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탈락, 정시 준비하는 딸아이를 키우며..
청양고추무침
“다시 잘해보자”
“힘들단 말이에요…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고3딸이 수시 열 군데 모두 탈락되었다.
마지막까지 한 군데는 될 줄 알았는데…
너무 허무맹랑했다.
너무 기대했다.
너무 자만했다.
매달 100만 원 가까이하는 학원비, 부족한 부분에 관한 개인레슨비용, 무용할 때 필요한 무용복, 면접 보러 갈 때마다 해야 하는 헤어비용.. 이 부모라는 자리는 얼마나 많은 무게의 비용을 지불하고 고단해야 하는지를 대입을 준비하는 당사자인 고3이 알기에는 너무 어린가 보다.
“알지, 얼마나 힘든지 알지. 햄스트리를 다쳐서 병원 다녀가며 그 통증 참아가며 했을. 너의 고통까지 엄마는 다 이해해.”
“엉엉”
수시에서 떨어지고 본의 아니게 준비도 안된 수능을 봤다.
그나마 지금 하고 있는 면접준비를 하기 전 공부를 꾀나 열심히 했어서 1년 동안 거의 책 한 글자 못 본 아이가 수능을 잘 봤다.
그래서 그 성적을 가지고 정시 준비를 다시 하면 대학교에 갈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수시를 망친 딸아이에게 정시를 재 도전 해보자며 힘을 넣어주고 있는 중이다.
7개월 전 새로 뽑은 자동차는 아이들 픽업하라고 남편이 뽑아준 차인데 7개월 만에 15,000km를 주행했다.
이건 오로지 딸아이 학원 픽드롭용이었다.
그렇게 이 엄마도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다고 해서 모두 좋은 대학에 붙는 게 아니었다.
떨어진 많은 학생들 모두 열심히 연습하고 피땀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려주셔야만 했나 보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걸 다시 되새기고 느껴야 하나보다.
그래서 아이와 의기투합하여 11월 15일부터 정시준비에 들어갔다.
날짜는 그리 빨리 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2개월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
정시 원서를 다 넣었고 수시때와 마찬가지로 날짜에 맞춰 다시 면접을 보러 다니면 된다.
다시 옷을 사고, 미장원에 가서 헤어를 한다. 아침이 되면 아메리카노를 한 잔 아이가 타는 자동차 뒷자리에 놓아주고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 줘야 한다.
아이는 연신 입으로 중얼중얼 면접을 준비하며 외운 멘트를 되새긴다.
중간중간 기특한 딸은 조수석에 앉은 엄마와 운전하는 아빠를 향해 말한다.
“고마워요. 데려다줘서요.”
그렇게 첫 정시 면접에 도착했을 때, 남편과 나는 딸아이를 면접에 들여보내고 차 한 잔 마시려고 그 학교 카페로 갔다.
많은 부모들이 그 카페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카페에서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보는데 나무가 많은 산풍경이었다.
수시를 보러 다니던 그땐 가을이어서 티셔츠 한 장 입고 다니며 학교 근처를 탐방하며 다녔다.
어느덧 한 겨울 정시풍경은 영하 온도에 바깥 나무들이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 있는 모습이 수시 때 자만했던 나와 다르게 지금 잔뜩 움츠러들어 기가 죽은 나의 모습과 같아 보였다.
‘잘 되어야 할 텐데’
여기에 앉아있는 모든 학부모들은 수시에 탈락하여 온 부모들이겠지, 그래서 나의 마음과 똑같겠지..
바로 오늘 오기 하루 전 어젯밤.
딸아이가 긴장되고 부담된다며 엉엉 울었다.
왜냐하면 소위말하는 엄친딸, 엄마 친구 딸이 서울 H대 붙었다. 그리고 사촌오빠의 딸이 서울 유명한 여대에 붙었다.
그것도 모두 수시로 붙은 것이다.
그 소식에 한숨을 쉬던 딸아이가 생각이 많아졌는지 멘털이 나간 아이처럼 소리치며 난동 아닌 난동을 부렸다.
언제나 살갑고 다정한 나의 딸이다.
한 번도 엄마를 위해 고운 말을 안 해본 적이 없는 아이다.
엄마가 싫다고 하면 안 하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위압감이 크게 온 듯하다.
나는 방 안에서 소리치며 울고불고하는 딸아이를 달래지 않았다.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나는 오전에 사다 냉장고에 보관했던 청양고추를 씻었다.
초록과 빨강이 섞여 제법 색이 조화로워 보인다.
이런 상황에 고추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혼란스럽다.
하지만 뭐라도 해서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생각했다.
1킬로그램의 고추는 꽤 많았다.
꼭지 부분을 모두 떼어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꼭지를 떼어내고 물로 씻어 놓은 고추가 참 예쁘다.
나는 하나하나 칼로 잘라서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만들었다.
매운 냄새가 제법 나는 걸 보니 오늘 요리 성공예감이 든다.
난 이 청양고추를 간장고추장아찌 하려고 샀다.
하지만 오늘 고추를 씻다가 다른 걸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한 번도 만든 적 없지만 요리하는 사람들이 많이 만들어 먹는다고 보기만 했던 거라 맛이 참 궁금했던 그런 요리를 해보고 싶어 졌다.
그러려면 우선 이렇게 잘라 넓은 볼에 모아두면 된다.
그리고 이제 많은 양념들을 준비하고 섞으면 된다.
청양고추무침 레시피
청양고추 1킬로그램
식초 종이컵 1/3
레몬즙
미림
참치액 종이컵 1/3
간장 1/3
된장 한 스푼
마늘 한 스푼
고춧가루 종이컵 2/3
매실청 종이컵 1/3
설탕 세 스푼
깨소금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고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히는 상상을 했다.
얼마나 매콤할까?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집에 있는 갖가지 양념들이 들어가는 걸 보고 감히 맛이 상상이 안 됐다.
난 이제 맛을 안다.
맛을 알기에 자랑하고 싶다.
방금 전 울고 있던 딸아이가 조용해진 듯하여 방문을 열고 딸을 불렀다.
“이거 좀 먹어 볼래? “
울어서 눈이 튕튕 부운 딸에게 말도 안 되는 제안이다.
하지만 본인도 집안을 뒤 흔들고 울고불고한 것이 민망했는지 엄마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밥 숟가락에 양념이 가득한 고추 하나를 올려 딸에게 들이밀었다.
“이게 뭐예요?”
“뭐긴! 엄마 너에게 주는 힘이지”
아이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엄마가 들이미는 수저를 입에 넣고는 우걱우걱 씹었다.
“사람은 밥심이래잖아. 너 다이어트한다고 요즘 매콤한 거 먹은 적 없지. 이거 먹어봐 너 내일 힘내서 잘할 거야.”
“음~~ 너무 맛있어요.”
매운 거 좋아하는 딸이 눈이 똥그래지며 좋아한다.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웃으면 성공이다.
그렇게 청양고추무침 한입에 오늘 대학 면접을 온 것이다.
엄마라는 자리는 참 힘들다. 고단하고, 어렵다.
나도 힘들다고 울고 싶지만, 참는다.
나도 소리치고 싶지만, 참는다.
앞길 캄캄해서 우는 어린아이는 그게 불안해서 우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난 앞길이 캄캄한 게 아니다. 현실이 힘든 거다. 그러니 참고 견뎌야 한다.
앞으로 2주간 정시면접을 여섯 군데 더 다녀야 한다.
결과가 궁금한 우리 친정엄마는 발표가 언제냐고 묻고 또 묻는다.
2월이야. 2월. 몇 번을 말해. 2월이라고..
괜히 엄마한테 신경질 아닌 신경질을 내 본다..
2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