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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우wow Jun 25. 2024

쿠팡 알바를 다녀왔어요

딸과 함께 한 허브업무

“빨리 뛰어가서 곱빼기로 시켜놔 봐.”

“알았어. “

“지금 그게 뛰는 거야? 쓰러지는 거 보여줘?”

“알았어 알았어.”


대학생 자취하는 딸이 겨울방학이라 본가 우리 집에 와 있다.

그러면서도 본인 자취집이 이 추위에 수도라도 터질까 봐 걱정이 태산이다.

집에서는 먹은 거 하나 설거지 하나 안 하지만 본인 집에서는 빨래도 하고 나와있으면 집걱정도 하는 모습을 보니 다 컸구나 싶게 뿌듯하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대학교 합격발표가 나기도 전에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해서 벌써 돈을 제법 모아두었다.

어찌나 알뜰한지 한 번씩 집에 올 때마다 냉장고에 사둔 야채나 창고에 둔 건전지까지 야무지게 챙겨간다.

그 정도는 네가 살 수 있는 거 아니냐 물으면 엄마는 대용량으로 사서 싸게 산 거지 않며 당당하다.

겨울방학이 끝나갈 즈음 아르바이트 하던 카페가 공사에 들어가서 잠깐 일을 못하게 되었다고, 아니 돈을 버는 구멍이 생겼다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 때였다.

“그거 일주일 아르바이트 못한다고 인생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걱정을 해.”

“다달이 들어와야 하는 금액을 계획해 둔 게 있는데 그게 일주일이 펑크 나면 모아둔 돈 끌어다 써야 해서 싫단말이에요.”

“자취방 월세도 아빠가 다 내줘. 용돈도 따로 줘. 뭘 그리 빡빡하게 계획을 해.”

“싫어요. 싫단말이에요.”

징징댄다. 아우 듣기 싫다. 지금 일주일째 저리 한탄을 늘어놓는다.


“그럼 쿠팡 아르바이트라도 가. 엄마 친구 아들이 다녀왔는데 할 만 하대. “

“쿠팡? 엄마가 같이 가줄 거예요.”

“내가? “

잠시 생각해 보니 나도 뭔가를 좀 해야 하긴 했다.

“그래볼까?”


이것저것 검색해 보던 딸이 어플 하나를 깔라고 알려준다.

“이건 뭔데?”

“이걸 깔아야 쿠팡 아르바이트를 신청할 수 있어요.”

딸아이가 하라는 대로 어플을 설치하고 누르라는 대로 눌러댔다.


“못할 것 같은데?”

“갑자기 왜요.”

“안 하던걸 하려니 못하겠어.”

“엄마 혼자 가는 것도 아닌데 왜요. 그냥 해요.”


딸이랑 같이 신청한 거라 안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신청 한 날짜 이틀 전에 문자가 왔다. 승낙 문자다. 이 문자가 와야 일을 할 수 있단다. 하고 싶다고 다 하는 게 아니었구나.


전날.

신분증 챙기고 내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집 근처 마트까지 걸어 나가서 쿠팡 셔틀버스를 타고 가면 되는 거라고 서로 이야기 나누다가 나는 잠을 설쳤다.

내가 아르바이트라니.!

돈을 벌러 간다고 중2아들이 신이 났다. 엄마가 돈 벌어오면 맛있는 거 사준다고 신이 난 것이다. 내가 돈을 벌지 않아도 넌 항상 맛있는 거 먹었잖니.


새벽.

우리는 잠이 덜 깬 상태로 남편의 응원을 들으며 집을 나섰다.

“지금 이게 무슨 일 이래니. 나 한참 잘 시간인데.”

새벽이라 정 졸리네요.”

우리는 아직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시려 몸을 웅크리고 종종걸음으로 겨우 셔틀버스정거장까지 걸어갔다.


버스정거장 의자에 앉아 10분 정도 남은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 신분증 챙겼지?”

“네에?”

갑자기 무슨 이야기냐는 딸아이 대답에 황당하다. 어제 분명 서로 이야기 나눈 부분인데 말이다.

“안 챙겼어?”

“엄마 챙겼어요?”

“당연히 챙겼지.”

우리 딸은 엄마도 안 챙겼길 바라는 마음의 대답을 한다. 엄마도 안 챙겼어야 본인이 욕을 덜 먹을 것 같은가 보다.

하지만 결과는 본인만 신분증이 없다는 사실에 이 엄마는 살짝 기분이 좋았던 걸 알까?

“집으로 가자. 우리 틀렸어. 거기 신분증 없으면 못 들어가.”

“진짜 이대로 집으로 가요?”

“버스 오려면 10분 남았고 우리가 걸어서 집으로 갔다가 오면 15분은 지나버려.”

우리는 몸을 일으켜 집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 엄마는 다시 집에 가서 따뜻한 침대에 몸을 집어넣어 덜 잔 잠을 잘 생각에 기분이 좋은걸 딸아이는 모른다.

본인이 챙기지 못한 신분증에 화가 난 줄로만 알겠지.

“엄마 잠깐만요 PASS 어플 깔면 신분증 된다고 들었어요. “

“유료 아냐?”

난 설마. 아니라고 말해라. 난 집에 가고 싶단 말이다.

내 바람과는 다르게 딸아이는 척척 신분증을 만들어냈다.

‘집으로 다시 가고 싶다. 내 따듯하고 포근한 침대에 나를 뉘어 이 무거운 눈을 중력에 힘으로 내려 깊은 잠을 자고 싶단 말이다.‘


신분증은 완벽했고, 버스는 곧 도착했다.

우리는 그 버스에 첫 번째로 탔고 그다음정거장부터는 익숙하다는 듯 타고 앉는 사람이 보였다.

모두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구나!


거대한 쿠팡 건물에 도착하고 우리는 안전교육을 들었다.

안전교육 듣기 전에 그곳에 맞는 옷도 지급되었는데 생전 이런 옷은 처음이다.

세탁이 된 건지 만 건지 모르겠지만 잘 정돈되어 있는 작업복을 사이즈별로 찾아 입고 안전화라는 신발로 갈아 신어야 했다.


난 아까 신분증 핑계로 집을 갔어야 했다.

이런 낯선 옷과 신발 정말 적응하기 힘들다.

하지만 낯선 옷과 신발로 징징대기엔 이르다.

우리가 하게 될 업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런 하찮은 것으로 징징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다음 신청한 사람들마다의 일하게 되는 업무로 줄을 세웠다.

하지만 스무 명 넘게 서 있는 줄에는 우리의 명단이 없고 딸랑 두 명인 내 딸과 나만 어떤 남자를 따라가면 된다고 했다.


그때 도망갔어야 했다.


우리는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신청했던 것이다.

컨베이에서 밀려오는 박스를 착착 쌓아 거대하게 랩핑 하는 일을 신청해 버렸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건장한 남자들이었다.

내 딸은 174센티 키에  52킬로로 마르고 연약한 아이다. 기립성 저혈압도 있는 아이란말이다.

그런 딸과 무지막지하게 밀려오는 박스들을 상대로 우리는 전투를 벌이고 있다.

컨베이에서 밀려오면 양손으로 그 박스를 잡아 들고 뒤에 지정된 곳으로 들고 가서 쌓고 쌓는다.

내가 든 것이 아주 무거운 것일 수도 있고 운 좋게 가벼울 수도 있다.

딸 걱정에 측은하게 딸을 쳐다볼 시간이 없다. 잠깐 한눈팔면 박스가 우두두 내 발아래로 떨어져 버린다. 떨어지기 전에 모두 잡아채 쌓아야 한다.

시계도 없어 지금이 몇 시인 줄도 모른다.

무조건 해야 한다.


이 추운 겨울에 구슬 같은 땀이 여기저기서 흐르지만 닦을 시간도 물 한잔 마실 시간도 없다.

우리가 박스를 쌓던 시간 바로 옆구간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박스를 포장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저걸 했어야지.

그 공간 반대편에서는 한가로운 포즈로 카트를 끌고 다니며 물건을 담는 업무도 보인다.

저걸 했어야지.


내가 이곳에서 기계가 해내지 못하는 아주 사소한 업무를 이 몸이 부서져라 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 쿠팡 관계자 같은 직원이 지나다닌다. 그 사람은 이런 작업복을 입지 않았고 깔끔한 정장차림이다.

오래전에 나도 저런 일을 한 적이 있다.

공장을 끼고 있는 회사에 깔끔한 사무실에서 편하게 일했다. 가끔 공장으로 찾아가 서류를 전달할 때 내가 저런 표정이었겠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시선처리를 저렇게 했었을 거야. 그냥 기계 보듯이. 반성한다. 이미 늦었다. 난 이미 기계가 되어있고 설움에 복받친다.


'나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힘들면 어쩌지 딸걱정에 나의 설움까지 생각할 시간은 저기서 밀려오는 박스들이 쉽사리 주지 않았다.

확 울어버릴까?

눈에서 큰 망울의 울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에 신호소리가 크게 울렸다.


점심시간이랜다.


우리는 쇼츠업무로 점심시간이 되면 끝나는 것을 신청했다. 다행이다. 밥 먹고 또 하는 일이었음 냅다 도망갔을 거니깐.


우리는 다시 셔틀을 타고 우리 집으로 몸을 향했다.

딸과 나는 셔틀버스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한참 멍하니 창밖만 보다가 셔틀버스가 집 근처 마트에서 내려줬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다가 내가 딸에게 말을 꺼냈다.


“집 근처 칼국수 먹자”

“좋아요”

“그럼 네가 빨리 뛰어가서 곱빼기로 시켜놔 봐.”

“알았어 “

“지금 그게 뛰는 거야? 쓰러지는 거 보여줘?”

나는 지금 배고프다.

2시가 넘었다. 뱃속에서 지금 너 왜 아무것도 안 먹고 뭐 하느냐고 길에 보이는 나뭇잎이라 뜯어먹어버려라 하며 아우성을 친다.

“알았어 알았다고”

평소 착하게 말하는 딸이 본인도 힘이든지 짜증이 섞였다.


우리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곱빼기 칼국수를 주문했다.

점심시간이 끝난 시간이라 식당에 사람이 없다.

후루룩후루룩 우리는 칼국수를 마시듯 먹어치웠다.


나이가 먹으면서 느끼는 건 무슨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가 참 힘들다.

용기 내어 시작했을 땐 그 안에서 과거의 나를 회상하고 반성하는 일이 생긴다.


난 이번일로 두 가지를 생각했다.

새로운 일 도전한 것에 칭찬한다.

아니다 싶을 때 빨리 돌아서자.


일주일 동안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아 쿠팡고통에 몸부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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