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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두달짜리 남편의 육아휴직에서 한 수 배웠다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할 힘이 내 안에 있다

by 감격발전소
아이고 착하기도 하지



어린 시절, 어른들이 하는 '착하다'는 말이 무척이나 좋았다. 뭔가 괜찮은 존재로 인정받는다는 느낌이랄까.


그런 내가 20대가 되었다.

20대가 되어서도 나에게 늘 따라붙는 말은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였다. 얼굴 전면에 늘상 미소를 띠고 있어서일까? 무표정의 나는 늘 다음과 같은 말을 불러일으켰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요?"


그냥 별 일이 없어서 웃지 않은 건데 상대에겐 그렇게 느껴진다고? 그 말 한마디에 내 얼굴엔 다시 미소가 덮였다.


30대가 되었다.

앞서 2번의 회사를 거쳐 이번엔 꽤나 폐쇄적인 조직으로 들어왔다. 사이코총량의 법칙 때문일까 철밥통 조직이기 때문일까. 이번엔 사이코가 꽤나 많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일관하는 나의 방식은 사이코의 타깃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의 음해 속에 화장실에서 몰래 울고 오는 게 일상이었고 나는 그와 맞짱 뜨기보단 치유센터에서 상담을 받는 방식을 택했다. 치유센터에서의 상담이 내 삶에서 '반전 행동'을 일으켰으면 좋았으련만, 그저 분한 마음을 토해내고 마음을 도닥거리는 수준으로 끝났다. 아니다. 분명 '용기'를 내보겠다 다짐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용기는 상담사 앞에서만 불끈 달아올랐고 막상 직장에 출근하면 그 용기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40대가 되었다.

나도 육아휴직 해볼까 타령을 하던 남편이 실로 육아휴직을 감행하였다. 시골 마을의 작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걸 좋아했는데, 나는 아이의 친구들이 집에 올 때마다 몸이 무척 고되었다. 마치 시어른이 집에 오시는 것 마냥 아이 친구들이 올 때면 집을 쓸고 닦았고, 막상 아이들이 오고 나면 아이들에게 내어줄 음식을 만드느라 혼이 빠졌다. 이런 상황이 수차례 반복되자 어느 순간 의문이 생겼다.


그저 아이일 뿐이잖아.
애들한테 뭐 그리 잘 보일 거라고
나는 매번 쓸고 닦고 요리하고 중노동을 하는 걸까.
왜 그네들을 편히 맞이하지 못하는 걸까.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자 어렴풋이 답이 나왔다.

'아, 나는 아이들 엄마한테 잘 보이고 싶은 거구나!'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면 '오늘 OO이 집에서 즐겁게 놀았어?'라는 엄마의 질문을 시작으로 '그래? 뭐 하고 놀았어? 그 집 엄마가 맛있는 거 해주던?' 같은 질문이 줄줄이 이어질 텐데 그때 그 아이 입에서 나에 대한 좋은 말이 나오길 원했구나.


그걸 깨닫고 난 후 심히 괴로웠다. 직접 대면하지도 않은 아이 엄마에게 뭐 그리 잘 보이고 싶었던 걸까. 아이들은 그저 '놀 터'와 '놀 친구'만 마련해 주면 너무 행복해할 존재들인데.


돌콩만 한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네들의 엄마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전전긍긍하는 내가 더없이 못 미더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그리도 염원하던 육아휴직을 했다.


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 맞이하는 역할이 나에게서 남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아침에 보니 집이 쑥대밭이던데, 애들 오기 전에 집 치우려면 남편이 고생 좀 하겠구나' 싶었었다. 한데 퇴근해서 집에 오니 웬걸. 집이 깨끗하면서도 엉성한.. 뭐 그런 오묘한 상태랄까?


남편과 저녁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들으니, 집을 남편 혼자 치운 게 아니라 아이 친구들과 함께 치웠다고 했다. 에잉? 그게 무슨 말이냐 물었더니 아이들이 집에 왔을 때 "자~ 너희들이 우리 집에서 놀려면 먼저 집을 치워야 돼, OO 이는 여기를 정리하고 OO 이는 여기를 치워보자~" 했다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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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나는 "그래서 애들이 진짜 치우든?" 물었고

남편은 "당연하지! 맨 첨엔 '아유~ 우리가 왜 그래야 돼요~' 불만을 터트리던 아이들이 어느새 자기네들끼리 깔깔거리면서 순식간에 치워버리던데?" 답했다.


띵~~~

나 여태껏 뭐 한 거야.....


휘리릭 치우고

신나게 놀다가

맛있는 간식까지 먹여놓으니(나와 달리 남편은 사 먹였다. 치킨)

담에 또 초대해 달라며 너무 좋아하더라는 거다.


아이들에게, 아이들의 엄마들에게 잘 보이려 늘 쓸고 닦고 요리하던 나는 남편의 환대 방식을 보고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돼? 그래도 되는 거였어? 그래도 되는 거구나......................


그렇게 두 달.

남편의 꿀 같은 육아휴직이 끝나고 아이들의 친구를 초대하는 건 다시 나의 몫이 되었는데, 어느 날 나도 한번 남편의 방식을 실행해보고 싶었다. 이제 막 건조기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빨래들.


얘들아, 떡볶이 맛있게 먹었니~~?
자~ 이제 맛있는 떡볶이 값을 해야 됩니다요!


한 명당 수건 9개씩 개기 미션을 시작하겠어요!
누가 누가 반듯반듯 예쁘게 개나
누가 누가 빠르게 개나~
준비하시고 시~작!!!


아이들은 예와 다른 내 모습에 순간 당황해했지만, '미션'이라는 단어에 꽂혀 우와 재밌겠다를 외치며 번뜩이는 눈으로 수건을 개기 시작했다. 눈치가 빤한 중학생 아들 녀석은 '아이고 저걸 속냐'를 작게 읊조리며 아직 떡볶이를 덜 먹었다는 듯 젓가락을 내려놓지 않았다. 허나 상대는 귀여운 초등 친구들. 삼삼오오 수건 더미 앞에 모여들어 '누가 누가 반듯 반듯 빨리 개나' 미션에 심취하여 수건을 폈다 접었다 난리가 났다.


그 모습을 보는데 뭐랄까.

가슴에서 뭔가 하나 팡~ 터지는 느낌과 더불어 사슬이 하나 뚝 끊기는 느낌.

내 심장을 꽁꽁 묶고 있는 눈치 사슬이 느슨히 풀어지는 것 같았다. 해방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보자.


평소 '놀이'를 좋아하는 내 성향에 맞게 놀이를 통해 내 취약성을 하나씩 풀어내보자 싶었다.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난주엔 아이와 아이 친구들을 데리고 공원에 놀러 갔다 왔다. 따뜻한 봄날을 느끼며 피크닉을 하고 싶었기에 샌드위치와 과일도시락, 매트까지 야무지게 챙겨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노랑 초록이 어우러진 피크닉 매트를 펴고 샌드위치에 알록달록 과일도시락까지 펼치자 아이들 입에서 함성이 터진다.


"우와~~~"

"진짜 맛있겠다"


후후~ 어깨뽕이 절로 올라갔다. 매트 위에 차려진 알록달록한 음식들과 상기된 아이들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카메라로 찍었다.


그렇게 완연한 봄을 느끼며 마무리된 아이들과의 피크닉. 집에 와 아이들 저녁을 해먹이고 이제 드디어 숨을 돌릴 차례다.


오늘 제 아이들이 뭐 하고 놀았을지 궁금했을 아이들 엄마에게 사진을 보내드려야지 싶었다. 카톡을 눌러 친구 목록을 살피던 중 또다시 아이들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나를 느꼈다.


아이들 엄마에게 사진을 보냄으로써 '오늘 제가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나 음식을 준비하고, 이렇게나 재미나게 놀았어요'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나를 느꼈다.


얼른 손을 거두어 아이 엄마가 아닌 당사자인 아이에게 사진을 보냈다.

한 아이는 '감사하다'는 답을, 한 아이는 '아.. 네'라는 답을 보내었다. 나머지 한 아이에게는 무려 씹혔다.

그럼에도 빨래 개기 미션 때처럼 오늘도 사슬 하나를 끊어낸 기쁨을 느꼈다. 앤소니 드 멜로의 <깨어나십시오>라는 책에서 읽은 '깨달아 알고 있으면 그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깨달아 알고 있지 못하면 그것이 나를 마음대로 한다'라는 문장이 심장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년시절부터 계속된 내 안의 눈치 보는 아이.

이 프레임을 깨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할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나를 따듯이 보듬으며 오늘도 깨어있으려 노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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