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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환 May 02. 2021

강성은, <죄와 벌>

좋은 사람들에 대하여



좋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가 

자꾸 나를 먼 곳에 옮겨 놓고 가버린다     

 

나는 바지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일어나 

좋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쌀을 씻고 두부를 썰다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생각한다 

생각한다    

  

생각한다    


       

강성은, <죄와 벌>, 시집 Lo-fi 




좋은 사람들에 대하여 


문득 길을 걷다가, 계절이든, 무엇이든 지나간 사람들을 생각나게 할 때가 있다. 그들과 추억에 폭 잠겨 미화된 기억을 붙잡는다. 한바탕 인사를 하고 나면 여러 가정을 해보다가 그때의 결정이 최선이었다고 현실에 눈을 뜬다. 옷깃만 스쳐도 모두 인연이었던 때가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영화제를, 휴학하고 영화제와 예술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유럽여행과 복학 후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 만났던 때를 지나 정을 나누고 관계가 친밀해질 때쯤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고, 처음처럼 계속 지속될 것만 같은 관계는 어느새 작게 남아 종종 안부를 묻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어디에 속하지 못해 방황하던 내가 속하고 싶은 곳,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지를 알려주었다. 거기에서의 나는 자유로웠고, 사람을 좋아하고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들 틈 속에서 그 여운을 아주 짙게 느꼈다. 곱씹고 또 곱씹으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추억을 회상했다. 좋은 사람들이 떠나간다고, 그들과 영영 이별한 것처럼 슬퍼했다. 이곳에 또다시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다. 때론 내가 벌을 받은 것 같았다. 소중하고 지키고 싶은 관계가 끝나는 걸 온몸으로 지켜보면서 <죄와 벌> 제목처럼 지난날 내가 좋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기 때문에 그가 떠나가는 것이라고. 그러니 나는 지난날 지은 죄를 내가 되돌려 받고 있는 중이라고. 땅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고, 또 자책했다. 하지만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거쳐 그때보다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안다. 하나의 순환처럼 사람이 오면 가고, 사람이 가면 또 온다는 것을. 내 삶의 어느 때에, 하필, 그때 꼭 만나야 했던 사람들이라고. 어떤 이유로, 때론 이유를 막론하고. 그래서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인연이기에 나에게 오는 사람마다 최선을 다하고, 헤어지면 후회보단 후련함을, 언제든 그리워하고 앞으로 새로 만날 사람들을 다정하게 맞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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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사람들을 

나에게 오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생각한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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