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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Dec 31. 2023

책 쓰기, 진도가 안나가는 이유&극복방법

집필 기록



1. 개요, 뼈대, 설계도를 잡지 않고 바로 써서



설계도 없이 마구잡이로 지은 집을 상상해보자. 주춧돌도 기둥도 없이 지붕이며 서까래며 문짝부터 막 퍼나른다. 그 집은 필시 망한다. 순서는 뒤죽박죽 엉키고, 훌륭한 목수가 떠듬떠듬 짓더라도 온갖 시행착오를 겪는다. 3개월이면 지을 집을 짓는데 1년이 걸린다. 목수는 탈진하거나 집짓기를 포기할 것이다. 



그래서 개요를 짜는 것, 전체를 대략적으로 구성부터 하는 건 중요하다. 설계도가 탄탄하게 짜여져 있으면 글은 속도감 있게 나아간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요컨대 서론, 본론, 결론의 흐름 속에서 각 단계에 무엇을 넣을지 러프하게 단어들을 채집해 넣어보자. 그 낱말들은 자체가 사유를 풍요롭게 속도감 있게 이끌 것이다. 다채로운 어휘들을 많이 수집해 각각 서론, 본론, 결론에 넣는다. 얼굴, 몸통, 팔, 다리를 합체해서 로봇을 만드는 것과 같다. 물론 70~80%정도의 개요를 다 짠다음 쓰기를 시작해도 상관없다. 다만 개요의 완성도는 글의 완결성을 결정지을 것이다. 



2. 스타일, 꾸밈, 장식에 너무 집착해서


나쁜 습관이다. 첫문단의 수식어나 단문 치기, 고치기에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다 시간이 다 가고, 두번째 문단, 세번째 문단으로 진도를 못 뺀다. 우리의 목표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아름답고 현란하게 치장된 얼굴만 있을 뿐이다. 팔, 몸통, 다리는 없이. 1번과도 이어지는 문제인데, 주로 설계도를 그리지 않았을 때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이건 글을 전개해나가는 힘이 딸릴 때, 백지는 채워야겠고, 글은 써야할때 작가가 보이는 안타까운 방어기제다. 어렵사리 전개가 될 수가 있으나 글쓰기의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  



3. 사유, 사색, 생각이 깊지 않아서


어렸을 때 글짓기 샘이 강조했던 말이 있다. 모든 글은 '사실'과 '느낌/생각'으로 구성된다고. 예컨대 독후감에서 줄거리 요약이 사실이라면, 느낌/생각은 나만의 개성이 담긴 감상평이다. 이 감상평이 깊이 있고, 공감되며, 설득력있고, 타당성있고, 인사이트도 있고, 혜안도 있어야 그 글은 개성을 지닌다.  



그 느낌/생각이 구축이 되고 자기완결성을 지녀야 글이 진도가 나간다. 이걸 구축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행간 속에 하염없이 머물며 느낌/생각을 억지로 짜내면, 독자들이 알아본다. 물론 느낌/생각도 개요단계에서 담보가 된 상태에서 글쓰기에서 시작돼야 한다. 그냥 줄거리 정도만 정리된 상태에서 이걸 뽑기 시작하면, 농축된 사유, 깊이있는 감상평으로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1~3은 모두 다 1에 대한 주석 같기도. 단 세줄을 쓰더라도 설계도,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4. 첫문장에 너무 집착해서


첫문장, 당연히 매력적으로 쓰면 좋다. 그런데 거기에 집착하다보면 글 전체로 나아가지 못한다. 개요를 짤 때부터 처음부터 안짜도 상관없다. 얼굴-몸통-팔-다리 순으로 글이 전개된다고 쳤을 때 다리에 넣을 키워드부터 짜고 나머지를 채워넣어도 된다. 배열은 나중에 하면 된다. 쓸때도 같다. 머릿속에 그려진 구성과 키워드를 생각하면서 다리부터 채워넣어도 상관없다. 나중에 순서는 요리조리 바꿔보면 된다.



1이 우선 먼저다. 개요를 짠다. 그런 다음 그 개요의 구성 속 단어들이 이끄는 문장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쭈우욱 검열 없이 글을 술술 쓰고, 그 다음부터 고쳐나가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첫문장이 중요한건 최종 퇴고 단계다. 



지금 이 글도 그렇게 성큼성큼 쓰고 있다. 그렇게 해서 여러챕터를 일단 1차로 완성한다음 다시 처음부터 하나씩 하나씩 고쳐나가는 것이 더 능률적이다. 다른 챕터의 쪽글과의 유기적 관계도 생각하면서 글을 고칠 수 있다. 다른 챕터에서 쓴 글들이 또다른 챕터의 글쓰기에 유용한 재료와 단서, 아이디어,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어서다. 첫문장도 마찬가지다.



5. 집중을 못해서, 다른 것에 시간을 빼앗겨서


단언컨대 인터넷이 없고 스마트폰이 없고 인스타그램등 SNS를 덜 쓰면 덜 쓸수록 더 좋은 글, 더 멋진 글, 더 훌륭한 책이 나올 것이다. 1~4에 걸치는 일련의 과정은 그것 자체로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다. 다른 것과 함께 할 수 없다. 



그런데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류는 멀티플레이에 익숙하고, 자꾸 무언가를 같이 하려고 한다. 말초적인 자극에 반응하는 것에 익숙해있다. 톡 알람, 문자 메시지, SNS의 좋아요 버튼, 누군가의 새 피드, 이런 것들은 지속적으로 집중력을 갉아먹을 것이다. 이리저리 부유하는 하이퍼링크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사유방식대로 뇌가 후퇴했을지도. 하지만 글줄이 있고, 구성이 중요하고, 깊이 찌르는 주제가 정해져있는 책은 반대다. 여기저기 왔다갔다 산만한 사유로는 절대 책을 쓸 수 없다.  




집중은 사실상 하나의 '희소한 자원'과도 같다. 죽을 때까지 책상에 앉아, 몰입해서 무언갈 사유하고 쓰고, 글을 짓는 시간은 한정돼 있다. 결코 무한하지 않다. 시간으로 따지면 1만 시간은 될까. 하나의 지점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글이라면 더더욱 많은 시간을 요할텐데 말이다. 그러니까 시간은 돈도 아니고, 돈보다 더 소중하고 희소한 자원이다.  



그러니까 폰을 크자. SNS도 중단하자. 지금까지 충분히 그런것들에 시간을 낭비했으니 이제 낭비하지 말고, Flow 속으로 들어가자. 이렇게 건강한 눈, 건강한 허리, 건강한 어깨로 글쓸 시간은 한정돼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언젠간 이 시간도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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