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에 대하여
반려동물에 대하여
창문 아래 골목 고양이 울음소리에
내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고양이는 언제부터 보이지 않는 것일까
어제 나는 부산에 있었는데
흰 봉투를 들고 가서 국과 밥을 먹고
죽은 사람에게 인사하고 돌아왔다
모르는 사람의 배웅을 받고 기차를 타고
얼굴에 책을 덮고 자는 사람 옆에 앉아
서울로 돌아왔다
내 고양이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어리둥절하게 야옹 소리를 내보다가
사무치게 그리운
잃어버린 고양이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야옹뚱뚱
야옹뚱뚱
부르자
야옹뚱뚱이 금세 졸린 눈으로 달려왔다
강성은, <야옹뚱뚱>, 시집 LO-FI 수록
묘하다
봉돌이는 2년 전 여름에 죽었다. 이모네 집에 올 때부터 몸이 약했고, 피부병 때문이었다. 친척동생이 보내온 봉돌이의 마지막 사진에는 봉돌이가 의자에 배를 보이며 벌러덩 누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봉돌이의 흰 털이 아래에서 위로 날렸다. 집안 곳곳에 날려 어디론가 숨어버린 봉돌이의 흰 털과 하얀 가루들이 나의 재채기로 인해 봉돌이의 존재를 다시 알려줄 것만 같았다. 막내 동생이 처음 봉돌이를 발견해 갑자기 이름이 떠오른 봉돌이, 그는 전체적으로 흰 털에 검은 무늬가 들어간 고양이였다. 약간의 피부병 때문에 비듬처럼 하얀 가루가 털 곳곳에 묻어났다. 검은 무늬에 하얗게 가루가 떨어져 있을 때면 꼭 눈이 내린 것 같았다. 봉돌이는 고양이치곤 인물이 훤한데, 코 바로 밑에 있는 어그러진 둥근 점이 봉돌이를 멍청하게 보이게 했다.
어느 겨울, 죽음의 문턱에서 막내 동생이 봉돌이를 데려왔다. 봉돌이는 어렸고, 머리부터 몸의 대부분의 털이 벗겨졌고 고양이의 형체라고는 알아볼 수 없었다. 봉돌이는 막내 동생 방 침대 옆 어두운 틈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나는 봉돌이가 궁금했다. 첫 만남이 으레 두근거리고 설레듯이 간식을 들고 봉돌이를 보러 갔으나 그는 나를 째려보고 하악질을 했다. 나는 간식을 들고 가면 강아지처럼 반겨줄 줄 알았다. 아프니까 반겨주지는 못하더라도 하악질 대신 빤히 쳐다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봉돌이는 간식도 쳐다보지 않고 꼬리를 말아 뒷모습만 보여주었다. 그 후로도 봉돌이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모네 집 도어락이 열리면 거실에 있던 봉돌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창고로 달려가 나오질 않았다. 창고는 봉돌이의 주거지이자 안식처였는데, 밥 먹을 때 빼곤 하루 종일 거기에만 있을 때도 있었다. 추석 때도 봉돌이는 열심히 나를 도망 다녔고, 나는 그런 봉돌이를 기다렸다. 오랜만에 이모네 집 거실에서 이불을 깔고 나와 남동생, 친척동생들과 함께 잤다. 새벽쯤 내가 만세 자세를 취하며 자고 있었는데, 손바닥이 간질간질했다. 촉감에 눈을 살짝 떠보니 봉돌이가 냄새를 맡고 있었고 내 정수리에 닿는 규칙적인 봉돌이의 숨결이 조심스러운 듯 따뜻했다. 아침이 되니 봉돌이는 물을 마시고 있었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봉돌이에게 눈인사를 건넬 틈도 없이 봉돌이는 후다닥 또 창고로 숨었다.
다시 돌아온 어느 겨울 날, 이모네 집에 놀러 갔다. 친척동생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봉돌이가 초승달 모양의 눈을 하고 내게 다가왔다. 내 다리에 온몸을 비볐고, 꼬리는 하늘로 한껏 솟았다. 나는 놀라면서도 감격스러웠는데, 이참에 봉돌이 머리를 강아지 머리를 만지듯이 쓰다듬었다. 봉돌이는 내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봉돌이 털은 부드러웠지만 머리는 단단했다. 털로 덮여 있어서 몰랐는데, 등뼈가 잘 만져졌을 정도로 말랐다. 봉돌이를 어루만질수록 봉돌이의 검은 꼬리는 높이 치솟아 살랑거렸다. 아주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친척동생이 방에서 나와서 내가 잠깐 뒤돈 사이, 봉돌이는 어느 샌가 유유히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