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011, 고로에다 히로카즈)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년 새해 첫 영화는 닳도록 본 <캐롤>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왓챠 메인 홈 왓고리즘에 따라 영화 제목에 이끌려 우연히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보게 되었다. 고로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라는 것 말고는 어떠한 정보도 없이 영화를 틀었다. 한참 자극적이고 몰입감이 높지만 동시에 긴장하면서 보게 되는 시즌제 드라마를 보면서 피로했던 나의 세계가 정화되었다. 일본 특유의 잔잔하고 평화로운 소도시의 풍경들, 보기만 해도 습기가 넘치고 얼음물을 벌컥 마셔야 할 것 같은 일본의 여름 더위를 같이 느꼈다. 아이들은 왜 항상 뛰어다닐까? 의문을 가진 어른이 되어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언제 아이들처럼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소원을 빌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어릴 땐 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다. 할머니가 내 손에 천 원을 쥐어주며 돈을 넣고 절 다섯 번을 하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얘기에 다섯 번을 잊을까 손가락을 접어가며 절을 했다. 그때 내 소망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나게 뛰어노는 것이 아니라는 게 슬프기도 하지만, 그땐 할머니께 잘 보이고 싶었으리라. 결국 내 소망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때까지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동생 그늘에서 모났을 내 마음을 소리 없이 안았다. 매번 속으면서도 절에 갈 때면 공부를 잘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었는데, 소원을 수리해주지 않는 부처님이 이 정도 했으면 내 소원을 이뤄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부처님이 얄밉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세속적인 꿈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구체적이지 않아서 부처님이 어떻게 해줘야 할지 난처했던 것일까?
영화도 형 고이치와 친구들, 동생 류노스케와 친구들의 소원에 관한 내용이다. 새로 생긴 고속열차가 서로 반대편에서 달려오다가 마주치는 순간에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그들은 새 고속열차역으로 여행을 떠난다. 형 고이치의 소원은 화산이 분출해 엄마, 아빠와 동생이 다시 함께 모여 사는 것이다. 고이치의 친구는 이치로와 같은 야구선수가 되는 것인데 강아지가 죽어 강아지가 살아나는 것으로 소원을 바꾸고, 다른 친구는 학교 사서 선생님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빈다. 류노스케는 형과 같은 소원으로, 류노스케 친구들은 배우가 되는 것, 그림을 잘 그리는 것, 잘 뛰는 것으로 빈다. 정작 그 순간에 고이치와 류노스케는 각자 다른 소원을 말한다. 고이치는 화산 폭발하는 것 대신 ‘세계’를 택한다. 화산이 폭발하면 고이치의 가족은 함께 살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았던 소원에서 고속열차가 소리를 내며 지나갈 때 짧게 비추어지는 고이치의 일상이 나열되면서, 또 이 여행으로 고이치는 타인을 생각하고 자신의 세계가 넓어졌음을 암시한다. 류노스케는 아빠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비는데, 집으로 돌아가니 아빠의 밴드가 방송국에 출연하게 되면서 자기 덕분이라며 의기양양하게 웃는다. 또한 중요한 장래희망 대신 죽은 강아지가 살아나지 않은 걸 알면서도 간절히 빌고, 강아지를 집 앞마당에 묻어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아이는 한 뼘 자란다. 배우가 되겠다는 아이는 집에 돌아와 꿈을 반대하는 엄마에게 도쿄에 가 배우가 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간다.
고등학생과 대학교에 와서는 적당히 공부를 잘했다. 부끄럽지 않을 성적을 받았고, 전교 상위권에 들어보고 대학교에서는 성적 장학금을 탔다. 나는 아이들처럼 말함으로써 혹은 어딘가 적어둠으로써 조금씩 나도 고이치와 류노스케처럼 성장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넘게 지났어도 나는 보름달이 뜨면 소원을 빈다. 대게 나와 우리 가족에 대한 건강과 사랑을, 가끔은 지나간 연인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띄워 보낸다.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든 마음이 닿지 않을까 싶어 답답할 때면 가만히 서서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빈다. 혹시 정말 기적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