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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Dec 31. 2023

책 쓰기, 초보저자의 어려움

집필 기록


생애 첫 단행본을 쓰고 있는 초보저자로서 사무치게 느끼는 난관, 장벽, 장애물에 대해서 써본다. 이 허들에 가로막혀 집필이 지지부진하다. 이 유령을 넘어서서지 못하면 앞으로 단행본을 쓰는 작가로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까 꼭 극복해야 하는 것들이다. 좀 더 명료히하기 위해 정리해본다. 



1. 한 주제로 최소 600매 분량의 사유를 축적한 적 없음


가장 크게 느끼는 취약지점이다. 600매 분량을 쓰려면 최소 20매 분량의 한 챕터로 30개 목차를 잘게 쪼개 쓸 정도로 할 말이 많아야 한다. 그러니까 '특정 주제'에 대해서 농축되고 숙성된 재료가 많아야 이 정도 분량이 소화가 된다. 그 특정 주제는 당연히 깊게 찌르는 주제여야할테고.


잡다한 것에 탐구심이 많고, 기자생활 동안 증권, 금융, 산업, 정치 등 여러부서를 거치면서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글쓰기를 해왔지만, 그 부서에서 하나의 분야, 하나의 쟁점이 되는 소주제로 600매 분량의 기획기사를 써본적은 없다. 짧게는 4매, 길어야 10매 분량의 스트 기사들만, 거의 매일 다른 주제로 10년간 써왔다. 그래서 이 분량이 낯설고 무섭다.  


그러니까 기획을 할 때도 한 주제를 잡으면 끝장을 본다는 생각으로. 600매 정도는 진액 같이 농축된 사유가 있어야 단행본 글쓰기로 나아갈 수 있다. 


 

2. 글 구조, 틀, 전개방식의 익숙지 않음


분량의 문제와도 이어지는 이슈다. 지금까지 기자로서 써온 글의 유형은 스트, 박스, 인터뷰, 기자수첩 정도다. 이런 형태의 글은 그 구조와 뼈대를 거의 몸으로 인식한다. 눈 감고도 그릴 수 있는 그림 처럼 익숙하고, 훈련돼있다. 


하지만 이외에 다른 형식의 글- 에세이, 서평, 이야기 등은 그 구조, 뼈대, 흐름의 틀이 매우 낯설다. 마치 10년을 나무만 요렇게 조롷게 그려온 사람에게, 산을 그리라고 했을 때 느껴지는 망연함과 어려움이랄까. 어떻게 경험으로 시작해 팩트를 녹이고 글을 마무리 짓는지. 전개방식은 어때야 하는지. 어디에 흙을 파고 기둥을 심고 지붕을 씌울지 이런 모양의 집을 지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렵다.  



3. 자기노출의 용기 없음. 부담감, 쑥쓰러움, 부끄러움, 수줍음, 창피함


글쓰기는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출판시장에 나오는 책이라는 기성품에 담길 내용이라고 하면, 그 부담감이 가중된다. 에세이라고 하면 얼마큼은 내 내밀한 경험을 까발려야 한다. 쑥쓰러움 수줍음 박사학위 보유자로서 이게 너무 공포에 가깝게 부끄럽다. 종이로 인쇄되어 나오는 글이여서, 독자가 아닌 내 지인이 읽었을 때 창피할까봐. 별거 아닌 것 처럼 느껴지는데 나의 개인적 이야기들을 공개하는 게 이토록 어려울 줄은. 



4. 책에 대한 엄숙주의


독서광일수록, 책을 사랑하면 사랑할 수록 더 해당되는 이유지 싶다. 매번 SNS를 통해 허술한 책, 구조가 안좋은 책을 모두까기 하는 까다로운 독자였는데, 이제 저자가 되려고 하니 더 무섭고 어렵고 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좋은 책에 대한 기준은 높은데, 막상 저자의 입장이 돼 좋은 책을 쓰려고 하니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가볍게 술술 풀어 쓰는 방식의 글들도 많은데 괜히 책이 된다고 하니 더 부담감이 짓누르게 되고, 그 부담감 탓에 글쓰기에 검열이나 판단, 평가가 따라붙다보니 술술 쓰는게 잘안된다. 술술 쓰지 못하면 600매를 감당할 수 없다. 다작을 할 수도 없다.  



5. 하드웨어의 문제


기사는 아래 한글에 초고를 써서 기사입력기에 옮기는 형태로 쓰고. 통합시스템이나 집배신을 통해 '완성품'을 미리보기할 수 있다. 텍스트가 어떻게 노출되는지, 그 형식은 꽤 중요하다. 폰트와 자간, 행간과 여백까지 빠짐없이 중요하다. '이런 형식의 글은 이렇게 완성품이 시각화되겠다'로 보여지는 게 있었다. 그런데 책 작업은 아직 적절한 하드웨어를 못찾고 있어서인지. (찾아봐야겠다) 도통 이 텍스트들이 어떻게 종이에 달라붙어 어떻게 보여질지가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렵다. 



6. 인용 배제, 취재, 인터뷰 아닌 내 콘텐츠 쓰기의 어려움


항상 타인이 가진 콘텐츠, 말, 정보를 취재해서 그 재료들로 글을 구축하는 기사 글쓰기만 해오다보니, 나만의 사유, 내 개성과 내 고유의 스토리를 글로 쓰는데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기사 글쓰기에서 인용이 비교적 자유로운 반면, 출판되는 글은 표절에 민감해 직접인용부터가 다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자신만의 사유를 일정 분량이상 쓸 수 있는, 축적된 사유가 있어야 하고 그걸 글로 구조화하는 작업을 해내야만 한다. 기자일 수록 그래서 단행본 글쓰기를 쓰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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