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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환 Mar 12. 2022

좋아한 시간의 의미

일본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


사진 제공 : 왓챠피디아 (WATCHA PEDIA)


영화인에 대한 도전은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느꼈을 때쯤 <콩트가 시작된다>를 보기 시작했다. 유명한 영화와 드라마 평가 앱에서 '꿈과 슬프지 않게 이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짧은 평을 읽고 나도 영화인의 꿈과 이별해야 한다면 미리 예행연습을 해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루토, 쥰페이, 슌타. 멕베스 극단의 3인은 고등학생 때부터 콩트로 10년 안에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극단을 그만두기로 한다, 가 내가 알고 있는 줄거리였다. 3화까지 보면서 극단 해체가 아니라 멕베스 극단의 열혈 팬 리호코와 극단 매니저를 통해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내용인가 싶었으나, 마지막 정기 공연 날짜가 정해지고 멕베스 극단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 하루토와 쥰페이 그리고 슌타가 앞으로 어떤 삶을 꾸려나갈지 보여준다. 나는 10화 내내 자꾸 마음이 가고 신경 쓰이는 인물은 하루토와 리호코였다. 하루토와 리호코는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의 모습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영화인이 되겠다는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하루토가 축제에서 콩트로 무대 위에 오르고 콩트가 '재미있어서' 코미디언의 꿈을 꾼 것처럼 나도 친구 따라 영화제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면서, 극장에서 영화 '캐롤'을 보고 나서 영화가 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이렇게 아름답고 재미있는 예술영화가 있구나 싶어서 대중들에게 예술영화가 생각만큼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영화제에서 유명한 프로그래머의 조언 이후, 북미와 유럽 영화와 드라마 취향을 중심으로 영화를 보고 점차적으로 범위를 넓혀 잘 보지 않던 한국영화와 드라마, 일본과 중국 드라마를 보았다. 하지만 마음만큼 영화인이 되기 쉽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영화하고 싶다"라고 결심한 영화사 지인을 보며, 자주 야근을 하며 힘들다고 해도 영화 포스터에 자신의 문구가 들어간 걸 포스팅하는 또 다른 지인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모난 마음과 좌절을 느껴 한동안 sns을 보지 않고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영화가 아니라면 다른 일은 생각해보지 않았을 정도로 다른 직업에 관심 없었다.  


반면 슌타는 멕베스 극단 해체 이후 세계여행을 하기로 했고, 쥰페이는 오랫동안 사귄 연인과 결혼을 할 예정이고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받기로 해 미래가 정해진 것 같았다. 극단을 해체하기로 결심한 드라마 후반부에서 하루토는 멕베스의 10년이 의미가 있을까?라고 자주 얘기한다. 리호코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손님이 레스토랑에 놓인 꽃의 이름을 리호코에게 물어본다. 리호코는 고등학교 때 도예부 부장이었고 전국 3등을 할 정도로 실력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전국 1등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손님이 물어본 꽃의 이름을 알려드리면서 과거에 도예부 활동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또한 리호코는 면접 본 회사에 놓인 꽃을 보면서 꽃이 있으면 왠지 든든하다는 이유로 그 회사에 출근하기로 결정한다. 하루토는 리호코 얘기를 듣고도 여전히 '과거의 노력에 대한 보상'의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콩트가 시작된다>를 절반쯤 봤을 때, 나는 영화제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아무도 1년 동안의 사무행정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했을 때, 나조차 사무행정 경력이 앞으로의 경력에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닌지 그 1년을 후회했을 때쯤 영화제는 그 경력을 영화제 업무의 유사도 측면에서 인정해주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다, 무엇이든 해보면 경험이 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과거 노력에 대한 보상을 얻은 것 같았다. <콩트가 시작된다> 10화를 보고 나선 영화제가 끝났고 나 역시 멕베스 극단 3인처럼  앞으로의 고민을 다시 해야 했다. 슌타처럼 여행 계획 같은 건 없고 쥰페이처럼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을 가업이 없는 나였지만, 약 10년 동안 영화를 좋아하면서 원래 하고 싶은 일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는 남아 있지 않았다. 충분히 이만하면 되었다. 영화가 내게 남은 것은 콘텐츠를 보는 안목과 콘텐츠를 내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 언어와 번역이 남았고 영화뿐만 아니라 창작 활동까지 나를 알아봐 줄 곳은 있다는 약간의 자신감,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 하나만 있었다. 마지막 화에서 하루토는 1화 콩트와 같이 신비로운 물과 관련된 일을 시작했다. 하루토가 가게에 들어가며 밝게 인사하며 끝나는데, 그 일을 하며 혹은 다른 일을 하며 리호코가 한 말을 깨닫고 하루토 자신만의 10년의 시간을 정의할 수 있을까? 하루토에게도 그 시간이 오면 리호코나 나처럼 생각할까? 멕베스의 10년은 유의미했다고.


언젠간 하루토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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