키패드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젊은 내가 리모콘을 들고 신청곡을 예약해서 필요가 없었지만, 내가 리모콘 조작을 헤맸을 때 운전기사가 아주 능숙하게 대신 조작해준 걸로 봐서는 운전 중에도 수시로 조작을 했으리라는 짐작이 든다. 승객이 노래 제목을 말하면 리모콘으로 제목검색을 누르고 노래 제목의 초성을 누른 뒤, 원곡, 원곡과 같은 제목의 곡, 원곡의 리메이크 곡 등 3-4곡이 어지럽게 혼재되어 있는 목록 중에서 승객이 원하는 노래를 정확히 집어내 예약을 했던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고속도로를 100km 넘는 속도로 달리며 이루어진다. 정말 놀랄 노자다.

이 혼돈의 버스에 탑승한 30대 여성인 나의 역할은 맨 앞자리에 앉아, 내 자리 바로 앞의 냉장고에서 술과 안주를 조달하는 일이다. 첫 탑승 때에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양 손에 술과 안주를 들고 뒷자리까지 배달한다는 게 상상도 되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초단거리를 운전할 때에도 늘 습관처럼 안전벨트를 매고, 고속버스를 탈 때면 기사님이 안내하기도 전에 이미 벨트를 매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내가 옷 주머니에 소주병을 거꾸로 꽂아 넣고 양손에 안주와 종이컵을 들고 버스 통로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사람이 되기까지 어떤 내면의 갈등이 있었는지는 비밀이다.

이 쯤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건 불법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런 의문은 버스에 오르기 전 버리는 것이 이롭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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