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규
선 굵고 에너지 넘치고 강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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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세계의 지하실을 목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상적인 구타와 욕설, 고문이나 다를 바 없는 가혹행위, 부족한 수면과 부실한 식사, 끔찍한 위생, 겨울의 혹한과 여름의 무더위, 황당해서 웃음도 안나오는 정신교육 같은 것, 오히려 내 기록의 훌륭한 재료가 되어 주었다. 후임을 구타했다는 이유로 헌병대 영창으로 끌려가는 병사들을 연병장에 세워두고 자신의 구타 금지 지시를 거역했다고 노발대발하며 군홧발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짓밟는 대대장, 병사들의 체육대회용으로 나온 음료수와 과자를 빼돌리는 인사과정, 병사들의 치료용으로 나온 항생제 중에 값나가는 것드만 골라 어딘가에 팔아먹은 의무관, 병사들을 동원해 부대 뒷산의 계곡에다 수영장과 연회장을 만들고 주말마다 지인들을 초대해 병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밤새도록 파티를 벌이는 연대장, 안전장비 하나 없이 그 수영장을 짓다가 추락해 무릎이 부러진 병사의 모습.
그러나 어느 무렵 내가 연극의 관객이 아니라 무대 위의 배우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당신과 내가 같은 고통을 겪었음을 서로 이해함으로써 고통이 남긴 흉터의 크기를 줄일 수는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바쁘고 정신없는 날들이 회전목마처럼 돌아갔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즘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포기할 줄 모르는 호기심으로 세상과의 접촉면을 그대로 껴안고 부대끼며 사는 '너'를 통해 조심스럽게 감정이
세련된 착취 기제들 속에서 능력주의는 어떻게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지, 왜 자본계급에 더 주목해야 하는지, - 디지털 시대에 이런 전통적인 자본과 노동의 개념, 관계성이 뒤집히고 있다. 계급이 부재하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존재한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인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