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는 OTT를 보지 유튜브는 즐겨 하지 않는다. 한데 이번에 방송인 김나영님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노필터티비(Nofilter TV)에 평소 너무 애정하는 이슬아 작가님이 나온다는 게 아니겠는가.
7여 년 전 <일간 이슬아>라는 충격적일정도로 놀라운 책을 보고 그녀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챙겨 보고 있다. 많은 책들이 좋았지만 <새 마음으로>와 <가녀장의 시대>라는 책이 나는 특히나 참 좋았다.
<새 마음으로>는이슬아 작가가 응급실 청소 노동자, 아파트 계단 청소 노동자, 농업인, 인쇄소 기장님 등 이웃 어른들을 인터뷰하며 쓴 책이다. 이슬아 작가의 글은 이렇게까지 싶을정도로 파격적으로 솔직한 데, 그 가운데서도 늘 사람을 향한 따스함과 존경을 놓치지 않는다. <새 마음으로>라는 책은 그녀의 따스한 시선이 가장 잘 묻어난 책이었다. 책에 나와있는 여러 인터뷰 중 에세이스트 김신지 작가님의 어머니이자 농업인인 윤인숙님을 인터뷰한 '버섯이 쏘아 올린 작은 공' 편을 특히나 좋아한다.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빨리빨리 잊어버리려고 해.
스트레스를 안고 꿍해있으면 나 자신이 너무 상해버리잖아.
새 마음을 먹는 거지. 자꾸자꾸 새 마음으로 하는 거야.
<가녀장의 시대>는 이슬아 작가의 도발스러움과 발칙한 상상력이 정말 극대화된 책이어서, 보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하고 탄성을 내뱉으며 읽었다. <가녀장의 시대> 책의 주 무대가 이슬아 작가 집이었는데 이번에 김나영님의 유튜브 촬영 장소가 다름아닌 이슬아 작가의 집이라지 않겠는가. 텍스트로만 읽고 상상하던 집을 실제로 본다는 기대감에 얼른 시청하게 되었다.
한데...
유튜브를 보면서 내 마음을 울린 것은 작가의 집이 아닌 이훤 작가의 '시' 한편이었다.
이슬아 작가의 남편이자 시인인 이훤 작가가 김나영님께 시 한편을 지어 선물했다. 김나영님과 두 아들을 떠올리며 지은 시인데 세상에 어찌 감동적인지.... 보는 내내 듣는 내내 너무 울컥했다.
'놀러와' 라는 제목을 가진 시 전문을 공유해본다.
(참고로 신우와 이준이는 나영님의 아들임)
놀러와
- 나영, 신우, 이준에게
나는 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이준이는 나의 가장 친한 동생
엄마는 나의 가장 큰 집
엄마는 눈꺼풀이 얇아서
자주 웁니다.
너에게 좋은 것을 줄게
말하면서 울고
자전거 타는 나를 보며 웁니다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면 안 돼
넘어지면서 배우는 거야
엄마는 카메라에 찍히는 사람
엄마를 모르는 사람들이
엄마를 기억합니다
작년에는 너무 빠르게 자라는
이준이와 나를 보며
엄마가 말했습니다
엄마가 많이 많이 기억해놓을게
많이 기억하는 어른은
슬퍼지나 봅니다
엄마는 크게 웃고 많이 웃습니다
눈 내리는 것처럼 웃어서
우리를 다 덮습니다
레고 블록처럼 우리는 쌓이고
카메라 속에서
다시 조립되는 중입니다
이준이가 차를 두 번 엎질렀는데
엄마는 세 번째 차를 내려줍니다
엄마가 셋 셀 동안 그만하라고 했는데
나는 자꾸 늦습니다
엄마가 해준 말을 모았더니
커튼이 됐습니다
형아는 첫 번째 아기라서 소중하고
너는 마지막 아기라서 소중해
커튼을 잘라
방 안에 불을 만들었습니다
신우야 이준아
너희의 모국어가 될게
엄마라는 나라에 계속 놀러와
엄마를 배우는 동안
나의 지도가 늘어납니다
나는 그 나라를 좋아합니다
내가 제일 그리운 표정들은
다 거기 삽니다
엄마도 여기 계속 놀러와
그냥 놀러와
이훤 지음
내가 엄마의 자리에 있어서일까. 아름다운 글귀가 이훤 작가의 나긋한 목소리를 통해 읽어지는 데, 듣는 내내 몹시도 마음이 일렁였다.
'내가 너희들의 모국어가 될테니 엄마라는 나라에 계속 놀러오라'는 말이, '엄마를 배우는 동안 나의 지도가 늘어난다'이라는 말이 그 날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김나영님 유튜브에서 이훤님이 낭독하시는 시를 직접 들으면 더 와닿을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hcxukz-_Ys&t=3s
꼭 한번 들어보세요 ^^ (20분 51초부터 들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