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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Apr 26. 2024

(독서)노랑의 미로

이문영

디테일이 확보되면 뻔한 얘기는 없다. 


작가가 한 강연에서 이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으레 짐작하는 것들, 뻔히 보이는 것 외에 한걸음 더 들어가 핍진함으로 이뤄진 또다른 세계를 텍스트로 창조하려면 '디테일'을 획득해야 하고, 그 디테일을 찾고 배열하는 것에 훈련이 된 사람들이 바로 기자들이다. 그러니까 확보된 디테일로 뻔하지 않는 이야기를, 세상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를 기워낼 수 있는 존재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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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무너지면 다시 조립되지 않는 삶들이 있었다. 가난하다고 반드시 불안과 공포가 동거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가난을 앞세워 부실하게 쌓고 순식간에 내려앉는 일들이 불안과 공포를 조성했다.     

 

퀴퀴한 냄새가 삶의 냄새.      


증상이 오면 온몸이 뒤틀렸고 입은 거품을 물었고 눈동자는 사방으로 돌아갔다. 얼굴에선 붉은 반점이 솟았고 코에선 피가 터졌다.      


나는 사실과 사실로 믿어야 하는 것 사이에서 분열하고 있었다.      


소주로 수면제 백 알을 털어먹고 한센병 치료제를 모아삼키고 한강 다리 아래로 투신하고 달리는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고 기차 문밖으로 몸을 던지고. 


사건과 일상엔 위계가 부여된다. 체제와 제도와 인식은 그들에게 동자동 외에 머물곳을 허락하지 않았다. 신이 거대한 핀셋으로 집어 올린 것 처럼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방 한 칸으로 찾아들어갔다. 극빈의 이동거리는 직선거리 100미터를 넘지 못했다. 100미터 짜리 밧줄에 허리를 묶은 것처럼 동자동 안에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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