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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Mar 10. 2024

(독서)병원의 사생활

김정욱

우리 엄마 생명의 은인, 엄마 경막외혈종 집도의로 엄마 생명을 구해주신 가천 길 병원 신경외과 김정욱 교수님이 수년 전 쓴 책을 동생과 간병을 교대한 주말동안 읽었다. 변태(?)스러울 정도로 강인하게 자신을 고통 끝으로 밀어붙여서 해내고자 마는 집념, 의지, 투지 뭐 그런게 행간에 베여있고 심지어 예술적 재능까지 가지신 분. 


살면서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생명을 구하는 의사, 촌각을 다투는 시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서 환자를 살리는, 메디컬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진실된 의사를 현실에서 봤다. 그간 축척된 의사 경험 데이터 중에서도 매우 유니크한 극단값이었다. 


그렇지만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신경외과 교수님은 앞으로 다시는 안 만나야 한다. 한번으로 족하다. 


그런데 이 교수님은 글도 이렇게 잘 쓰다니. 

개인적으로 마흔 전후로 보이는 저자의 치열했던 삶과 내 삶을 돌이켜보며 나는 얼마나 헐렁하게 살았나 이런 생각도 많이 들게 함. 책을 읽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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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막외혈종. 뇌를 사고 있는 바깥막(경막)과 두개골 사이에 피가 고이는 것이기에 혈종이 뇌에 주는 화학적인 영향은 없지만 갑자기 양이 늘어서 뇌를 밀어내면 멀쩡하던 환자가 급격히 나빠진다. 뇌가 영구적 손상을 입기 전에 얼른 수술로 혈종을 제거해주면 의식이 돌아오지만, 그 시기를 놓치면 환자는 회복의 전환점을 넘어선다. 아이는 안타깝게도 그 시간을 넘긴 채 병원에 도착했다. 양쪽 눈의 동공은 이미 모두 열려있었다. 뇌압 상승과 뇌 이탈이 치명적일 만큼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어느날 응급실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갑자기 끼어드는 죽음은 곧 제자리를 찾아내 빠르고 넓게 우리 삶 속에 그 뿌리를 내린다. 어던 것이 '산' 것이고 어떤 것이 '죽은' 것인가. 


여러 원인으로 인해 내 몸의 세포가 죽지 않고 끊임없이 증식하면 암 덩어리가 된다. 


머리에 고인 피는 한동안 호스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올테고, 적당히 배액되고 나면 그 관을 제거할 것이다. 


뇌의 병은 다른 어떤 부위보다 각 장기의 기능을 가장 빨리 떨어뜨린다. 그래서 뇌 환자들은 폐렴이나 뇌졸중, 심근경색, 신장 질환 등 다양한 전신 합병증을 자주 동반하게 된다. 이 경우 뇌 치료가 아무리 잘 되어도 이미 손상된 장기의 기능들을 회복하는 데는 아주 긴 시간이 걸린다. 


매일 네 개의 팔다리와 다섯개의 장에 명령을 내려야 하는 뇌 역시 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일어날 가능성이 5퍼센트도 되지 않을 무서운 결과들을 줄줄 읊기 시작한다.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갖는 목표는 그 환자가 호전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환자가 '어느 선'을 넘지 않도록 막는 것이 목표다. 일단 살려놔야 가족도 다시 만나고 재활도 할 수 잇는 것이다. 


죽음은 삶만큼이나 어렵다. 마찬가지로 삶 역시 죽음만큼이나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니 충분히 살아야 한다. 열심히 사는 것은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것과 다르다. 끊어지지 않은 생의 밧줄을 누구보다 더 강렬하게 움켜쥐고 잇다.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 


레지던트 4년. 짧지만 긴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의사는 응급상황을 능숙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베테랑으로 성장해 있다. 


아무 잘못한 게 없는데 찾아오는 사고와 질병, 고통과 손실.


루틴을 만들려고 낑낑대던 1년차였다. 팽이는 자꾸 쳐야 돌아간다. 아 물론 내 팽이는 내가 쳐야지 남이 치면 아프다. 


살아있는 사람의 뇌. 


항해일지다. 국가로부터 의료 허가를 바다로 출항한 뒤 선언이 되어 배를 닦는 일부터 시작해 1년 뒤 정식 선원이 된 이후 신경외과라는 해협을 4년간 항해하며 기록한 일지. 그저 지나갈 뿐인 좁은 해협인줄 알았던 그 곳은 사실 어마어마한 대해였고, 나는 뭍에서는 한 번도 본적 없는 풍랑과 파도를 만나야 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자연 앞에서 그저 외롭지 않기만을 바랐는데 돌이켜보니 나는 내 배의 선장일 뿐 수많은 이가 함께 배를 몰아주고 있었다. 


내가 매일 만지는 뇌세포의 두께는 1마이크로미터, 6세면 그 성장이 거의 완료되며 머리를 다치거나 뇌출혈이나 뇌경색 따위를 겪지 않는다면 뇌세포는 우리가 눈감을 때 함께 생을 마감한다. 그렇지만 그 세포는 그렇게 그저 누군가의 머리 안에서 잠시 살다 가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추억을 기억중추에 저장하고 감정을 받아들이며, 행동을 지시하는 제 역할을 다하고 가는 것이다. 막 태어나 머릿속에 자리를 잡아갈 때 부터 함께 해온 이 녀석은 어쩌면 내가 기억해내지 못한 많은 것을 다 기억하고 있을 지 모른다. 이 모든 감각을 기억한 채 이제 이 뇌세포는 운동중추에 전기 신호를 전달하려 한다. 그 신호가 어디로 어떻게 향할지 아직 모른다. 그렇지만 이 정도 시간을 견뎌낸 신호라면, 이 정도 마음을 기억하고 있는 신호라면 어디로 향하든 결국 가장 나다운 곳으로 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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