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음과 완벽함 사이에서 발견한 진심의 무게
"엉엉엉. 왜 못 와…."
초등 4학년 딸아이에게 학예발표회에 아빠만 간다고 말했을 뿐인데,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울음이 터졌다.
“아니, 아무도 안 가는 게 아니라 엄마 대신 아빠가—”
“안 돼!!! 둘 다 와야 해!!!”
결국 나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내일 회사에 다시 말해보겠다며 달랬다. 솔직히 말하면, 분교생의 무대는 몇 분도 되지 않고, 업무 조율도 까다로워서... 가고 싶은 마음보다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 그런 마음은 사치였다.
평소엔 부탁도 잘 못하는 나지만 동료에게 사정을 말했고, 다행히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딸아이는 한껏 들떠 말했다.
“꽃다발 꼭 챙겨오고, 킨더조이도 같이 주면 좋겠다~!”
귀여운 녀석.
학예발표회가 시작되었다.
병설유치원 꼬맹이들부터 분교 아이들까지 서툴지만 사랑스러운 무대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저학년 아이들은 혼자 무대를 이끌지 못해 선생님과 함께 올라 악보를 읊조리며 연주했고, 학부모들은 모두 눈썹은 내려가고 입꼬리는 올라간 얼굴로 그 서투름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서툴러도 귀여운 존재’라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들.
이어 화이트의 <네모의 꿈> 합창 공연.
둥근 세상에서 온통 네모를 강요받는 현실을 노래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묘하게 마음이 아릿해졌다.
마지막 곡으로는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란다.
신해철님 생각에 눈물이 날까 했지만 음정 하나 맞지 않는 아이들의 열창에 대번에 웃음이 터졌다.
이틀 뒤엔 딸아이의 시립소년소녀합창단 정기공연이 있었다.
연주회를 앞두고 아이들은 주 3회, 밤 9시까지 연습을 했다. 단톡방에는 연일 연습 영상, 무대 배치도, 파트 조정 메시지가 올라왔다.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 딸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린 애들에게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하지만 막상 공연 당일 펼쳐진 무대는 정말 “프로”였다.
수화를 곁들인 동작, 덩굴을 표현하는 디테일한 안무, 무대 구성과 의상, 광복 80주년을 기리는 편곡까지.
‘내가 이 무대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구나.’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였는지 무대 위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공연 후 지도자 선생님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시간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너네들 진짜 멋지더라.
이 무대는 이렇게 좋았고, 저 무대는 이렇게 감동이었고….”
말하면 할수록 가슴이 이상하게 벅차올랐다.
나는 문화예술 도시에서 살고 있어 공연을 많이 접하는 편이다.
어떤 공연은 머리가 반응하기 전에 가슴부터 흔들려 눈물이 먼저 터지고, 어떤 공연은 “이건 무슨 의도지?” 하며 해석이 앞서 머리가 바빠질 때도 있다.
그래서 늘 다짐한다.
“판단하지 말고, 그냥 즐기자.”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들의 두 공연은 서툴러도 완벽해도, 결국 같은 온도로 내 마음에 닿았다.
그 온도의 이름은 ‘진심’이었다.
“저 동작 하나를 위해 아이들이 얼마나 수십 번, 수백 번 연습했을까.”
“저 표정, 저 집중… 저건 진심을 다해 몰입한 얼굴이구나.”
“이 큰 무대 앞에서 얼마나 많은 떨림을 견뎌냈을까.”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나는 무대 위의 기술보다 무대 뒤의 서사가 먼저 보였다.
늦은 밤까지 아이들을 붙든 선생님들의 노고,
지친 얼굴로 돌아오던 아이.
친구들과 응원하며 버텼을 시간들.
작은 몸으로도 책임감 있게 자리를 지킨 마음들.
예술은 무대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었다.
무대 뒤에서 흘린 땀, 떨림, 진심이 함께 만드는 것이었다.
학예회의 엇박도,
합창단의 완벽한 화음도
결국 나를 울린 건 ‘기술’이 아니라 아이들이 무대 위에 올려놓은 마음의 온도였다.
그리고 그걸
아이들이 다시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