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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환 Sep 08. 2024

육호수, <고사리 장마>

부치지 못한 편지에 대하여

편지 해달라 그가 부탁한 적이 있었다. 아주 먼 사이가 된다면 편지해달라고. 오래전 일이다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을 때의 일이다

열 시간이 걸린다는 버스를 타고

스무 시간 넘게 걸려 도착했던 도시에서의 일이다


편지를 부탁하며 내 얼굴을 살피는 그로부터 다시

네가 된다면,


"안녕, 어젠 해변의 네 살배기들과 조개를 모았어."

편지는 이렇게 시작될지도 모른다


"안녕, 혹시 고사리 장마라는 말, 아니?"

이런 첫마디를 눅눅한 편지지에 눌러쓸지도 모른다


"안녕, 너희 강아지는 건강하니?"

이렇게 물을 순 없다. 그의 강아지는 이제 스무 살도 넘었을 테고


"안녕, 파란 눈과 미소를 잊지 않겠다고 내게 했던 말, 아직 기억하니?"

 이런 말이 첫마디로 불쑥 나온다면, 더 먼 미래로 편지를 미뤄둬야겠지




POST CARD


 안녕, 어젠 해변의 네 살배기들과 조개를 모았어. 석양이 들면 그때 우리가 다 줍지 못한 조개껍질들이 은화처럼 반짝였어. 어젯밤엔 귀와 입으로 고운 모래가 쏟아져 들어와 잠에서 깼어. 불을 켜보니 몸 위에 온통 개미들인 거야. 침대 위에서 과자를 먹다 잠든 탓인가봐. 오늘은 문가에 초콜릿을 듬성듬성 놓아두었어. 이제 이 방의 벌레들은 초콜릿에 몰두하겠지




POST CARD


 안녕, 혹시 고사리 장마라는 말, 아니? 이곳에선 봄장마를 고사리 장마라고 한대. 난로 앞에 앉아 산책길에 묻어온 그늘들을 말리고 있어. 구름이  세상을 기어 건너는 계절이야. 지나가지 않는 과거의 기억들을 사라지게 할 수 있겠냐고 내게 물었었지. 그렇게 묻는 너의 표정을 떠올리면, 눅눅한 보라색 벽지 속으로 어제 보았던 별과 해변이 동시에 스며들어. 나의 흐린 대답들은 오래전 이곳에 마침표를 똑똑 찍으며 사라졌어. 비 오는 바다 위로 비가 내려. 고사리들이 사람 키만큼 자라나 사람의 이야기를 숙덕일 것 같은 밤이야. 미안, 오늘 시작되는 말로만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POST CARD


 안녕, 너희 강아지는 건강하니? 너희 강아지가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어. 네가 너의 강아지를 포기하는 날도, 네가 간직한 조그마한 영원을 포기할 날도 없었다면 좋겠어. 약속했던 편지 앞에 이제야 앉았어. 아주 먼 사이의 사람들은 어떤 말로 편지를 주고 받는지 잘 모르지만, 어쨌든 편지는 아주 멀리 갈 수 있을 테니깐. 언젠가 내게 "죽음만 남겨둔 병신"이라 했지, 장난감은 망가지며 장난감이 된다고. 그렇게 말하니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고, 말을 대신할 꼬리도 없고, 어디로든 나가야 하는 밤이었지. 별이라니, 여긴 장마야. 하얗게 반짝이는 먼지들이 백지 위로 잠겨가는 걸 지켜보고 있어




POST CARD


 안녕, 파란 눈과 파란 미소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했던 너의 말, 아직 기억하니? 이 순간을 머릿속에 사진으로 찍어두겠다며 몇 번이나 멈춰 뒷걸음하던 너와, 다 아문 흉터 위에 반창고를 붙여주며 다 아물지 못한 얼굴로 이었던 말들, 난 기억해. 내가 아는 너에게만 편지를 써도 되는 걸까. 그네에 앉아 편지를 부탁하는 네게만 편지가 닿을 순 없는 걸까. 네가 말한 아주 먼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모르겠어. 거울 속의 우리는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걸. 내 손에 쥐어진 이 편지가, 네 손에도 쥐어져 있다면 우리는 그만큼 먼 사이가 된 걸까. 내가 아무에게나 이런 말을 늘어놓는 행려 병자가시인이 되었거나. 차곡차곡 미뤄둔 시간들이 미래를 향해 엎질러졌거나 한 건 아닐까. "안녕, 너의 희다못해 파란 눈과 미소를 잊지 못할 거야", 이런 작별 말에 빚을 낸 하루였다거나,




육호수, <고사리 장마>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었다. 세상에 전할 수 없는 말과 글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속으로 참아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다가 참지 못할 때, 노트를 펴 해소되지 못하고 쌓이기만 한 말들을 계속 적어 내려갔다.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오래도록 적다 보면 마음은 전보다 깨끗해진 채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보낼지 말 지 알 수 없는 편지도 정성스럽게 썼다. 


"안녕, 난 시환이야. 어떻게 지내?" 

라는 문장으로 근황을 물으며 본론으로 들어가는 편지 여러 장을 썼다가


"안녕, 난 시환이야.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잖아. 화가 나서 네게 사과를 받고 싶은데 사과를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여기에라도 써."

라는 문장으로 다짜고짜 본론부터 시작한 편지를 썼다가 편지가 아닌 일기 형태가 되어 이 날 것의 형태를 도저히 보낼 수 없는 편지가 되었거나


"안녕, 난 시환이야. 영화를 보고 네가 생각나서 편지를 써." 

라는 문장으로 상대에게 연락할 핑계 삼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거나


"안녕, 나 시환이야.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 편지를 쓰게 됐어."

라는 문장으로 결론부터 얘기하며 시작해 구구절절 우리가 함께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했다. 



노트에는 여러 번 썼다 지운 흔적들이 있고 많은 다시를 마음속으로 외치고 나서야 편지를 제대로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해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들이 부럽다. 이별에 무슨 이해가 필요하냐며, 이해할 필요 없다는 친구 말에 수긍하면서도 나는 기어코 무얼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 기어코 이별을 이해한다. 당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연인과의 말들, 같이 가고 싶었으나 같이 가지 못한 장소들을 가보기도 하고, 같이 걸었던 장소를 걸으면서 함께 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왜 우리가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든 과정을 돌아보고 친구의 말이나 영화와 드라마, 책을 통해 이해되지 못한 것들을 깨닫고 이별을 정리되고 공감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전하지 못할 수많은 편지를 쓰고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과정을 겪다 보면 이별이 흐릿해져 있다. 


나는 무얼 이해하고 무얼 이해받고 싶었던 걸까. 그건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분명 필요했던 시간인 것은 맞다. 함께 했던 시간은 생생히 존재하고 경험했던 시간이지만, 이별 이후에는 우리 둘 다 알 수 없고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 또 다른 새로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기 때문에. 사실은 나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부치지 않을 편지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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