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투명 봉지 빵 가격 1000원 맞지?”
“그거 크림 들어있는 빵? “
“응. 내가 맨날 먹고 싶다고 했던 거”
“아냐, 그거 2000원이야. 너 1000원 받았어?”
내 어릴 적 우리 집은 동네에서 작은 슈퍼를 하는 집이었다.
간판도 있었는데 “초원슈퍼”
나는 초원슈퍼집 딸로 불렸다.
동네에 작은 슈퍼가 많았는데 간판이 있으면 그래도 좀 큰 슈퍼였고 소위 말하는 구멍가게는 아니었다. 누가 정하지 않은 그런 룰 같은 거다.
내가 3학년이 되던 해에 엄마가 슈퍼를 시작했는데 난 엄마가 사준 이달의 학습 문제집을 풀기보다는 슈퍼를 둘러보고 손님이 얼마나 오나 보는 게 더 재밌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가서 빨리 문제집 풀어”
“알았어 알았어 이따 할게”
나는 대충 대답하고 엄마가 슈퍼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걸 구경하고 재밌어했다.
그렇게 문제집 풀러 가라고 했던 엄마도 저녁식사 준비 때가 되면
“와우야, 가게 좀 보고 있어. 엄마 밥하러 가게”
“아~ 나 숙제하려고 했는데”
“금방 올게. 손님 별로 안 와. 여기서 하고 있어”
엄마는 아까 문제집 풀라고 보내려 했던 말투와는 다르게 애절한 말투로 나를 붙잡아 그 자리에 두셨다.
우리 집은 가게가 딸린 집이어서 엄마가 가게와 붙어있는 작은방에서 거실을 통해서 나가면 곧바로 주방이 있는 구조였다.
그렇게 거실로 향한 엄마는 곧 주방으로 가서 서둘러 밥을 하셨다.
나는 엄마가 없는 이 시간에 손님이 많이 오기를 바랐다.
내가 많이 팔아서 엄마에게 많은 돈을 보여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나 혼자 기다릴 땐 아무도 안 온다.
‘와라 와라 빨리 와라’
난 내 마음속으로 간절한 주문을 외우듯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띠리링”
가게 문이 열려 문 맨 꼭대기에 매달린 종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주문이 통했는지 드디어 왔다 왔어! 야호! 내 마음속에서 신이 나서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한 아저씨였다.
40대로 보이는 모자를 쓰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신 아저씨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빵코너에서 빵을 고르신다.
슈퍼에서 빵코너란, 그 빵 브랜드에서 주는 철재로 된 선반이다.
그 철재 선반은 3단으로 되어 있는데 그 철재 선반을 무료로 지급받으려면 그 브랜드 빵만 취급해야 한다.
3단 선반에 맨 위에 중간 그리고 맨 아래에는 빵들이 정리가 잘 되어 있는데 맨 위는 인기 있는 빵. 맨 밑에는 식빵들로 줄 서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빵들은 그 브랜드에서 다시 수거해가기도 했다.
그 뿔테안경 쓴 손님은 투명봉지의 빵을 하나 사셨는데 내가 참 먹고 싶어 하던 빵이다.
옥수수로 반죽된 빵인데 안에 크림이 있다는 실감 나는 그림이 있는 겉표지가 참 맛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역시 내가 궁금해하던 빵인데 저 손님도 그 빵을 선택하셨구나 ‘
“얼마인가요? “
사실 가격을 물어볼 필요는 없는 것인데 아저씨는 물어보신다.
빵봉지 바로 맨 밑에 보면 가격이 쓰여 있는데 우리는 그 금액을 그대로 받는 가게였다. 할인이라고는 없는 그런 슈퍼.
그 가격을 몰랐던 나는 그 빵 봉지를 보려고 했으나 아저씨는 그 빵을 나에게 보여줄 마음이 없는 듯 바로 가방에 넣으셨다.
‘얼마일까? 천 원이겠지? 그렇지 그 정도가 적당해 보였어’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천 원이요”
아저씨는 서둘러 지갑에서 천 원을 주시고 바로 나가셨다.
그러고는 엄마가 밥을 다 만들 때까지 손님은 개미 한 마리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만들어 놓은 스테인리스 돈통에는 딸랑 천 원만 처량하게 놓여 있었다.
엄마는 감자조림에 된장국까지 끓여내며 저녁을 다 만들어내셨고 나는 맛있게 밥을 먹었다.
엄마는 내가 밥을 먹는 걸 보시다가 돈통을 내려다보셨다.
“천 원짜리 하나 팔았나 보네?”
“엄마, 투명한 봉지빵 가격 천 원 맞지? “
“그거 크림 들어있는 빵?”
“응 내가 맨날 먹고 싶다고 했던 거”
“아냐, 그거 이천 원이야, 너 천 원 받았어?”
그 당시 어렸던 나는 엄마가 슈퍼로 돈을 많이 벌기를 바랐다.
아빠는 트럭을 운전하시는데 일해서 버는 돈이 우리 집의 수입이었고 보너스나 상여금이 없었다.
아빠가 힘들어서 일을 못 가시면 수입이 줄기 때문에 아빠는 열심히 일을 나가셨다.
엄마는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가게 딸린 집으로 가족들이 이사를 했고, 그래서 시작한 엄마의 슈퍼였다.
엄마는 한 달에 한 번 담배를 떼오시는데 현금지급 조건이라 이번 주 금요일까지 현금을 만들어내셔야 했다.
난 그래서 엄마가 장사가 잘 되기를 항상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내가 빵 가격을 보지 않고 팔았다.
그래서 손해를 봤다.
“나 이제 가게 안 볼래”
난 충격을 받아 밥을 먹다 말고 내 방으로 가버렸다.
엄마는 별말 안 하는데 나 혼자 이런다.
다음날 저녁시간은 돌아왔고 엄마는 또 나를 부르셨다.
“와우야, 가게 좀 봐줘. 밥 해야 돼~”
“싫어. 나 또 금액 잘 못 말하면 어떻게 해”
“괜찮아. 다음엔 금액을 보고 받으면 되지”
“나 그 아저씨 또 오면 돈 더 내놓으라고 할 거야”
“와우야, 그러는 거 아냐. 그건 절대 말하면 안 돼”
“왜?”
난 정말 이해가 안 되어서 눈이 똥그래져서 물었다.
“돈 더 내놓으라 해야지 왜 안돼?”
“네가 실수로 덜 받은 돈을 다음날 다시 내놓으라고 하는 건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럼 손님 끊겨.”
엄마는 어린 나보다 성숙하신 분이 맞았다. 엄마의 말에 설득당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인정했다.
그런데. 진짜 또 왔다. 그 모자 쓰고 뿔테안경을 쓴 아저씨.
나는 심장이 두배로 뛰었지만 애써 침착했다.
아저씨는 다른 건 살 마음도 없다는 듯 빵코너로 가서 바로 그 투명봉지의 빵을 집어 나한테 오셨다.
“얼마예요?”
정말 기분 나쁘다. 얼만지 뻔히 알면서 어린 나에게 시험하듯 묻다니.
나는 두배로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이…이… 이천 원이요!”
나는 버벅대며 말하며 그 아저씨의 표정을 잘 살폈다.
어찌 알았냐는 표정! 난 분명히 읽었다. 무슨 어려운 문제를 어찌 맞혔냐는 듯한 그 표정!
동공이 약간 흔들리던 아저씨는 이천 원을 내셨다.
그 아저씨가 나가면서 흔들리는 종소리는 딩동댕 오늘은 맞추셨습니다.라는 듯 울려댔고 가게문이 닫히자마자 난 부엌으로 뛰어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 그 빵아저씨 또 왔어. 그리고 그 똑같은 빵을 또 샀어. 난 이천 원이라고 또박또박 말했어.”
사실 버벅댔지만 내 마음은 똑소리 나게 말한 듯하기 때문이다.
“그 빵을 좋아하시나 보네 “
“나 진짜 어제 거까지 3천 원이라고 말하고 싶었단 말이야. 내가 어리다고 또 실수하길 바란 거 아냐?”
“아니야, 가격 안 보고 사는 사람 많아. 그렇게 생각했는데도 2천 원이라고 말한 거 잘한 거야.”
30년 전 그 이야기는 빵만 보면 가끔 생각나게 한다.
오늘은 아들이 크림빵이 엄청 크게 나온 유명한 빵이 편의점에 판다고 꼭 그 빵을 사달라고 조른다.
우리 때는 동네마다 작은 슈퍼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 많이도 있었는데 요즘 다 없어지고 편의점들이 즐비하다.
중학생 아들은 편의점을 엄청이나 좋아해서 매일 카드내역서에 편의점이 꼭 출석체크하듯 찍힌다.
나 중학생 때는 일찍 철이 들어 엄마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파는 빵도 엄마에게 섣불리 하나 달라고 하지 않았었는데 우리 아들은 철이라고는 1도 안 들은듯하다.
난 오늘은 사주겠다며 같이 편의점으로 갔다.
8,800원
크리ㅁ대빠ㅇ이라고 적혀있다.
크림이 들어 있는 빵을 보면 그 뿔테아저씨의 인상착의가 떠오른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가 ‘그날 할인이라고 생각하셨겠지, 금액은 잘 안 보시던 분이겠지.’ 등등 여러 생각이 들면서 너그러워진다.
엄마의 그때 가르침도 살면서 참 도움이 된다.
바로바로 사실을 알려주고 내 이익을 찾기보다는 그냥 눈 감고 넘어가기도 해야 한다는 교훈말이다.
크림대빵 빵은 정말 컸다.
케이크 칼로 잘라서 아이가 먹을 만큼 덜어주고는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었다.
“하나 다 먹지도 못하는 거 뭐 하러 이렇게 큰걸 사”
“친구들 다 먹어봤다고 인스타에 올렸단 말이야”
“그래 먹어보니 좋아”
“크림이 맛있어 “
그리고 초원슈퍼딸이라는 타이틀이 없어지기까지 엄마는 8년을 더 하시다가 문을 닫았고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셨다.
나는 그 타이틀이 가난한 집 딸 같은 느낌이라 싫었다.
그리고 취직을 해서 일하던 어느 날 전기공사를 해주러 온 한 기사님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였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자리에서 컴퓨터로 자판을 두들기는 나에게 다가오는 기사님의 첫마디는..
“초원슈퍼집 딸?”이거였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니 초원슈퍼 우리 집 뒤에 사시던 얼굴이 선하셨던 아저씨시다.
그분은 가끔 가게에 오시면 아무 말도 안 하시고 물건만 사서 집으로 가셨는데 참 착해 보이신 게 특징이었다.
그때는 아무 말도 안 하셨던 분이 이렇게 우연히 10년이 지난 후에 만났는데도 날 알아보시고는 아는 척을 해주셨다.
난 반갑게 인사하고 우리 부모님 안부도 전해드렸다. 예전에 싫었던 그 타이틀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난 여전히 초원슈퍼집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