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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은 콩밭에 Dec 30. 2023

(독서)헨리 키신저의 세계질서

헨리키신저

읽다가 어려워서 다 못읽었는데 반납일 다가와서 반납. 윌리엄 맥닐 시리즈를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될 것 같은 책임. 


헨리 키신저 책 중엔 중국 이야기 >> 세계질서 >> 외교 >>리더십 순으로 쉬운 것 같다. 번역상의 문제도 있는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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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은 독특한 도덕적 인식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실용적 적응을 의미했다. 이 조약은 서로의 국내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전반적인 세력 균형을 통해 서로의 야심을 억제하는 독립적인 국가들로 이루어진 체계에 의존했다. 유럽의 다툼에서는 단이한 진실이나 보편적인 규칙을 주장하는 쪽이 승리한 적이 없었다.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할 수단이 없고 한 지역의 힘을 다른 지역의 힘과 비교하여 평가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각 지역은 자신의 질서가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질서들은 '야만적'이라고 규정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유럽의 반대편에 있는 중국은 자체적인 위계질서와 이론적으로 보편적인 질서 개념의 중심지였다. 황제는 정치적 문화적 위계질서의 정점에 위치한 인물로, 특별하고 만능일 뿐 아니라 세계의 중심인 중국의 수도로부터 나머지 모든 인간에게까지 빛을 발하는 인물이었다.


미국의 인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가치를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 시기 동안 대체로 그들이 유지하려 한 국제사회는 미국식이 합의를 반영했다.


국가 독립, 주권 국가, 국가 이익, 불간섭의 원칙들은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얻어 내는 투쟁 과정과 이후 신생국 보호를 위한 투쟁과정에서 식민 본국에 대한 효과적인 논거임이 입증되었다 현대의 글로벌 베스트팔렌 체제는 개방무역과 안정된 국제 금융 시스템을 조성하고 공동의 국제 분쟁 해결 원칙을 수립하며 전쟁 발발 시 전쟁 행동을 제한하기 위한 국제법 및 조직 체계로 이루어진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세계의 혼란스러운 특징을 감소시키려고 애써 왔다.


다원주의는 유럽의 질서를 규정하는 특징이 되었다. 유럽이라는 개념은 지리적인 명칭으로, 기독교 및 왕실 사회의 표현물로 혹은 지식 집단의 계몽과 근대성의 중심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유럽은 어떤 단위가 새로운 개념의 정치적 정당성이나 국제 질서를 실험하면서 빈번하게 스스로를 다스려나갔는가에 따라 원칙들을 수정해 나갔다.


하지만 오늘날 '규칙을 기반으로 한' 이 체계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체계에 속한 국가들이 '각자 자기 몫을 해야 한다', '21세기의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공동 체계에서 책임감 있는 이해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자주 경고받는다는 사실은 그 체계에 대한 공유된 정의가 없거나 공정한 기여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의미한다. 규칙을 처음 정할 때 크게 관여하지 못한 비서양권 지역들은 현재 형태의 타당성에 의문을 ㅈ기하면서 자신들이 그 규칙을 수정하겠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상업적, 전략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기를 바라며 해양 탐험을 후원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함선들은 인도로 향했고, 스페인과 영국의 함선들은 서반구로 나아갔다. 3세기에 걸쳐 유럽이 세계 문제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 때 이후로 과거에는 지역적 문제였던 국제 관계가 지리적으로 전 세계가 포함되는 활동이 되었다.


존재하지도 몰랐던 지역의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그들은 제국과 교황제로 이루어진 중세의 우주론에 어떻게 적응했을까. 1550~1551년에 카를 5세는 스페인의 도시 바야돌리드에 신학자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그 신학자들은 서반구에 사는 사람들이 영혼이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 신학적 결론은 정복과 개종을 정당화하는 슬로건이기도 했다. 유럽인들은 재산을 늘리는 동시에 자신들의 양심을 달랠 수 있었다. 영토 지배를 위한 전 세계적인경쟁은 국제 질서의 본질을 바꾸어 놓았다. 유럽의 관점은 다양한 유럽 국가들의 잇단 식민지 정복 시도가 지구 대부분의 지역에 이르고 세계 질서 개념이 유럽에서 작동하는 세력 균형과 합쳐질 때까지 확대되었다.


국가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추상적이고 영원한 독립체라고 생각했다. 국가의 해동지침은 계산할 수 있는 원칙을 따르는 국익이었다. 이는 나중에 국가이성으로 알려졌다. 


정치가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경험과 열망 간의 간극을 메우면서 가능성의 경계에선에서 활동해야 한다. 


전쟁은 보편성이나 종파 간의 단결을 외치는 가식적인 주장들을 산산조각냈다. 가톨릭 대 신교의 투쟁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프랑스가 가톨릭계인 신성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참전한 뒤에는 특히 모두가 자기 이익만을 위해 동맹 관계를 바꿔 버리는 전쟁이 되어버렸다. 모든 관계자는 전재 ㅇ중에 한번씩은 '본래의' 동맹국에 버림받았다. 


갖고 있는 힘이 어느정도인지, 어떤 국내 체제를 갖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주권 국가들은 본질적으로 평등하다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한 권력 중심지만이 완벽히 정당화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베스트팔렌 개념은 다양성을 체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각 사회를 현실로 인정하면서 다양한 다수의 사회들을 공동의 질서 추구 작업에 끌어들였다. 20세기 중반 무렵 이 국제체계는 모든 대륙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체제는 현재 국제 질서 기반으로 남앙 ㅣㅆ다.


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에서 수립된 구조물은 합의된 규칙과 제한을 기초로 국제 질서를 제도화하고 지배적인 한 국가가 아니라 다수의 강대국들을 기초로 해서 국제 질서를 세우려던 최초의 시도였음을 보여주었다.


19세기 영국의 정치가 파머스턴 경은 이 개념의 기본 원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이익만이 영원할 뿜이며 그 이익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는 권력의 부재로 인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그 견딜 수 없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국가에 남기면 국가는 국가내에 사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홉스의 분석에 등장한 이 사회계약은 국경선 너머까지는 적용되지 않았다. 질서를 강요하는, 국가를 초월하는 주권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왕은 세습을 근거로 자율적인 권한을 요구하는 봉건 영주들을 통해 국가를 통치했다. 루이 14세는 자신에게 의존하는 왕실 관료들을 통해 나라를 다스렸다. 그는 귀족 출신의 조신들을 격하시키는 대신 관료들에게 작위를 내렸다. 세습공작이자 문인이던 생시몽의 회고록. '그는 자신이 한 국가의 장관을 그의 가족과 함께 맨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고 극심한 불만감에 귀족을 짓밟을 수는 있어도 귀족이나 귀족의 혈통을 완전히 말살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


18세기 유럽 질서를 이끌어 간 정치인들은 명예나 의무 같은 무형의 개념들을 동일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기본 원칙에 동의하는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살롱의 단골이고 서로의 수도에서 낭만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단일한 엘리트 사회를 대표했다. 계몽주의 시대만큼 유럽이 통일되거나 자발적인 적은 없었다.


백과사전은 인간이 중심적인 행위자이자 해설자로서 우주의 수수께끼를 알기 쉽게 풀어냈음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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