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은 기억은 봄에 있었네
작년 11월부터 나는 심리상담과 정신과 진료를 병행해야 할 정도로 마음이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갑상선암 진단부터 수술 후 회복까지의 지난한 과정과, 그 과정이 끝난 후 복귀한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고민이 불러온 결말이었다.
심리상담 과정에서 내가 양육자들에게 버려질까 봐 계속 괴로워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어 억울하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한 생각이 들었다. (이 얘기는 차차 더 풀어나갈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얼마 전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약칭 여둘톡)의 청취자인 ‘톡토로’ 오픈채팅방에서 운영되는 소모임 중 하나인 글쓰기 모임에 함께하게 되었다.
이 모임의 첫 글쓰기 주제가 바로 이 글의 제목인 ’봄의 기억‘이다. 이렇게 쓰는 글이 너무 오랜만이라 어떤 글감을 써야 할지 고민되어 새벽에 마인드맵을 그리다 보니 그 내용이 양육자들에게 받은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위로할 겸 가족으로부터 봄에 받은 사랑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내가 결혼으로 출가하기 전까지 우리 집에는 작은 전통이 있었다. 생일을 맞는 사람을 위한 아침밥으로 밀가루를 얇게 발라 바삭하게 구운 갈치와 소고기를 듬뿍 넣은 미역국을 요리한다. 내 생일밥을 위해 엄마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새벽부터 준비하곤 했다. 잠결에 들리는 잘그락잘그락 쌀 푸고 씻는 소리, 곧이어 나는 고소한 갈치 냄새, 미역국을 끓이면서 나는 구수한 참기름 냄새를 누워서 느끼며 그 동작 하나하나에 묻어나는 사랑을 느끼곤 했다.
나를 위한 요리에서도 그랬지만, 엄마의 생일날 새벽에 아빠와 함께 엄마를 위해 요리하던 기억도 참 따뜻하게 남아있다. 부엌이 낯설어 결국 중간에 엄마에게 SOS를 쳐야 했던 순간이 여러 번이었지만 매번 즐거워하며 ‘이 시간에 밥 안 하고 이렇게 누워 있으니 너무 좋다’던 엄마의 말에서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사랑이 전달되었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기억을 더듬어 조금 더 과거로 가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수팥떡을 만들어주던 엄마가 있다. 우리 지역에서는 아이가 10살이 되기 전까지 생일마다 동그랗게 빚은 수수팥떡을 만들어 먹이는데, 난 그 떡을 참 좋아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니 엄마도 매번 즐겁게 그 떡을 만들어주었다. 이런 기억 덕분인지 갓 쪄낸 따끈따끈한 수수팥떡은 아직도 나의 최애 떡이다.
흙먼지 이는 벚꽃길에서 먹(다 결국 차 안에 피신해서 먹)은 김밥도 마음을 데워주는 추억이다. 처음 가족들과 함께 살던 면 지역을 벗어나 시내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급격히 불량해진 영양 상태 탓인지 밤늦게까지 이어지던 공부가 힘들었던 건지 얼굴에 버짐이 필 정도로 안쓰러운 모습이 되었다(고 엄마는 회상한다). 내 첫 생일에 나는 엄마표 칼칼한 두부조림을 먹고 싶다고 했고, 그게 또 마음 아팠던 두 사람은 머지않아 벚꽃구경을 하러 김밥을 싸갖고 내가 사는 시내로 나왔다.
기숙사 외출증을 끊어 우리 지역의 벚꽃 명소에 도착해 팔각정 아래 자리를 잡았는데 바람이 진짜 미친 듯이 불었다. 우리는 실성한 듯 웃으며 차 안으로 피신해 흙먼지가 이리저리 붙어버린 김밥을 먹어야 했다. 아직도 꽃구경을 갈 때마다 그 생각이 날 정도로 꽤나 강렬했던 기억이다.
조금은 더 여유로워진 벚꽃구경도 있다. 새로 이사 간 엄빠집 바로 앞에 천변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벚꽃길이 있다. 말이 벚꽃길이지 실은 농로에 가까운 길이라 벚꽃철에만 반짝 사람이 많아지는 그런 곳이다. 애주가였던 나와 엄마는 맥주와 과자를 들고 그 천변에 나가 일명 ‘노상’을 깠다. 조용한 길에 이따금 차가 올 때면 주섬주섬 맥주와 과자를 챙겨 일어나 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면서도 알딸딸한 기운에 마냥 즐거웠다. 따뜻한 햇살과 윤슬, 조금은 세찬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 잎,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예쁜 벚꽃길이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나를 참 행복하게 했다.
이 외에도 고등학교 기숙사에 입소하던 날 마지막으로 배 터지게 외식한 후 아빠가 사서 들려 보내준 고구마케이크를 룸메들과 나눠먹은 일, 대학교 기숙사에 입소하던 날 학식을 같이 먹으며 밥이 영 부실하다며 마음 아파하던 모습(내 생일은 학기 시작과 겹치는 날이다)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기억들은 어떤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소소해서 사랑받은 기억이라고 하기에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정말 가난했던 우리 집의 당시 상황을 생각해 봤을 때 매 순간 그들이 가진 자원 안에서 최대한으로 무엇인가를 해주려 했던 내 양육자들의 마음이 나에게는 충분히 전해진다. 새 학년의 시작이자 내 생일인 3월을 기념해 최신형의 휴대폰, 노트북,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주곤 했던 그 마음들을 가만히 꺼내어보고 있자면 제법 사랑받은 것 같은데 왜 평생을 그 사랑을 즐기지 못하고 버림받을 걱정을 해왔나 싶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그래도 이번 글쓰기를 계기로 내가 받은 사랑을 꺼내어봤으니 앞으로는 한결 든든해진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모든 시간, 모든 공간에서 행복한 나로 살아갔으면 한다. 그게 내가 받은 사랑을 빛바래지 않게 하는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