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원은 천재 같은 아이만 가는 곳인 줄 알았다

딸아이의 입학식에서 만난, 지금 시대의 영재

by 감격발전소

지난 주말, 딸아이가 영재교육원에 입학했다.


나는 아직도 어딘가 옛날 사람인지 ‘영재’라고 하면 지능이 아주 높은, 탁월한 사람을 떠올린다. 내 눈엔 충분히 똘똘하고 영특한 아이지만, 그래도 ‘천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영재교육원은 우리 아이와는 거리가 있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평소 따르던 책육아 선배가 영재교육원의 교육 수준이 참 좋다며 한 번쯤은 꼭 도전해보라고 여러 번 권했다. 초등 고학년이 되며 자기 의사가 또렷해진 아이에게 이걸 어떻게 말해볼까 고민했는데, 의외로 기회는 쉽게 찾아왔다. 같은 학교 언니의 친구가 영재교육원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가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이다.


물 들어온 김에 노를 저었다. 아이의 흥미가 살아난 순간, 그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전형을 알아보고, 공부 방법도 찾아봤지만 막상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수도권에서는 대비 수업까지 따로 있다지만 그렇게까지 하면 아이의 의욕이 꺾일 것 같기도 했고, 솔직히 나도 조금은 번거로웠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문제집 하나로 준비를 시작했다.


문제를 풀어보니, 쉽기도 하면서 쉽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고민해야 풀리는 문제들을 아이는 몇 개를 술술 풀어내는 걸 보고 괜히 혼자 속으로 웃었다.(얘… 진짜 영재 맞는 건가?)


시험 당일, 아이는 긴장했는지 코피까지 흘리며 시험을 봤고 다행히 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4개월 후, 드디어 입학식이 열렸다.


수백 명의 아이들과 부모들,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마지막 순서는 아이들의 소감 발표였다. 초등 5, 6학년과 중학생들. 그 짧은 소감들이 어찌나 귀엽고 진지하던지.


어떤 아이는

“합격해서 너무 기쁩니다” 대신
“당선되어서 기쁩니다”라고 말했고,


또 어떤 아이는

“우리 모두 자기 수준에 맞는 시험을 보고 들어왔다”는 어른 같은 말로 시작하더니

“이 지역에서 가장 빛나는 아이들이 되자”는 멋진 다짐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나이 제한 때문에 이제 마지막 영재원일 것 같다며 아쉬워하는 아이, 다른 과목에서 떨어졌다가 다시 도전해 합격한 아이, 친구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까지.


그리고 한 아이는 “친애하는 학생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어딘가 정치인 같은 멘트로 또 한 번 웃음을 자아냈다.


귀여움과 진지함이 뒤섞인 그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사랑과 함께 선생님에 대한 감사도 전했다.

“선생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울 것 같지만 참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괜히 나까지 마음이 찡해졌다.


이어진 원장님의 강의에서 내가 알고 있던 ‘영재’의 정의가 조금씩 흔들렸다.

예전에는 ‘지능이 높은 사람’을 영재라 했다면, 이제는 지식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협력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영재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똑똑한 영재는 AI로 대체될 수 있지만,
따뜻한 심장으로 질문을 던지는 영재는 세상을 바꿉니다.

영재교육원은 성적을 올리는 곳이 아니라 아이의 질문이 살아나는 곳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내 하루가 떠올랐다.


나는 직장에서 챗GPT와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많은 업무를 처리한다. 빠르고, 정확하고, 때로는 놀라울 만큼 완벽하다. 그래서 문득 ‘정말 우리는 AI에 대체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동료들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대학교 교수님들은 언젠가 AI가 세상을 제패할 날을 대비해 꼭 존댓말로 질문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혹시 지금 AI와 반말로 대화하고 있다면, 너무 늦기 전에 존댓말로 바꾸라고.


그런데 그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답을 잘 찾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앞으로 더 중요한 시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래서 바란다.

우리 아이가 정답을 잘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으로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그 질문으로
자기 삶을,
그리고 이 세상을
조금 더 넓히는 사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