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넘어오지 말고 제육볶음!
반으로 갈라진 제육볶음
“절대 내 제육볶음 넘어오지 말아 줘.”
“걱정 마, 너 더 줄게.”
“더 주지도 말고 내 거 보장해 줘.”
그날은 마침 큰딸이 알바를 가고 작은딸은 연기학원으로 가고 막내아들마저 3시간 동안이나 과학학원을 가는 일요일이었다.
남편과 유일하게 둘이서 신나게 놀 수 있는 그런 날. 그런 시간.
야호 왠지 자유를 오랜만에 받은 느낌.
날씨는 화창하니 모든 기분 좋을 그런 날이다.
우리는 지금 이순간 어디에 가서 뭘 하면 좋을지 아주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화 볼까?”
“요즘 영화 볼 거. 없더라.”
“그럼 카페 갈까?”
“밥도 안 먹고 카페?”
“그럼 밥부터 먹을까?”
“밥 좋아. 그럼 뭐 먹을까?”
“우리 거기 가자 테이블 몇 개 없는 따뜻한 집밥. 거긴 애들 다 데리고 가면 자리가 비좁아서 갈 수가 없잖아.”
우리는 집에서 20분 차 타고 가서 한정식을 아주 정성스레 주는 그런 식당에 갔다.
나물반찬에 된장국 그리고 생선이 한 마리 튀겨 나오는데 둘이서 한 마리를 나눠먹는 그런 곳이다.
메인반찬은 제육볶음인데 그래서 여기는 여러 종류의 쌈이 무한리필이 된다.
예전에는 이런 곳을 별로 안 좋아했는데 이젠 이런 건강한 반찬이 나오는 곳이 편해진걸 보니 남편과 내가 나이 먹었나 보다 생각했다.
밥은 방금 지어 나온 솥밥에 나오는데 밥을 덜어내고 그 남은 누룽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 뚜껑을 덮고 밥을 다 먹은 후 먹으면 된다.
그날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온 이곳이 좋아서 쌈을 싸서 우걱우걱 참 우악스럽게도 먹었다.
우리 옆자리는 노부부가 아주 점잖게 마주 보고 앉으셔서 식사를 하셨는데 보기가 참 좋았다.
물티슈도 서로 챙겨주시고 물도 따라주시면서 다정하게 드시는 모습에 비해 이 맛있는 식탁에 놓인 걸 즐기는 신난 여자인 나는 두 분을 보고는 잠시 조신히 먹어본다.
그분들은 조금 후 다 드시고 얌전히 자리를 비우셨고 고개를 돌려보니 나물과 된장국 외엔 많이도 남기고 떠나셨다.
거기에 놓인 제육볶음 접시는 거의 건드리지 않으셨다.
’고기를 안좋아하시나보다‘
그쪽 시선으로 생각이 잠겨 먹다가 보니 남편이 한쌈에 제육을 두 개씩 올리더니 급기야 나중엔 수저로 퍼서 드신다.
어? 난 아직 밥이 많이 남았는데. 혼자 다 먹네.
제육이 거의 다 없어져가니 나는 깨끗이 남은 부분의 밥을 남편에게 주며 더 먹으라 권했다.
그랬더니 탈탈탈 털어가는 제육도둑님은 나의 시선은 아량곳하지 않고 잘 드셨다.
우리는 모든 걸 싹 비우고 따뜻한 집밥을 나왔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말을 안 했다.
188센티 키에 73킬로인 남편은 매우 말랐는데 식탐이 최고다.
특히 좋아하는 음식으로는 주꾸미볶음과 알찜. 그리고 고기반찬이다.
매일 나에게 와우 예쁘다를 연발하는 스위트한 남편이지만 저 세 가지 음식이 있을 땐 나를 모르는 사람 보듯 혼자 맘껏 드신다.
‘아! 내가 저런 남자와 살았었지!’
만약에 남편과 각자 나오는 음식의 식당을 갔다면 입닦이용 휴지도 챙겨주고, 물도 따라줬을 텐데 오늘 같은 곳에선 바쁘시다.
말하기 싫어졌다. 욕심쟁이 같고 못돼 쳐 먹어 보인다.
한참 그러고 있으니 눈치도 없는 신랑이 말을 건다.
“왜 그래? 삐졌어?”
“…”
내 기분을 하나도 모르는 신랑에게 대꾸하지 않고 몸을 반대로 휙 틀었다.
“뭐 때문에 그래? 갑자기?”
거봐 전혀 모른다. 이럴 땐 학습시켜준다. 또 이런 일이 없길 바라며.
“아까 혼자 제육볶음 다 먹던데?”
“내가? 아냐, 나 천천히 먹었어.”
“천천히냐 빨리냐가 아니고 당신이 혼자 다 먹었다고.”
“내가 그랬어? 미안”
본인이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그냥 미안하다 하고 이 일을 빨리 끝내려 하는 남편이다.
“당신이랑 거기 이제 안가!”
나는 크게 다짐하듯 남편에게 말해버렸다.
그리고 일주일이 흘러 다시 그 신나는 우리만의 시간 일요일 3시간이 찾아왔다.
오늘도 우리 애들 세 명이 모두 각자 할 일에 바삐 나갔다.
“꺄오 신난다.”
“와우야, 우리 어디 갈까?”
“음… 배고파”
“그럼 따뜻한 집밥 또 갈까?”
남편의 말에 나는 일주일 전 일이 갑자기 또 떠올라 휙 반대로 몸을 틀었다.
“에이.. 내가 이번엔 제육볶음 쪼금 먹을게. 가자~~.”
나는 몸을 반대로 틀은 것과는 다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신발을 신었다.
단순한 여자. 와우다.
무언의 동의를 금세 알아차린 남편이 좋아 좋아라고 말하며 같이 집을 나섰다.
우리는 일주일 전 왔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똑같은 제육쌈밥메뉴를 두 개 주문했다.
식당 주인분께서는 부지런히 우리 식탁에 가득 세팅을 해주셨고 금세 맛있는 반찬들로 꽉 찼다.
“와우야, 반 잘랐어. 왼쪽 오른쪽 골라봐.”
남편이 아직 사용하지 않은 수저로 제육볶음을 모세의 강 가르듯 반 가르며 나에게 선택권을 줬다.
“하하하”
“많은 걸로 골라도 돼”
“나 오른쪽”
“좋아 그럼 내가 왼쪽”
우리는 어릴 적 볼펜으로 책상을 반 가르며 넘어오지 말라 했던 각자의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깔깔 웃었다.
한쌈 한쌈 제육볶음을 올려 이번에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옆테이블에서는 다른 두노인분들께서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지난주와 똑같게도 제육볶음을 드시지 않으셨다.
우리는 모든 그릇의 음식을 다 비우고 자리에 일어나 나오면서 무언가 깊은 생각을 했다.
나는 집으로 가는 우리 차에서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 우리가 아직 젊은 가봐.”
“왜?”
“젊어서 고기 가지고 싸우나 봐. 지난주도 그렇고 좀 전에도 보면 나이 드신 분들은 고기 안 드신다. “
“그러게 나물이나 드시고 된장국 드셨더라. “
“우리 나이 들면 제육볶음 접시가 반 갈라지는 일은 없을 건가 봐. “
“그렇게 되려나?”
“남편, 우리 나이 먹어서 못 먹을 그날까지 제육볶음은 꼭 반 갈라줘.”
“하하하 알았어 내가 우리 와우 쪼금 더 줄게.”
“쪼금 더 주지 말고 내 거 보장해 줘.”
우리는 모세의 기적으로 반 잘라진 제육볶음을 떠올리며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한 3시간을 아주 알차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