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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내린 섬에서 만난 여행

우회로에서 건네받은 뜻밖의 선물

by 감격발전소

낮에는 회사, 저녁에는 육아. 워킹맘으로 사는 내게 휴일은 그야말로 황금 같다. 원래부터 놀고재비 기질이 다분한 나는 네모난 사무실 안에 갇혀 있는 삶이 얼마나 답답한지 모른다. 그래서 휴일이 생기면 무조건 밖으로, 자연으로 향한다. 다행히 내가 사는 통영은 사방이 섬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연화도다.


배 위에서 파도와 하늘을 바라보며,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며 나는 다분히 들떠 있다. “역시 여행은 사람을 숨쉬게 해.” 혼잣말까지 흘러나올 만큼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아뿔사. 너무 기쁨에 취해 있다가 그만 연화도 도착 안내 방송을 놓치고 말았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배는 다시 떠나버렸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더니….


선장실에 달려가 사정을 말하자, 어쩌다 방송을 놓쳤냐며 핀잔을 주신다.


다음 정박지는 욕지도였다. 이미 다녀온 곳, 게다가 차량 없이는 돌아다니기 쉽지 않은 섬. 아찔했다. 다행히 관계자분이 전화를 걸어 알아봐 주셨다. “욕지도에서 연화도로 가는 배가 있어요. 그걸 타면 돼요. 오히려 운 좋네요. 추가 요금도 안 내도 되고요.”


휴, 안도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연화도로 가기 전, 두어 시간을 욕지도에서 보내야 했다. 게다가 1만 원만 내면 섬 투어를 해주는 관광버스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떠나버린 참이었다. 바나나 우유를 하나 마시고, 빵집을 기웃거리다 과일 가게 앞에 서게 됐다.


“혹시 자전거 대여해주는 데 없나요?”


주인 아주머니는 내 얘기를 듣더니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그럼 내 자전거 타요!

녹이 좀 슬긴 했지만, 남편까지 불러내어 스프레이를 뿌려 바퀴까지 매끈하게 손봐주신 자전거. 그 친절을 등에 업고 나는 섬의 해안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차를 타고 움직였다면 잠깐 멈춰 풍경만 보았겠지만, 자전거 위에서 나는 온몸으로 바람과 바다를 제대로 마주하며 만끽했다.


“후훗~ 나 이러려고 잘못 내렸나 보다.”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다 정자에서 숨을 고르는데, 환경정화 일을 하시던 두 분도 잠시 쉼을 취하려 정자로 오셨다.


“커피 한 잔 할랍니까?”


아저씨가 보온병에서 따라주신 설탕 커피. 땀으로 지친 내 몸에 단물이 퍼졌다.


그리고는 사진도 찍어주시겠다며 포즈를 권하셨다. 문제는 사진에서 내 얼굴은 콩알만 하고, 뒤에 산과 바다가 화면의 주인공으로 가득했다는 것.

(아저씨, 제 얼굴은 어디 갔나요? ㅎㅎ)


돌아서는 길에 내 손에 쥐어주신 건 다름아닌 ‘크리스마스 지팡이사탕‘


평소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나이기에 더없이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그렇게 잘못 내린 섬에서 나는 여러 사람의 호의를 입고, 예상치 못한 시간을 선물처럼 받았다. 모두가 사소한 듯 보였지만, 그날의 작은 선물들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채워주었다.


섬을 여행했다기보다 사람을 여행한 기분이었다.


1년 뒤, 다시 연화도를 향하던 날. 티켓을 내고 승선하려던 찰나, 그때 나를 도와주셨던 관계자분을 다시 만났다. 우리는 서로를 보자마자 “어!!!”를 외쳤다. 인연이 이렇게 다시 이어지다니.


옆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선장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그런 게 다 여행이지요. 인생이 다 여행길 아닙니까? 이 길로 가도 여행, 저 길로 가도 여행.”


그 순간, 얼마 전 읽었던 나태주 시인의 글귀가 떠올랐다.
“실수 자체도 그냥 인생입니다. 이불킥을 하고 싶은 실수는 반드시 그 뒤에 더 좋은 걸 가져다줍니다.”


삶도 그렇다. 우리가 미처 예상치 못한 우회로에서 뜻밖의 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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