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에 대하여
POST C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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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너희 강아지는 건강하니? 너희 강아지가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어. 네가 너의 강아지를 포기하는 날도, 네가 간직한 조그마한 영원을 포기할 날도 없었다면 좋겠어. 약속했던 편지 앞에 이제야 앉았어. 아주 먼 사이의 사람들은 어떤 말로 편지를 주고 받는지 잘 모르지만, 어쨌든 편지는 아주 멀리 갈 수 있을 테니깐. 언젠가 내게 "죽음만 남겨둔 병신"이라 했지, 장난감은 망가지며 장난감이 된다고. 그렇게 말하니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고, 말을 대신할 꼬리도 없고, 어디로든 나가야 하는 밤이었지. 별이라니, 여긴 장마야. 하얗게 반짝이는 먼지들이 백지 위로 잠겨가는 걸 지켜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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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파란 눈과 파란 미소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했던 너의 말, 아직 기억하니? 이 순간을 머릿속에 사진으로 찍어두겠다며 몇 번이나 멈춰 뒷걸음하던 너와, 다 아문 흉터 위에 반창고를 붙여주며 다 아물지 못한 얼굴로 이었던 말들, 난 기억해. 내가 아는 너에게만 편지를 써도 되는 걸까. 그네에 앉아 편지를 부탁하는 네게만 편지가 닿을 순 없는 걸까. 네가 말한 아주 먼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모르겠어. 거울 속의 우리는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걸. 내 손에 쥐어진 이 편지가, 네 손에도 쥐어져 있다면 우리는 그만큼 먼 사이가 된 걸까. 내가 아무에게나 이런 말을 늘어놓는 행려 병자가시인이 되었거나. 차곡차곡 미뤄둔 시간들이 미래를 향해 엎질러졌거나 한 건 아닐까. "안녕, 너의 희다못해 파란 눈과 미소를 잊지 못할 거야", 이런 작별 말에 빚을 낸 하루였다거나,
육호수, <고사리 장마>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었다. 세상에 전할 수 없는 말과 글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속으로 참아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다가 참지 못할 때, 노트를 펴 해소되지 못하고 쌓이기만 한 말들을 계속 적어 내려갔다.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오래도록 적다 보면 마음은 전보다 깨끗해진 채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보낼지 말 지 알 수 없는 편지도 정성스럽게 썼다.
"안녕, 난 시환이야. 어떻게 지내?"
라는 문장으로 근황을 물으며 본론으로 들어가는 편지 여러 장을 썼다가
"안녕, 난 시환이야.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잖아. 화가 나서 네게 사과를 받고 싶은데 사과를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여기에라도 써."
라는 문장으로 다짜고짜 본론부터 시작한 편지를 썼다가 편지가 아닌 일기 형태가 되어 이 날 것의 형태를 도저히 보낼 수 없는 편지가 되었거나
"안녕, 난 시환이야. 영화를 보고 네가 생각나서 편지를 써."
라는 문장으로 상대에게 연락할 핑계 삼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거나
"안녕, 나 시환이야.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 편지를 쓰게 됐어."
라는 문장으로 결론부터 얘기하며 시작해 구구절절 우리가 함께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했다.
노트에는 여러 번 썼다 지운 흔적들이 있고 많은 다시를 마음속으로 외치고 나서야 편지를 제대로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해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들이 부럽다. 이별에 무슨 이해가 필요하냐며, 이해할 필요 없다는 친구 말에 수긍하면서도 나는 기어코 무얼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기어코 이별을 이해한다. 당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연인과의 말들, 같이 가고 싶었으나 같이 가지 못한 장소들을 가보기도 하고, 같이 걸었던 장소를 걸으면서 함께 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왜 우리가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든 과정을 돌아보고 친구의 말이나 영화와 드라마, 책을 통해 이해되지 못한 것들을 깨닫고 이별을 정리되고 공감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전하지 못할 수많은 편지를 쓰고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과정을 겪다 보면 이별이 흐릿해져 있다.
나는 무얼 이해하고 무얼 이해받고 싶었던 걸까. 그건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분명 필요했던 시간인 것은 맞다. 함께 했던 시간은 생생히 존재하고 경험했던 시간이지만, 이별 이후에는 우리 둘 다 알 수 없고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 또 다른 새로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기 때문에. 사실은 나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부치지 않을 편지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