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녀 한 가닥

엄마가 들려주던 이야기 2

by 와우wow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 살 무렵, 큰고모 댁에서 지내시던 친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오셨다.

고모와 할머니는 참 다정하셨지만, 할머니께서 나이가 들고 거동이 불편해지자, 고모는 “이젠 아들 집에서 모셔야지” 하며 조용히 할머니를 우리 집에 데려다 놓으셨다.


열 식구가 살던 집에 할머니까지 더해져 열한 명이 되었고, 조용하고 깔끔한 걸 좋아하시던 할머니는 떠들썩한 아들이 다섯이나 있는 집에서 적응하기 힘드셨는지 자주 불편함을 내비치셨다.


“어머님, 불편하시지요?”

“아니다, 어쩌겠냐.”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어디 편히 몸 둘 곳 없던 말년을 그냥 참고 지내시는 듯했다.


가끔 큰고모와 작은 고모가 들러 할머니를 뵙고 가셨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6개월 남짓 함께 지내셨을 무렵, 할머니는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아침 식사를 챙기려다 미동 없는 할머니를 발견한 엄마는, 말없이 나를 불러 고모들에게 소식을 전하라고 하셨다.


“고모, 할머니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빨리 오시래요.”

“그래, 내가 이것만 정리하고 금방 갈 테니 너 먼저 가거라.”


둘째 고모는 덤덤히 그렇게 말씀하셨고, 나는 더 멀리 사는 큰고모 댁으로 달려갔다.

둘째 고모가 먼저 도착했고, 큰고모보다 앞서 할머니의 속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하얀 천에 곱게 감싸 모셔진 그것은 다름 아닌 여러 개의 비녀들이었다.


“이게 뭐예요?”

눈에 보이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묻고 말았다.

“우리 엄마가 소중히 모아 두셨던 비녀야.”


조용한 성품의 둘째 고모는 꼭 말해야 할 것처럼, 그렇게 설명을 덧붙이셨다.

그리고 그중 하나, 길고 고운 옥비녀를 골라 우리 엄마에게 건네주셨다.


“이게 뭐예요, 형님?”

“우리 엄마였어도 하나 줬을 거야. 고생했으니 하나 가지게.”

“예쁘네요. 고맙습니다, 형님.”


우리 엄마는 그 비녀를 받아 들고는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소중한 것 하나 없이 살아오신 엄마의 허름한 모습 위로, 그 반짝이는 비녀 하나가 유난히 빛나 보였다.

그때 엄마의 얼굴에 서린 놀람과 벅참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또렷하다.


잠시 뒤 큰고모가 도착하셨다.

할머니 앞에서 흐느끼시는 큰고모의 모습은 나까지 울게 만들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오셨기에, 다정했던 기억과 때때로 다투었던 순간들까지 모두 뒤섞인 눈물이었으리라.

어릴 적에도 가끔 할머니가 집을 나와 우리 집에 계시면, 며칠 지나 큰고모가 찾아와 마지못해 데려가시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서운함과 그리움이 엉켜있는, 그런 관계였다.


그런데 그 조용한 슬픔은, 곧 언성이 오가는 소란으로 바뀌었다.

할머니의 속주머니에 있어야 할 비녀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거 다 어디 갔어?”

“무슨 일이세요, 형님?”

“우리 엄마가 평생 모아둔 비녀가 왜 없어?”


비녀가 많았다는 것, 그게 어디 숨겨져 있었는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지낸 큰고모였다.

아까 둘째 고모가 꺼내 우리 엄마에게 주고 본인도 챙긴 그 비녀를, 이제 큰고모가 찾고 계셨던 것이다.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의 등 뒤로 둘째 고모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비녀? 그거 내가 꺼냈어.”

“그거 다 어딨는데?”

“올케랑 나눠 가졌어. 언니 것도 여기 있어.”

“그걸 왜 네 맘대로 나눠 가져? 그 비녀들 전부 내가 사드린 거야!”


대답 없는 고모들 사이로, 엄마는 잠시 들고 있던 옥비녀를 다시 내놓았다.

큰고모는 그것을 받아 비녀들을 다시 모으고, 그중 가장 낡고 투박한 나무 비녀 하나를 골라 엄마에게 건넸다.


화려한 옥비녀와는 달리, 그건 너무도 볼품없는 비녀였다.

엄마는 부엌 끝으로 가서 조용히 혼잣말하듯 중얼거리셨다.


“치사하게, 준 걸 또 뺏어가고 이런 걸 주나…”


그 뒤로도 엄마의 쪽진 머리에는 아무 나뭇가지나 꽂혀 있던 모습을 나는 종종 떠올린다.

요즘은 어디서든 예쁜 머리장식 하나쯤은 손쉽게 살 수 있지만, 그 시절엔 그런 것조차 우리 엄마에겐 사치였다.


내가 자라고 돈을 벌게 되었을 때, 왜 비녀 하나 제대로 사드리지 못했을까.

금비녀 하나라도 선물했다면, 그날처럼 작아지고 초라했던 엄마의 뒷모습을 지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래서 지금도 가끔 비녀를 단 할머니들을 보면, 마음속으로 묻는다.

‘왜 우리 엄마에게는 그런 비녀 하나 못 해드렸을까…’

그 후회가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 지금도 천천히 나를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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